성경에 보면 많은 기적들이 나온다. 노아의 홍수, 애굽에서의 열가지 재앙, 홍해가 갈라짐, 사막에서의 만나, ... 신약시대로 가서는 예수의 동정녀 탄생, 그리고 예수의 부활까지. 이런 많은 기적들. 인간의 이성으로는 믿기가 굉장히 힘들다.

첫째, 이런 기적들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된다. 노아의 홍수가 생기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가장 높은 산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의 물이 있어야하는데, 그 엄청난 양의 물이 지금은 어디로 갔는가? 노아의 방주만 해도, 하나의 방주 안에 어떻게 모든 동물들을 쌍쌍이 넣을 수 있었을까? 그 먹이는? 그 배설물들은? 예수의 부활에 대해서는 어떤가? 아무도 죽은지 사흘이 지나가서 부활하지 않는다. 잠깐 숨이 끊어졌다 살아나는 이는 있어도, 예수처럼 무덤에 뭍혔다가 살아나는 사람은 없다.

둘째, 이런 기적들이 왜 성경의 시대에만 나타나는가? 지금 세상에는 왜 부활하는 사람이 없는가? 왜 지금 세상에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제물을 태우지는 않는가?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 한번이라도 보여주면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것 같은데 말이다. 간혹 가다 기도해서 병이 낳았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우연이거나 아니면 정신적인 위안에 불과하다. 부흥회에서 은혜받고 암이 낳았다고 좋아하던 사람이 일년 있다가 죽는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셋째, 기독교에서는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도 의문이다. 기도를 해서 기도한데로 되면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고 하고, 그대로 안되면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한다. 그렇다면 기도에 응답해서 인간세상에 개입하신다는 하나님은 어디에 있는가? 이래도 감사, 저래도 감사라면 기도하는 의미가 그럼 무엇인가?

템플턴은 그의 책에서 "이성이 조금만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전설이 동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한다. 이성과 기적, 과학과 기적. 같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생각하는 사람이 기적을 믿는다는 일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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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답2: 기적을 일어나게 할 근원이 존재하는가?

    2007/03/23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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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적이라는 것을 이야기할려면 먼저 기적의 정의부터 내려야 할 것 같다. 국어사전에 기적의 뜻은 '사람의 생각이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기이한 일'으로 정의 되어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말한다. 또한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기적이라고도 표현한다. 기독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종교에 대해 사람들이 비판하는 것은 소위 기적을 못 믿겠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성경은 온갖 기적으로 가득차 있다. 노아의 홍수, 애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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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번 언급했듯이 찰스템플턴이 자신의 신앙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먹을 것이 없어 죽은 아이를 안고 고통하는 한 여인의 사진을 보았을 때였다. 실제 아직도 아프리카에서는 하루에 만이천명의 아이들이 먹을 것이 없거나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간다고 한다. 기운이 하나도 남지 않아 온 얼굴에 붙어 있는 파리떼를 쫓지 못하는 아이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얼마나 마음 아픈 모습인지.

그 뿐인가. 세상 곳곳에서 전쟁과 가난으로 목숨을 잃거나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환경이 좋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술취한 운전사에 의해 한순간에 아버지를 잃어버린 가정. 유괴범에 의해 소중한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 신앙생활 열심히 하던 착한 아들을 전쟁터에서 잃어버린 윤상병의 경우는 어떤가. 그들의 신앙이 부족해서 생긴 일일까?

이성적으로 따졌을 때, 세상의 고통과 사랑의 하나님을 연결시키기는 참 어렵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면서 인간의 고통을 그대로 놔둔다면 선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세상에 자식을 사랑한다 하면서 죽어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고 있을 부모는 없기 때문이다. 가끔 아이들이 힘들어도 가르치기 위해서 그냥 놔두는 부모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힘든 것과 죽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다른 각도로 선하기에 인간을 위해 좋은 일을 해주기 원하더라도, 해줄 수 없다면 전능한 하나님이 아니다. 마치 선한 신과 악한 신이 있어 악한 신이 인간을 괴롭혀도, 선한 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제한되어 있는, 힘이 딸리는 그런 식의 신화가 되어버린다.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의지할 수 있는가?

