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눈 기억이 있다. "세상 모든 종교가 다 사람을 사랑하라고 하고,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라고 말을 한다. 내가 보기에는 다 거기서 거기다". 나는 이렇게 말을 했다. "그건 구원이라는 것을 배제하고 봤을 때이다. 종교에 구원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구원의 문제에 관한한 모든 종교는 다 다른 것이다".

정말 그렇다. 종교마다 제시하는 궁극적인 목표나 구원의 방법은 다 다르다. 어느 종교든지 구원의 방법에 관한한 폐쇠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경우는, 예수의 경우는 다르다. 기독교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이라는 명시적인 선언 때문일 것이다. 예수는 자신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것이 진리라고 믿는다. 종교마다 각각 다른 구원의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의 종교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과연 그런가? 예수 이외에 다른 길은 없는 것인가?

우리는 겸손을 미덕으로 삼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자기가 회사에서 가장 일을 잘하고, 또 자신이 높은 자리와 높은 연봉을 받아 마땅하다고 지속적으로 주장을 한다면. 설사 그 사람이 능력이 많다고 하더라도 심정적으로 거부감이 느껴질 것이다. 하물며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구원의 문제에서 기독교처럼 "예수만이 유일한 길이다. 그를 믿지 않는자는 다 지옥에 떨어진다"라고 말한다면 일단 반감부터 생길 수 밖에 없다.

이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중에 제일 큰 이유는 그 주장이 독선적으로 들린다는 것과 또 공평하지 않게 여겨진다는 것이다.

절대로 '절대'라는 말을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Never say 'never')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이다. 특히 현대사회처럼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예수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말이 쉽게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흔히 사용하는 비유가 있다. 산정상에 올라가는 길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가 있다. 어떤 이는 사람들이 닦아놓은 등산로를 통해서 올라갈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암벽을 등반해서 어렵게 올라갈 수도 있다. 하다못해 헬리콥터를 타고 산 정상으로 날아오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구원'이라는 종교의 궁극적인 경지에 이르는 방법도 종교마다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평성의 문제 또한 답이 필요하다. 예수를 모르고 살았던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또한 세상에는 아직도 예수가 전달되지 않은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들은 그럼 자동적으로 지옥에 간다는 것인가? 윤리적인 측면은 어떠한가? 간디와 같이 누가 봐도 숭고한 삶을 산 사람이 예수를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갔다고 하는데, 세상에 대한 적대감 하나로 17명을 죽인 김대두 같은 사람이 죽기 직전에 회개하고 천국에 갔다고 한다면 뭔가 불공평한 것 아닌가?

요즘 같은 세상에 정말 예수만이 답인가? 다른 곳에서도 구원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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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못 내릴 것 같다.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해 생각하고 읽어보고, 또 여러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지만, 양쪽 다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분명히 진화론은 생명의 기원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우주의 기원에 대해 생각할 때, 신의 존재를 생각하게 되듯이,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생각할 때, 누군가 design한 자가 있지 않다고 하면 설명하기가 무척 어려워진다.

하지만 반대로 '전통적인' 창조론은 화석을 통해서 보여지는 대진화에 대한 증거들을 설명하지 못한다. 분명히 대진화라 여겨지는 중간화석은 존재하고 있고, 또 그 수많은 중간화석들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다.

내 잠정적인 결론은 모른다이다. 어느쪽으로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하지만 한가지 문제만으로 전체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는 없는 일이기에... 그것이 신이 있는지에 대해 모른다는 결정은 아니다. 진화론이 옳은가 틀린가의 문제는 더 생각하고, 더 공부하고 판단을 내릴 일이다. 아니 어쩌면 평생 마땅한 대답을 못찾을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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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달 남짓 무수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또 나름대로 답을 찾을려고 노력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남아있는 질문들이 많다. 난 아직도 바벨탑이 있었다는 것이 밑겨지지가 않는다. 난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만 선택했다는 것이 불만이다.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한 논쟁을 보면서도, 난 아직도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수만이 구원이다라는 주장. 다른 종교들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다른 종교에서도 내가 느끼는 것과 같은 평안과 또한 자발적인 헌신의 마음이 생기는 지 궁금하다. 외계인은 있는지. 천국의 삶은 어떨지. 솔직히 지금의 느낌은 천국이 굉장히 심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당장 가족간의 관계도 없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질문을 하는 신앙.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신앙을 원한다.

