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독교 서적들이 부활의 증거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러가지 증거들이 제시가 된다. 비어있는 무덤, 사람들에게 보여짐, 사람들의 변화 등등. 일부에서는 부활은 후세에 타종교에서 빌려온 개념이 전설과 결합이 되면서 나중에 기독교에 소개된 것이라고 하지만, 굉장히 초창기에 쓰여진 바울의 신앙고백이 부활을 명시하는 것을 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사실 부활은 부활을 믿는 것보다 그것을 부정하기 위해 다른 이유를 대는 것이 심정적으로 더 쉽다. 예를 들어 마리아가 찾아갔던 무덤은 예수의 무덤이 아니라 다른 무덤이였다던지, 아니면 예수가 죽은 것이 아니라 기절해있었다던지... 그런 설명을 하는 것이 부활을 믿는 것보다 더 이해하기가 쉬운 것이다. 하지만 그런 주장에는 논리적으로 결점이 너무 많다.
논리적인 기독교 서적들 (Case for Christ, 누가 돌을 옮겼느가)을 보면 부활을 믿지 않기 위해서는 억지 주장을 가져다 붙여야되고, 부활을 믿지 않기 위해서는 더 큰 믿음이 필요하다는 말을 한다. 나는 그 주장에 어느정도 논리적으로 동의한다.
그 주장중 내 맘에 가장 강력하게 다가온 것은 제자들의 변화였다. 그 제자들은 분명히 부활이 사실인지 거짓말인지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예수가 죽지 않고 기절했었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너무 결점이 많기에 죽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예수를 봤는지 안봤는지에 따라 부활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너무나 쉽게 증명이 되고, 제자들은 분명히 눈으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이 제자들이, 겁쟁이였던 제자들이 갑자기 변했다. 만약 부활이 거짓이라면 그들 모두가 거짓을 위해 목숨을 걸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서? 요즘의 정명석 같은 사이비도 그 측근에 있는 사람들은 진실을 알면서도 정명석 옆에 머물러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돈이나 권력이 개입이 되어 있다. 예수의 제자들의 경우는 그런게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뭘까? 신념? 명예? 만약 부활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도 그럴 수 있었을까?
내가 아직 신앙을 버리지 않은 것은 제자들의 변화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활이 사실이라는 것 말고는 그들의 변화를 설명할 수가 없다.
사실 부활은 부활을 믿는 것보다 그것을 부정하기 위해 다른 이유를 대는 것이 심정적으로 더 쉽다. 예를 들어 마리아가 찾아갔던 무덤은 예수의 무덤이 아니라 다른 무덤이였다던지, 아니면 예수가 죽은 것이 아니라 기절해있었다던지... 그런 설명을 하는 것이 부활을 믿는 것보다 더 이해하기가 쉬운 것이다. 하지만 그런 주장에는 논리적으로 결점이 너무 많다.
논리적인 기독교 서적들 (Case for Christ, 누가 돌을 옮겼느가)을 보면 부활을 믿지 않기 위해서는 억지 주장을 가져다 붙여야되고, 부활을 믿지 않기 위해서는 더 큰 믿음이 필요하다는 말을 한다. 나는 그 주장에 어느정도 논리적으로 동의한다.
그 주장중 내 맘에 가장 강력하게 다가온 것은 제자들의 변화였다. 그 제자들은 분명히 부활이 사실인지 거짓말인지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예수가 죽지 않고 기절했었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너무 결점이 많기에 죽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예수를 봤는지 안봤는지에 따라 부활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너무나 쉽게 증명이 되고, 제자들은 분명히 눈으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이 제자들이, 겁쟁이였던 제자들이 갑자기 변했다. 만약 부활이 거짓이라면 그들 모두가 거짓을 위해 목숨을 걸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서? 요즘의 정명석 같은 사이비도 그 측근에 있는 사람들은 진실을 알면서도 정명석 옆에 머물러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돈이나 권력이 개입이 되어 있다. 예수의 제자들의 경우는 그런게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뭘까? 신념? 명예? 만약 부활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도 그럴 수 있었을까?
내가 아직 신앙을 버리지 않은 것은 제자들의 변화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활이 사실이라는 것 말고는 그들의 변화를 설명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