세상의 적지 않은 재앙이 사람으로 인해 생긴 것들이다. 하지만 큰 재앙을 가지고 오는 지진이나 가뭄, 폭풍, 전염병등은 사람의 잘못으로 생긴 것은 아니다. 사람은 그런 것들을 콘트롤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 누군가? 그건 신이 아닌가?
 
첫번째 질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누구나 한번은 느껴봤을 질문. 아픔을 겪었거나, 주위의 고통을 보았던 사람이라면 "도데체 하나님이 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질문 한 번은 다 해보지 않았을까?  

사랑의 하나님이 있다면 어떻게 세상에 고통이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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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어느 정도 생겼을 때부터 내 인생의 일부분이였다. 지금은 그 신앙의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아 나가고 있지만, 교회에 대한 애정은 아직 흔들림이 없다.

그렇기에 지금의 기독교, 특히 한국 교회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참 마음이 아프다.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전에도 이야기했듯이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지 28년이 되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 생활을 했었기에 여기 저기 교회일에 많이 개입이 되었다. 그리고 큰 매형이 목사이다 보니, 쉽게 드러나지 않는 목사들의 뒷이야기를 들을 경우가 더러 있다. 그 기간동안 직접 보고 경험하고 들은 것들을 놓고 보면, 내가 아직도 교회를 다니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성경의 진리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한국교회가 예전부터 주장해왔던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길 원한다면 이런 목회자들은 제발 교회에서 떠났으면 좋겠다.

1. 하나님 두려워 하지 않는 목회자들 교회를 떠나라

교회에서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으면 흔히 이런 말로 위로를 한다. 교회란게 죄인들이 오는 곳이잖아. 좋은 병원에 환자가 많듯이 좋은 교회에는 죄인들이 많은 법이야라고. 그 말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 좋은 병원의 의사들은 정신병자는 아니지 않은가? 지금 와서 돌아보면 내가 다녔던 교회들, 내가 경험한 목사들의 상당수가 신도보다도 못한 윤리성을 보여준 것 같다. 내 청춘을 바쳤던 교회의 담임목사는 유학간 자식이 졸업했는데도 등록금을 계속 받아가다가 문제가 되었다. 그걸 충성파 장로를 시켜서 문제없다 만들어놓고 그 문제를 지적한 사람들을 다 교회에서 내쫓아 버렸다. 멀쩡한 교회 사택 놔두고 워커힐 아파트를 요구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말이다. 여자랑 바람피다 남편이 오자, 베란다에 매달려 있다 떨어져 죽은 목사는 매형 노회의 부노회장이였단다. 미국 와서 처음 몇년 다녔던 목사의 경우는 부패의 총집합소였다. 국제결혼한 여인들이 많이 다니던 교회였는데, 그중 세명의 여자와 이년 넘게 동시에 바람을 피우다 결국은 꼬리가 잡혔다. 당연히 잘라내야 할 이 목사(목사란 호칭이 너무 아깝다)에 협박당한 노회장(이 사람도 문제 투성이다)과 동료목사가 협잡해 목사 충성파를 도와 교회 건축헌금으로 모아놓은 돈 중 8천만원을 퇴직금조로 주어 보내고, 그 자의 바람핀 것을 지적했던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교회에서 나와야만 했다. 너무 그런 일이 많아서인지 소소하게 잠깐 바람핀 것은 문제 축에도 끼지도 못하는 것 같다. 어떤 부흥사가 집회하다가 앞줄에 앉아있던 여자가 전날밤 같이 잤던 룸사롱의 호스테스인 걸 보고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는 지나치며 듣게 되는 가십에 불과하다. 전에 적었던 김, 조, 곽 목사들의 문제도 일반 상식으로 봐도 용서할 수 없는 죄가 아닌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이럴 수는 없다. 이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 교회 목회자로 남아 있는 것은 결국 목회를 직업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맘으로 매주 설교가 나올까? 하긴 누구는 설교집을 복사해서 읽고 있더구만... 그래서 양심이 있다면 떨려서라도 하나님 믿어라, 착하게 살아라 못할텐데 말이다. 하나님 믿지 않는 목회자들 제발 교회를 떠나라.