맹목적인 신앙은 나의 신앙이 아니다. 아니 그건 누구의 신앙이 되어서도 아니된다.
생각하는 신앙. 끊임없이 해답을 찾아 나가는 신앙.

그런 신앙이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신앙이 아닐까?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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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존재에 대한 논쟁이 있을 때마다 항상 등장하는 것이 진화론이다. 아니 사실 논쟁을 거는 쪽은 기독교인 쪽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검색엔진에서 "진화론" "증거" 이 두단어를 치고 검색을 하면, 진화론을 증명하는 증거보다, 진화론의 증거를 부정하는 기독교인들의 글이 더 많이 올라와 있다.

근데 진화론을 부정한다는 기독교인들의 글을 보면 너무 천편일률적이다. 어느 글에서나 등장하는 똑같은 논점, 똑같은 주장들. 창조론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론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에서 그치고 있다. 진화론이 틀렸다고 해서 창조론이 곧 옳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창조론을 옹호하여 과학으로 증명한다고 하는 창조과학회에 가보더라도 상황이 더 좋은 것은 아니다. 반쯤은 진화론의 문제점 지적. 나머지 반은 창조론 옹호이지만 많은 글들이 과학이라 부르기에는 부족한 글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창조과학이라고 이름을 거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논리가 일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이는 빅뱅이 사실이 아니라는 증거를 열심히 나열하고, 어떤 이는 빅뱅이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글을 쓰고 있다.

그에 비해 진화론에 관한 학술적인 자료들을 찾아보면 굉장히 체계가 잡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증거자료들과 증거화석들이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창조론 비판에 대한 글만 읽어본 기독교인들은 진화론이 허접한 이론이고 증명되지도 않은 가설을 어거지로 우기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진화론을 공부해보면 꽤나 체계적이고 뒷받침되는 증거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각 가설에 대해 어떤 증거가 나오면 그 가설이 잘못되었다는 것까지도 연구가 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조론과는 명백히 위배되어 보이는 진화론. 그리고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무시할 수 없는 양의 증거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증거들을 신이 없다는 증거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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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라는 것을 이야기할려면 먼저 기적의 정의부터 내려야 할 것 같다. 국어사전에 기적의 뜻은 '사람의 생각이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기이한 일'으로 정의 되어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말한다. 또한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기적이라고도 표현한다.

기독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종교에 대해 사람들이 비판하는 것은 소위 기적을 못 믿겠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성경은 온갖 기적으로 가득차 있다. 노아의 홍수, 애굽의 열가지 재앙, 갈멜산에서의 불내림, 예수의 동정녀 탄생, 그리고 예수의 부활까지. 그뿐인가. 요즘도 교회 내에서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암이 낳았다는등의 육체적인 현상도 있고, 기도를 했더니 고아들을 먹일 빵이 배달이 되었다는 믿기 어려운 기적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이 기적이라는 것이 이성적으로 참 납득하기 어렵다. 성경에 나오는 기적들은 다 전설이나 동화 같고, 요즘 벌어진다는 기적들은 사기극이거나, 심리적인 착각, 혹은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게 더 이해하기도 쉽고 받아들이기도 쉽기 때문이다. 양보해서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건 아직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지 그게 기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선 시대 사람들에게 비행기를 보여주면 모두가 기적이라 벌벌 떨겠지만, 지금 세상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지금 벌어지는 현상들도 언제가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무신론적인 주장이다. 결국 기적이란 없다는 것이다.

근데 이걸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는 이유는 기적을 체험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기적이 없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으로 사는 오랜 기간 동안, 이성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일들을 많이 겪었다. 그중에 우연이라고 굳이 설명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들을 빼고도 설명을 할 수 없는 물리적인 일이 두가지가 있다. 내 옆에서 벌어지지 않았거나, 내가 직접 체험하지 않은 일들은 제외했다.

이십여년전 큰조카 (큰 누나의 아들)과 둘째 조카 (둘째 누나의 딸)이 거의 같은 시기에 태어났다. 우연의 일치인지 두 아이다 엄마 배속에서 같은 문제를 가지고 나왔는데, 그건 고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였다. 한쪽에 응어리가 져서 그걸 치료하기 위해서는 일년 가까운 물리치료를 해야했었다. 아니면 평생 그 흔적을 가지고 있게 된다고 한다. 당시 전도사였던 큰 매형 식구는 일년 가까운 물리치료를 감당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였다. 그래서 기도를 했고 하루만에 큰 조카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응어리가 없어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물리치료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둘째누나의 딸은 치료를 못받았기에 그 흔적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흔히들 기도를 받고 병이 고쳐지는 것은 기도 받은 사람의 자기 암시를 통한 착각이거나 아니면 그 사람의 정신력이 치료를 도왔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큰 조카의 경우는 그때 오개월이 안되었다. 자기 암시를 할 수도 없거니와 정신력이 발휘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질병도 절대적으로 장기적인 물리치료를 해야지만 되는 경우였다. 오히려 암이 낳는 것보다도 더 타당한 설명을 찾기 어려운 것이다.

또 하나는 소위 말하는 성령체험이다. 방언 같은 것이다. 방언을 하거나 진동을 경험하는 것을 보고 집단적인 히스테리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뭐...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 하지만 방언도 익숙해지면 집단 히스테리 속에 있어야만 방언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원한다면 어디서든지, 전철 안에서도, 회사에서 근무하다가도, 즉 아주 멀쩡한 상태에서도 방언을 할 수가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방언으로 대화도 나눈다. 다른 사람이 하는 방언에 대해서는 정신적인 착각이라 말할 수 있어도 내가 그걸 경험하고 있을 때는 정말 "누군가"가 나를 조종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만큼 방언은 내가 아주 정상적인 상태, 전혀 흥분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내게서 내 입에 대한 콘트롤을 뺐어간다. 그 현상은 지속적이며 일관적이다. 그리고 하면 할수록 더 발전되고 (어휘가 늘어나고) 내가 콘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늘어난다.  이런 현상을 이성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직접 보고 경험한 내 입장에서는 "기적은 없다"고 잘라 말하는 것에 모순이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눈 앞에 벌어지는 현상이 있고, 그 현상을 '아직까지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러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두가지의 타당한 설명이 있을 수 있다. 한가지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기적은 없지만 아직은 왜 그런지는 모른다. 하지만 과학의 발달을 통해 분명히 원인을 찾아낼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입장이고, 또 한가지는 기적의 원인이 되는 초월적인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사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온 세상을 창조한 -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성경에 나타나는 기적들을 인정하기란 어렵지가 않게 된다. 천지 창조와 같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었다면, 예를 들어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유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은 너무나 쉽기 때문이다. 결국 질문은 성경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창조자를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돌아가게 된다.

선택의 문제로 돌아가는듯 하지만, 그래도 차근 차근 창조자의 존재 여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고 하겠다. 유신론 특히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창조자의 존재 증거는 다음의 다섯가지로 요약이 될 수 있다. 사실 증거라기보다 상황에 따른 추론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1. 신을 통해 세상의 근원을 설명할 수 있다

우주의 근원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빅뱅이론이다. 빅뱅이론은 우주 전체가 아주 오래전 생긴 대폭발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이론이다. 공간과 시간은 대폭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대폭발 이후에 모든 것이 생겨났다는 이론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유력한 증거들이 있기에 이 이론은 현재 우주의 근원에 대해 가장 타당한 설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이 이론에 대해 사람들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이 빅뱅의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두가지의 의견이 있다. 무신론자들은 우주 자체가 근원이고 영원하다는 생각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여호와는 '스스로 있는자'이며 영원하다고 믿는다. 우주 자체가 근원이거나 아니면 그 우주를 만들어낸 근원이 되는 신이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주에는 출발점(빅뱅)이 있기에 빅뱅을 일으킨 원인이 있어야한다는 것이 유신론자들의 주장이고, 그 원인은 바로 신이라는 것이다.

#2. 잘 꾸며진 우주와 인간은 신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면 참 잘 짜여져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정교한 것을 보면 누군가 디자인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것이 우연의 결과다라는 것이 더 믿겨지기 힘들다는 생각이다. 사실 지금의 세상이 우연의 결과다라는 주장은 무신론자나 진화론자들에게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였다. 그 때문에 최근 몇십년간 현재 결과의 개연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가지 가설들이 제시 되었다. 하지만 어느 이론도 반대되는 증거가 있는 상태다. 혹은 스티븐 호킹처럼 무한 우주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무한대 수의 우주가 있는 것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우연히도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는 가설이다. 하지만 이 가설은 어쩌면 '신이 있다'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보다도 더 증명하기 힘들어 보인다. ^^