2. 돈을 섬기는 목회자들 교회를 떠나라

중학교 때였다. 교회는 새로 건축을 준비하던 중이였고, 교회가 부흥해야 한다며 당시 이름을 날리던 신현균 목사를 데리고 왔다. 부흥회가 끝나고 마지막 건축헌금 작정의 순간이 되자 신목사는 일단은 얌전히 성도들의 작정헌금을 요청했다. 원하던 금액이 안나왔을까? 이 목사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뒷문 잠그세요. 아무도 못나가게"하더니 계속해서 헌금 작정을 요구했다. 어느 여자분 내고 싶어도 낼 수 없어서 마음이 아팠는지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 소리에 신 목사가 한말을 나는 아직도 있지 못한다. "왜 울고 그래. 내가 돈 내라고 그랬지 울라고 그랬어?" 25년전의 일이다.

교회에서 얼마나 돈을 밝히는지 알 수 있는 한 대목이다. 나중에 알게된 것이지만 이렇게 부흥사가 가서 작정헌금을 많이 받아내면 그 중 얼마를 리베이트 명목으로 받는다고 한다. 요즘 교회는 하나님이 두개다. 명목상 경배하는 여호와 하나님. 교회를 지배하는 또 다른 실질적인 하나님은 돈이다. 재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힘이다. 세상에 소통되는 그 원칙이 교회에서도 100%는 아니더라도 95%는 똑같이 적용된다. 부유한 지역의 교회들은 금요일에 주일 1부예배라는 이름으로 드린단다. 금요일에 와서 편하게 예배드리고, 일요일에는 놀러갈 수 있도록. 왜 그럴까? 보통 금요예배에는 헌금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김홍도 목사의 금란교회가 새로운 예배당을 돈을 엄청 들여 남부럽지 않은 ㅡ.ㅡ 예배당을 지었다. 헌당예배랍시고 참석했던 그밥의 그나물인 한 목사가 이런 말을 했단다. "목사가 되어서 이정도 멋진 예배당을 하나님께 드려야지. 그러지 못하는 목사들은 창피한줄 알아야 돼" 난 그 목사의 하나님은 도데체 어떤 하나님인지 궁금하다. 이름은 기억안나지만 그 목사도 꽤 큰 교회의 담임목사다.

난 교회가 세상보다 제물을 더 숭배한다고 생각은 안한다. 하지만 세상보다 덜 숭배한다고도 생각 안한다. 최소한 교회만큼은 자본의 논리에서 좀 벗어나야하지 않겠는가. 하나님보다 돈이 더 중요한 목회자들 제발 교회를 떠나라.

3. 신도수 제일주의 목회자들 교회를 떠나라

한국 기독교에서 신도수는 곧 파워다. 목사들도 사람이 사는 사회인지라 예전에는 연륜이니 나이니 따졌단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거 별로 힘이 없단다. 신도수 많은 교회 목사가 최고 대우를 받고, 그렇지 못한 목사들은 부러움에 "나도 한번 큰 교회 만들고 말테다"라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 목사의 윤리성이니 인간성... 영향이 없지야 않겠지만, 신도수가 많으면 성격이 개 같아도 일단 용납이 된다. 지금 한국교회가 이렇게 세상과 담을 쌓고 자기 밥그릇만 챙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성장 제일 주의 때문일 것이다.

신도수가 중요한 이유는 곧 그것이 중요한 수입원이기 때문이다. 요즘 강남에는 적당한 숫자로 "알뜰한" 신자들만 받아서 잘먹고 잘살자는 교회도 생겼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신도수 많은게 짱이다. 무슨 교회 성장학 세미나는 그렇게 많은지. 성공한 교회라는 이야기만 나오면 미국이고, 아르헨티나고, 싱가폴이고 때거지로 몰려가 어떻게 신도수 늘렸나 배우고 온다.

한때 "전도 안하는 사람은 구원 받은게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교회들이 있었다. 아니 아마 지금 더 늘었으면 늘었지 없어지진 않았을거다. 이거 성경 말씀에 비추어보면 명백한 오류다. 하지만 상관없다. 신도들의 죄의식을 자극하든, 구원을 걸고 협박을 하든 사람들 끌어다가 교회를 채우게 하는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해마다 새로운 전도왕이 생기고 책을 쓰고 여기 저기 다니면서 강연하는 것, 예수의 지상명령에 비추어 볼 때 틀린게 아니라지만 좋은 맘으로만 쳐다볼 수는 없는 것이다. 큰 교회 만드는게 가슴에 쌓인 오랜 숙원인, 오로지 오매불망 대형교회가 꿈인 목회자들 제발 교회를 떠나라.

4. 공부하지 않는 목회자들 교회를 떠나라

80년대 초반이였던 것 같다. 창조과학회라는 단체에서 와서 강연을 하는데, 천체 사진을 보여주면서 한쪽 구석에 구멍같은게 있다고 말하며, 그게 성경이 말하는 천국의 증거란다. 하늘에 구멍이 뚫려있어 그곳으로 들어가면 천국에 들어간단다. 20몇년밖에 지나지 않은 일이다. 중학생의 이성으로도 말이 안되는 주장을 과학이라는 이름을 들고 이야기를 하는게 통하였다.

성경이나 교리에 대해 질문을 하면 많은 교회들이 제대로 대답을 못하고 "주님의 뜻"과 "오직 믿음"을 강조하는 경우가 있다. 꽤 큰 교회를 담당하는 목사가 성경의 기본적인 가족 관계도 모르는 것을 보고 황당했던 기억이 있다. 그게 통하는게 한국 교회다. 무디 목사처럼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더라도 크게 일을 한 사람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무디는 부족한 지식을 쌓을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교회를 보면 그런 지식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널린게 신학교다. 이전에 했던 공부가 무엇이던지 간에 "은혜"받고 신학교에 가면 어떤 곳에서는 이년만에 졸업을 한다. 그리고 바로 전도사요 몇년 지나면 목사다. 그래도 나름대로 체계가 잡힌 교단은 쉽게 목사 안수를 하지는 않지만, 군소교단에서 그걸 다 지키는 건 아니다. 실제 친척 중의 하나는, 신앙 경력 전혀 없이 어느날 받은 "은혜"에 신학교에 들어가 이년만에 전도사가 되었다. 그 사람 나중에 혼자 사는 여신도와 바람펴서 부인과 이혼했다.

기독교는 그대로의 논리가 있다. 무수한 사람들이 기독교의 교리를 설명하기 위해 체계적인 이론을 쌓아왔다. 예를 들어 존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란 책이 있다. 예수에 대한 교리들을 체계적으로 왜 그래야하는가를 설명해 놓은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기독교가 참 논리적인 종교구나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한국 교회중 어느 교회에서도 그런식의 체계적인 접근을 보질 못했다. 그런 고전을 목회자들이 안 읽어 봤을까? 기독교에 대한 많은 질문들에 대해 합리적이면서도 성경에 위배되지 않는 설명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 교회에서 잘 듣지 못한다. 왜 그럴까? 내가 목회자들보다 똑똑해서? 책을 많이 읽어서? 아니다. 지금 한국 교회에서는 그런 지식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도 밀어붙이면 된다는 목회자들. 목회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성경이 말하는 것을 약간 비틀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목회자들. 이 사람들이 위의 세가지 경우만큼 직접적인 해를 주지야 않지만 결국 무지한 상태에서 목회자만 좇아가는 신도들을 만들기에 이런 목회자들도 교회를 떠나야한다고 생각한다.

****

한참 쏟아내었더니 마음이 후련하긴 하다. 그런데 이런 말이 들리는 것 같다. "너는 얼마나 잘 났기에". 맞다. 나도 부족한 것 있고, 나도 돈 중요하다 생각하고, 나도 성경의 말들에 의심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 부족한 사람들이지.