#3. 객관적 도덕 기준의 존재 여부는 신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이 주장은 두가지의 작은 논쟁거리를 담고 있다. 첫째는 객관적 도덕 기준이라는 것이 있느냐 하는 것과, 객관적 도덕기준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객관적 도덕 기준이라는 것은 없다라고 말을 한다. 세상의 많은 도덕 기준들이 사회적인 발전을 통해서 만들어진 사람들 사이의 동의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구하고 어떤 것들은 명백히 '나쁜 것이다'라고 말할 만한 것이 있다. 나는 이 문제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면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이들에게 양심이라는 것이 주어져 있는데, 그 마음을 잠잠히 들여다 보며 '살인이라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애들을 학대하는게 뭐가 나쁘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찌에 대한 유태인 학살이 단지 역사가 그렇게 흘러갔기 때문이지 '객관적으로'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세상에 객관적인 도덕 기준이 있다고 '이성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면 객관적 도덕 기준이 있다는 것이 신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거냐?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신이 그런 객관적 도덕기준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그럴듯한 설명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바라보면 사람들에게 양심이 있다는 것이, 객관적 도덕기준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런 것이 없다면, 모든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데로' 행동한다면... 그게 지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신문 사회면에 보이는 도저히 이성이 있다면 할 수 없는 추악한 일들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이대로 발전한다면 이게 지옥이 아닐까?

#4. 신의 존재는 부활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설명이다

부활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또 다른 논쟁거리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부활이 없었다면 예수 당시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설명하기가 굉장히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부활이 있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에 대해서는 따로 한번 정리를 해 볼 생각이다. 그렇다면 부활을 설명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보통 사람의 경우에는 부활은 없다. 몸속의 장기들이 활동을 하지 않아 잠깐 가사 상태에 빠지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예수처럼 외부의 요인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후에 36시간이 넘어서 다시 살아나는 경우는 있을 수가 없다. 누가 살려주지 않는 이상, 누군가 살려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이가 있지 않은 이상 부활을 설명할 방법은 없다.

#5. 신은 경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은 존재한다

아마도 이 주장은 가장 주관적이면서도, 어쩌면 가장 객관적인 것일 것이다. 예를 들어 누가 나에게 너의 부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봐 라고 묻는다면 나는 여러가지 증거를 댈 수 있다. 운전면허증, 주민등록등본, 같이 찍은 사진 등등. 하지만 나 개인에게 있어서는 그런 증명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된다. 왜냐면 나는 나의 부인을 보고, 만지고,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으로 신을 경험하는가? 최근 한달여 동안 지난 20여년을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을 돌아보았다. 그 삶 속에서 신, 즉 하나님을 경험했던 순간들이 꽤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있구나. 내가 하나님을 통해 변화되고 있구나. 그런 경험들이다. 물론 앞에서 이야기한 물리적인 경험도 있지만, 사실 나에게 더 놀라운 것은 내 생각과 태도의 변화다. 누군가 물어볼 수 있다. 그게 나의 착각이 아니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냐? 그게 객관적이라고 증명할 수 있냐? 노력이야 하겠지만 내 경험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은 안 한다. 그 경험들은 철저히 주관적이니까. 대신 앞에서 제시한 몇가지의 주장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신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여전히 일정 정도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여러가지 객관적으로 신이 없다면 설명할 수 없는 상황들과 주관적인 경험들을 토대로 '신 이외에는 타당한 설명이 없다'라고 이성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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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아르의 영적 여행이라는 타이틀로 제 블로그를 바꾸고 저의 신앙적인 혹은 영적인 고민에 대한 글만 올려놓기로 한 것은 저와의 약속을 위한 것이였습니다.

신앙에 대해, 삶의 목적에 대해, 인간의 근원에 대해 궁금하고 의문이 있음에도... 먹고 살기에 지치다보면 타협하고, 저의 고민을 묻어버리는 저를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글을 쓰고 저의 고민을 다른 분들과 나누기 위함이였습니다.

내일이면 다시 오랜 비행을 합니다. 그동안 고민했지만 시간이 없어서 글로 정리하지 못했던 저의 생각들을 하늘위에 떠있는 동안, 저만의 공간에서 정리해볼까 합니다.

혹시나 저의 생각에 같은 혹은 다른 의견을 가지신 분들도 서로 신앙에 대해, 삶의 목적에 대해 의견을 나누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종교논쟁은 필요없다고 하지만 소모적이 아닌 건설적인 논쟁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트랙백을 모아놓는 따른 블로그를 만들면 어떨까. 그래서 종교에 관한 글을 트랙백을 걸어서 거기에 가면 관련된 글들을 볼 수 있는 블로그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도 해봤습니다. 어떨까요?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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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보면 많은 기적들이 나온다. 노아의 홍수, 애굽에서의 열가지 재앙, 홍해가 갈라짐, 사막에서의 만나, ... 신약시대로 가서는 예수의 동정녀 탄생, 그리고 예수의 부활까지. 이런 많은 기적들. 인간의 이성으로는 믿기가 굉장히 힘들다.