하지만 내가 지적하고 싶은 건 몇몇 목회자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목회자가 어떤 문제가 있던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교회만 크면 모든게 용납되는 그런 흐름이다. 교회 전체적으로 그런 분위기를 없애지 못한다면 한국교회의 장래는 없다고 생각한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만 제대로 따라도, 예수를 닮고자 조금만 노력해도 한국교회는 최소한 욕은 먹지 않을 것이다. 예수의 원리를 따르지 않고 세상의 원리를 따르는 목회자들... 그렇게 세상이 좋으면 교회를 떠나는게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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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아이를 좋아하는 여인이 하나 있었다. 이 여인은 사랑이 워낙 넘치기 때문에 그 사랑을 받아줄 아이들이 필요했다. 아이들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이 여인의 최대 행복한 순간이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아이들이 나중에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착한 아이로 자랄지, 아니면 말을 안듣는 나쁜 아이로 자랄지 알 수가 있었다. 무섭지만 아이들이 만약에 말을 안들으면, 그 아이들은 평생 감옥에 같혀 매일 매일 형벌을 받아야한다. 그래도 이 여인은 아이를 낳는다. 착한 아이와 나쁜 아이를 동시에... 그리고 그 모든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 중의 반 넘는 아이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나쁜 아이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

전지 (모든 것을 앎) 라는 하나님의 속성과 사랑이라는 속성을 섞어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만들어 보면 위와 같은 모양이 나올 수 있다. 실제로 이 것이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의 시나리오다. 하나님은 사랑할 대상이 필요해서 그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에덴 동산에 두어 살게 하였는데, 그 에덴 동산에는 선악과라는 나무를 두어 인간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순종해야하는 것을 항상 기억하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으며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을 했고, 그 결과 인간 세계에 죄가 들어왔다. 아들인 예수를 보내어 착한 아이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많은 아이들이 나쁜 아이로 자라 결국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

전지하신 하나님이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을 것을 몰랐을까? 몰랐다면 전지한 하나님이 아니다. 만약 알았다면 그건 방임이 아닌가? 어떤 부모가 사랑하는 아이를 놀이방에서 놀게 했다. 그 안에는 아이가 재미있게 놀만한 장난감이 참 많이 널려있다. 그런데 그 안에 칼한자루가 놓여있다면? 아이한테 이 칼은 위험하니까 절대로 만지지마? 라고 했다고 부모의 책임이 다 없어지는 걸까? 더군다나 그 아이가 칼을 만져서 다칠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렇다면 미리 그 칼을 없애버리는게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부모의 책임이 아닐까? 아이가 칼을 만져서 다쳤다면 도데체 누구의 책임이 더 큰 걸까? 게다가 그 부모는 아이가 칼을 만졌다고 놀이방에서 쫓아내버렸다.

심각한 자기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속성으로 전지 (모든 것을 앎) 전능 (모든 것을 할 수 있음), 무소부재 (어디에나 있음), 영원성 (처음과 끝이 없음), 그리고 변하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도데체 이런 하나님이라면 인간이 태어나서 고생하고, 그리고 많은 수의 인간들이 결국 지옥에서 끝나지 않을 형벌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 인간을 왜 만들었을까? 자기 만족을 위해서? 사랑의 대상이 필요해서 강아지 하나 데려오듯 인간을 만들은 걸까? 그렇게 해놓고 왜 자기 자식까지 죽여가면서 인간을 위해 애를 쓸까? 아예 처음부터 인간을 만들지 않았으면 되는 것 아닐까? 그럼 사랑할 대상이 없어서 너무 외로워지는 건가? 그걸 못참는다면 전능의 하나님일까?

우리 딸이 예뻐하는 강아지 인형이 있다. 너무나 예뻐해서 잘 때도 안고 자고, 학교에도 들고 다닌다. 그 강아지 인형은 절대로 내 딸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우리 딸이 그 인형으로 인해 얻는 즐거움이 줄어드는 것 같지도 않다. 사랑하고자하는 딸 아이의 욕구를 강아지 인형은 적어도 지금은 충분히 만족시키고 있다.

사랑할 대상이 필요하다면 아예 인간의 인형을 만들면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말 잘듣는 천사들도 있지 않은가? (몇몇은 반항을 하긴 했지만...) 도데체 인간을, 그것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을 하나님은 왜 만들었는가?

인간들이 죄(성경이 말하는)를 짓고 고생하다 지옥에 가는 것... 그건 인간과 하나님의 공동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을 충분히 아시는 하나님이 왜 그냥 놔두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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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가족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우선 9살 먹은 우리 딸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아빠.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인데 왜 사탄을 그냥 놔두시나요? 지금 사탄을 없애버리고 사람들이 다 차가게 살면 안되나요?" 나는 내가 알고있는 모범답안을 말해줬다. "그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실려고 그런 거야. 우리는 로봇이 아니잖아". 그 대답에 우리 아이는 만족한 모양이다. 그래 우리는 로봇이 아니지...