첫째, 이런 기적들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된다. 노아의 홍수가 생기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가장 높은 산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의 물이 있어야하는데, 그 엄청난 양의 물이 지금은 어디로 갔는가? 노아의 방주만 해도, 하나의 방주 안에 어떻게 모든 동물들을 쌍쌍이 넣을 수 있었을까? 그 먹이는? 그 배설물들은? 예수의 부활에 대해서는 어떤가? 아무도 죽은지 사흘이 지나가서 부활하지 않는다. 잠깐 숨이 끊어졌다 살아나는 이는 있어도, 예수처럼 무덤에 뭍혔다가 살아나는 사람은 없다.

둘째, 이런 기적들이 왜 성경의 시대에만 나타나는가? 지금 세상에는 왜 부활하는 사람이 없는가? 왜 지금 세상에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제물을 태우지는 않는가?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 한번이라도 보여주면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것 같은데 말이다. 간혹 가다 기도해서 병이 낳았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우연이거나 아니면 정신적인 위안에 불과하다. 부흥회에서 은혜받고 암이 낳았다고 좋아하던 사람이 일년 있다가 죽는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셋째, 기독교에서는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도 의문이다. 기도를 해서 기도한데로 되면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고 하고, 그대로 안되면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한다. 그렇다면 기도에 응답해서 인간세상에 개입하신다는 하나님은 어디에 있는가? 이래도 감사, 저래도 감사라면 기도하는 의미가 그럼 무엇인가?

템플턴은 그의 책에서 "이성이 조금만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전설이 동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한다. 이성과 기적, 과학과 기적. 같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생각하는 사람이 기적을 믿는다는 일은 불가능하다.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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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보고

2007. 3. 11. 19:09
많은 질문과 검색 끝에 지금은 세상의 근원에는 누군가 이 세상을 만들고 설계한 이(Intelligent Designer : ID)가 있어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니 ID의 존재를 부정하면 세상의 많은 부분들, 그리고 내 삶의 의미를 설명하기가 굉장히 힘들다고 하는 것이 더 맞겠다

그 ID가 그럼 기독교에서 말하는 여호와 하나님이냐 라는 것은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의 근원에 대해 이성적인 질문을 던진다면 "가장 명확한" 답은 ID라고 할 수 있다.

ID는 과학이 아니란다.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과학의 원리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건 어쩌면 더 철학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ID를 부정하는 많은 주장이 있다. 이제 그런 주장들을 찾아 볼려고 한다. 지금까지 읽은 것들은 심정적인 부정은 많았지만 제대로된 반박은 없었던 것 같다. 이제 무신론자들의 주장을 찾아 봐야지.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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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도올이 인기다. 어느 신문이든 도올의 주장과 함께, 그게 새로운 지식인의 주장인양 한마디 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 같은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정도 기독교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참 웃기다 못해 한심하고, 또 허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 오늘 읽은 기사의 전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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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은 4일 펴낸 <기독교성서의 이해>에서 이미 논쟁을 불러온 ‘구약 폐기론’뿐 아니라 현 기독교에서 너무나 당연스럽게 여기는 유일신앙과 삼위일체설을 정면으로 반박해 또다른 쟁점을 만들었다.

그의 글은 예수 생애 전후 시대와 성서가 형성된 당시의 종교, 문화, 인물들에 대한 고증을 깔고 있다. 기독교를 공인해 13번째 사도로까지 불리는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장인과 부인, 친자식까지 처참하게 고문해 죽인 ‘역사적 사실’도 글에 언급했다.

이 책은 ‘성서 문자 무오류설’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도올은 “초기 기독교엔 구전과 예배제식만 있었지 경전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며 “1세기에만 해도 예수한테서 직접 말씀을 듣거나, 직접 들은 제자한테서 직접 전해들은 ‘사도’의 말이 경전과 같은 권위를 지녔는데, 2세기 초에 이런 사람들이 모두 죽고, 교회 내의 구술 전통이 변형되고 왜곡되면서 곳곳에서 사도성을 가장해 경전을 저작하거나 편집하는 것이 자유롭게 이뤄졌다”고 쓰고 있다.