아내에게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에 같이 쓸 수 있는 저널을 하나 선물을 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은 릭워렌이라는 목사가 쓴 책으로 크리스찬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 40일간 점검할 수 있게 쓰여진 책이다. 많은 기독교인이 읽고 영향을 받았다. 이 책 첫날 내용이 이거다. "우리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아내가 그걸 읽고 나서 나에게 한 말. "이게 우리 살아가는 목적의 전부라면 우리는 로봇 아닌가?" "전에는 다 이해가 되었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동의가 안되네"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인가?"

자유의지를 주었다고 하면서, 우리 삶의 목적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러면 그 자유의지는 원래 지어진 목적대로 살지 않는 자유의지가 아닌가? 결국 죄를 짓는 자유의지라고 해석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을 즐겨하시는 것 같다. 고민하고 갈등하지 않는 방법은 딱 하나다. "믿고 그냥 고분 고분 순종하는 것" 그럼 그게 로봇이랑 뭐가 다른가? 결국 하나님이 원하는 건 로봇이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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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트랙백] 로봇인가 아니면 자유인인가..

    2007/02/19 09:43
    삭제
    쉐아르님의 로봇인가 아니면 자유인인가... 에 대한 덧글. "우리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라고 하는 건 저도 머리로는 알지만, 삶에서는 왜 그래야 하는지, 쉽게 잘 안되더군요. 사실, 저렇게 표현 되는 건 창조목적이 그러하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서로 설득하려고 또는 설득당하지 않으려고, 결론이 나지 않는 갑론을박에 목을 메는 경우를 가끔 봅니다. 그러다가 교회에서 예배시간에 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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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18 07:4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쉐아르님 포클에서 사진 잘 보고 있었답니다.
    저 또한 30년이상을 기독교인으로 삶고 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고 떨리게도 목사의 삶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게도 쉐아르님같은 영적 여행이 꼭 필요했습니다.
    함께 쉐아르님 여행에 동행합니다. 무단으로...
    뜨거운 여행이 되시길 바랍니다.
    • 2007/02/18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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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가미님 반갑습니다. 포클에서 저의 자리가 그리 큰게 아닌데도 기억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의 여정 훔쳐보지 마시고 ^^ 자주 오셔서 지켜 봐주시기 바랍니다. 아가미님이나 저나 치열하게 그분과 대면했으면 합니다.

      저도 한때는 목회자의 길을 생각했습니다만... 저에게 그만한 소명이 없는듯 하여 저의 욕심을 접었습니다. 전에는 이만큼 신앙에 대한 치열함이 없었기에 그때 목회자의 길을 무턱대고 선택했다면 저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안좋은 영향을 줄 수 있었을 것 같네요. 아가미님은 안그러시겠죠? 아름다운 목회의 길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 2007/02/1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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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그리고 아가미님도 아가미님의 의견을 나누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질문은 많은데... 제가 지금까지 알아왔던 답말고는 더 이상 진전이 안되네요.
  2. 2007/02/1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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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치열한 물음 끝에 오는 답이라면 달려볼만 하겠지요.
    고백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반응같습니다.
    맞짱하듯 일대일의 대면관계속에서 얻어지는 고백일테니까요.
    훔쳐보지 않겠습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지켜보겠습니다.
    그리고 쉐아르님을 통해서 다시 저를 들여다보고 다시 질문하고 답을 얻고.
    그래서 아름다운 길을 걷길 바랍니다. 혼자가 아닌 동행의 길을.
    뜨거운 여행 힘껏 응원합니다.
  3. 2007/02/19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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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랜덤으로 들어왔다가 쉐아르님의 진지한 고민의 흔적을 따라 여기까지 왔네요. ^^ 저도 조금은 고민했던 문제라서 글을 남깁니다. 저 같은 경우는 차라리 로봇처럼이라도 좋으니 더 이상 고민하거나 방황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습니다만.. ^^;

    "우리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라고 하는 건 저도 머리로는 알지만, 삶에서는 왜 그래야 하는지 쉽게 잘 안되더군요. 사실, 저렇게 표현 되는 건 창조목적이 그러하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서로 설득하려고 또는 설득당하지 않으려고, 결론이 나지 않는 갑론을박에 목을 메는 경우를 가끔 봅니다.