그는 또 이스라엘 민족의 유일신앙은 야훼교를 창시한 모세로부터 출발한 것이며, 초기 기독교에선 예수가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생각도 자연스러웠다고 주장했다. 그는 “니케아 종교회의(325년)에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알렉산더와 ‘예수는 인간일 뿐’이라며 논쟁했던 아리우스는 오늘날엔 흉악한 이단자로 취급되고 있다”며 “그러나 당시 아리우스의 주장은 초기 기독교도들의 리버럴한 사상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대변한 것이었고, 그렇지 않았다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직접 중재에 나설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도올은 “‘성부·성자·성신’이라는 말도 복음서의 개념이 아니며 오직 가톨릭교회 내에서 성립한 삼위일체 논쟁 이후의 독단적인 교리 개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자유주의 신학 전통이 활발한 서구에서는 자유로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복음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전통 탓에 논의 제약이 심했다. 도올의 주장이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배경이다. 조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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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도올이 삼위일체를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진리라고 인정한 이유를 알기나 하고 말하는 걸까? 그리고 그와 다른 주장을 하는 자들을 이단자로 취급한 이유를 알고 있을까? 삼위일체라는 교리가 나오게 된 근거가 되는 성경구절들을 제대로 찾아보기나 하고 말하는 걸까? 최초의 성경 사본의 추정연대가 50~60년이라는 사실을 알기나 하고 말하는 걸까? 세상에 가장 많은 사본과 참고자료가 있는 것이 성경이고 그들의 일치되는 비율이 95%가 넘는다는 것을 알고서도 자유로운 저작과 편집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성서 문자 무오류설’의 위험성을 지적했다고? 도올은 지금 기독교에서 성서의 문자 하나 하나를 아무런 의식없이 받아들인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무리 보수적인 교회에서도 완전 무오류설을 믿는 교회는 없다. 필사 과정에서 실수가 생길 수 있는 것을 다 인정하고 있다.

도올이 하는 주장의 수준을 보면 그가 '다빈치 코드' 하나 읽고 말하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도올이 하는 말들은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다. 2000년 기독교 역사에서 수없이 거론되어지고 수없이 교정을 거친 말들이다. 그런데 마치 자기가 새로이 깨달은 것인양 이야기하고, 또 그것이 새로운 지적인양 보도하는 신문들... 하나같이 한심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보수적인 전통 탓에 논의 제약이 심했다고? 도올의 주장이 파격적이라고? 20년도 전에 아직도 고등학생이였던 나도 여러번 토론하고 고민했던 주제다. 도데체 뭐가 새롭고 뭐가 파격적이라는 건가?

한국 기독교가 교회 짓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은 초등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 이야기 말고 도올에게서 제대로 된 학문적인 그리고 신학적인 지적을 보고 싶다. 어디서 줏어들은 소문을 말하는게 아니라 기독교 교리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문제가 있는지 하는 제대로 된 비평을 듣고 싶다.

자기도취에 빠져 몇마디 한 것에 남비 들끓듯 하는 걸 보니, 기독교의 꼴이 참 우습게 되긴 되었나 보다. 얼마나 제대로 된 역할을 못했기 이런 주장이 화제가 될까?

Posted by 쉐아르
:
내가 신앙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것을 와이프가 교회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나 보다. 그랬더니 비슷한 고민을 가졌던 한 분이 이렇게 조언을 했더란다. "아무리 고민하고 또 이론적인 책을 읽어도 해결이 되지를 않는다. 성경을 읽고 더 하나님의 말씀에 파고 들어야 그런 고민이 없어진다."라고.

동감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고민을 없애기 위한"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건 심하게 이야기한다면 더 강하게 자기 세뇌를 시키는 것이기도 하지 않나? 난 그러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의심이 생기면 "기도를 안해서 그래. 더 기도하고 열심히 믿어봐"라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다.

유치한 비유일지는 모르지만 공산주의에 의심이 가는 사람이 공산주의 서적을 열심히 파며 읽으면 어떻게 될까? 결국 자기 세뇌를 더 하는 결과 밖에 더 될까?

난 그래서 일부러 성경을 읽지 않기로 결정했다. 적어도 내 마음에 있는 의심과 질문들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보기 전에는. 그리고 무신론자 반기독인들이 제시하는 기독교의 문제점과 모순들에 대해 충분히 조사해 보기 전에는 성경을 읽지 않을려고 한다. 남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다. 이 상황에서 성경을 읽고 편안함을 얻는다면 언제가는 다시 나는 의심을 할 것 같다.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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