    그러다가 교회에서 예배시간에 접한 말씀이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에 관한 거였어요. 역사상 최고의 전도자가 과연 누굴까 하는 질문에 주저없이 '예수님'을 말씀하셨던 목사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로 삼으신 이는 겨우 열둘에 불과했다는 말씀이었죠. 물론 그 외에도 믿는 이는 많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믿지는 않았지요. 인간의 '자유의지'는 믿음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스스로에게 부여했지만, 창조주와 창조의 목적을 도외시한 인간의 선택은 '죄'가 된다는 말씀이었죠.

    아시겠지만, 로마서1:19에 "하나님을 알 만한 일이 사람에게 환히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환히 드러내 주셨습니다."라는 말씀이 있지요. 가끔은 이 말씀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네이버의 지식iN에서 송유근군의 '빅뱅 5분전에는..'이라는 질문에 대한 생각도 나름 그런 의미에서 해 보았구요.

    결국 모든 것은 '자유의지'에 따라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의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접하는 질문 중 하나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왜 이토록 기근과 전쟁, 재난, 빈부의 격차로 인한 불합리한 세상이 되도록 내버려두느냐'는 것 때문이었죠. 하지만, 그 불합리하다고 보여지는 대부분의 것은 바로 나와 같은 또 다른 사람의 '선택'에 의한 것임을 염두에 두지 않고, 그저 불평어린 또는 반대를 위한 변명으로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얘기가 많이 길어져버렸네요. ^^; 평소 이런 얘기를 할 기회나 자리가 없어 마구 주절거리게 된 것 같아요... 아무튼, 가끔씩 들르도록 하겠습니다~ 남은 설연휴도 잘 보내세요~ (^_^)
    • 2007/02/20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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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치님의 빅뱅 5분전에 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창세기의 창조과정과 빅뱅이후 3분간을 비교해본적도 있었습니다. 그 과정의 유사함에 놀라기도 했었지요.

      서로 설득하려고 혹은 설득당하지 않으려고 결론이 나지 않는 갑론을박에 대해서 동의합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제'가 어디에 서느냐이겠지요. 어느것이 진리인지 제가 어느쪽을 선택할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의지에 대해서는 그것을 은혜와 사랑으로 해석을 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왜 그냥 쉬운 길 - 사람들의 의지를 조정하거나, 아니면 확연한 증거를 보여주는 일 - 을 택하시지 않는지는 제게 커다란 질문입니다. 세상의 재난이 인간의 선택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개입을 하실 수도 있는 것 아닌가하는거죠. 믿는 이들의 자잘한 일들에는 간섭하는 (적어도 크리스찬들은 그렇게 믿잖아요) 하나님이 왜 세상의 큰 일들은 그대로 내어버려두시는지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블로그를 만들고 나서 많은 분들이 보시고 자신의 의견을 내어주셔서 힘이 됩니다. 평소에 하지 않았던 질문들... 평소에 피력하기 힘들었던 의견들... 그런 것을 나누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고 소망합니다. 자주 들러서 하늘치님의 의견을 나누어주셨으면 합니다.

김홍도라는 목사가 있다. 세계에서 제일 큰 감리교회의 담임목사다. 어렸을 때 그의 설교를 듣고 정말 큰 감동을 받았다. 나도 새사람이 되어야지. 이 목사가 어떤 여인에게 삼천만원을 주었다. 목사 사모도 아는 것을 보면 뭔가 확실히 약점이 잡혔나 보다. 그걸 이 교회의 장로 한명이 교회건물 신축의 이권 땜에 다투고 나와 폭로를 했다.

조용기라는 목사가 있다.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의 담임목사요 그로 인해 엄청난 사람들과 돈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 목사에게는 탤런트와 결혼했다가 이혼한 실제 친구의 표현에 의하면 개망나니인 아들이 있다. 교회가 크다보니 교회청소를 위한 용역업체가 있는데 이 아들이 사장이다. 이 사장이 교회에서 만든 국민일보 사장을 좀 하더니, 업계에서 선두적인 새로운 개념의 스포츠 신문을 만들었다. 매일 매일 국민의 어두운 욕망을 채워주는 신문을 만드는 아들에 대해 조목사가 제재를 가하거나 바로잡을려고 하는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곽선희라는 목사가 있다. 교회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번은 들어봤을 소망교회 담임 목사였다. 이 목사가 중국의 여인과 바람이 나 아들까지 가지게 되었다. 이 사실이 교회에 알려졌는데도, 장로들은 "곽목사만큼 설교 잘하는 사람 있음 데리고 와봐"라는 말을 하며 이 아들까지 교회에서 지원을 해주기로 약속했단다.

최근에 잡힌 낮에는 전도사 생활하다가 밤에는 삼십명 정도의 여자를 강간했다는 생미친놈을 빼고라도... 도데체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이 있다고 믿는다면 목사들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그 사람들은 제멋대로 사는데 평신도인 내가 하나님 믿고 착하게 살려고만 노력한다면 세상 너무 불공평한 것 아닌가...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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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18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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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여기에 반응해보죠~
    언급하신 목사님들에 대해 저또한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과 영향력, 거기에 반하는 약함들.
    그 약함들이 악함이 되어가는 것이 순환적 죄의 결과인듯합니다.
    그들을 도덕적인 기준으로 판달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을 공인의 도덕적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나라의 법과 교회의 법이 정하는 법안에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종심판은 하나님의 몫이니...너무 빤하죠???

    하여튼 공의가 흐르는 시대와 세대가 되길 진씸으로~ 바랍니다.
    • 2007/02/19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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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의가 강물같이 흐르는 세상... 정말 그런 세상을 바라왔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조차 그런 세상이 이루어지는 것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습니다. 저를 돌아봐도 그런 세상을 이루는 것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믿겨지지도 않구요.

      하나님이 최종 심판은 하시겠지요. 하지만 그들로 인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고 기독교를 떠나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뭔가 행동을 하셔야하지 않을지요.

      그래도 아가미님은 좋은 목사님이 되실 것 같아요 ^^
  2. 2007/02/19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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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행동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김,조,곽 목사들을 통해서도 일하시고 있겠지요.
    성경에 기록된 인간의 치졸한 역사들을 통해서도 일하신다 믿습니다.
    그리고 선한 역사를 기대하는 쉐아르님과 절 통해서도 일하신다 믿습니다.

    한국에 들르시면 꼭 한번 연락주세요. 꼭 만나뵙고 싶습니다.
    쉐아르님의 여행을 지켜보며 제가 얼마나 멍청하게 신앙생활을 했는지
    돌아봅니다. 습관적인 신앙을 비꼬면서 그렇게 살고 있었습니다.
    감격이 없는 미지근한 삶을... 기대됩니다. 뜨거운 삶이~
    • 2007/02/20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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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일한다... 제가 항상 믿어왔고 주장해왔던 말입니다. 모든 것이 합하여서 선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믿음. 문제는 각 개인이 그 역사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참여할 것이냐 부정적인 방향으로 참여할 것이냐가 중요하겠지요.

      그래도 그렇게 용납하고 넘어가기에는 그들의 영향력이 너무나 큽니다. 아무리 죄인들이 모이는 교회라고는 하지만, 최소한 책임자는 좀 괜찮아야하지 않을까요? 누구 표현대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세일즈멘 교육을 잘못시키시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훌륭한 삶을 살아가시는 목회자들이 많은 것에는 동감합니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그들의 삶이 잘못된 기독교의 풍조를 덮어주기에는 한국 기독교는 너무 멀리 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말하는데로 하나님이 촛대를 옮기시는 건지, 아니면 새로운 개혁을 준비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의 한국교회를 보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보다는 부정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거라는게 제 의견입니다.

      아가미님에게 조금이라도 자극이 되었다면 ... 그게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 저도 그런 삶을 바랍니다. 미지근한 것이 아닌 뜨거운 삶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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