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대표적인 무신론자중의 하나로 알려진 David Mills의 책으로 현재 무신론에 관한 책중 가장 많이 팔려지는 책이다 (Amazon 기준). 그리고 이 책을 추천한 사람은 또한명의 대표적인 무신론자인 칼 사강(Cosoms의 저자)의 아들인 Dorion Sagan이다. 쉽게 말해 무신론에 관한한 정통파이며 무신론의 바이블 ^^ 이라 할 수 있다. 밀스의 말에 의하면 그는 아홉살때에 예수를 영접했고 고등학교까지는 신실한 신자였다고 한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전도를 하다가 한 친구가 기독교 신앙이 사실이라는 증거를 제시하면 믿겠다는 말을 듣고 스스로 증거를 찾아나섰단다. 하지만 무신론자 친구를 설득하기 위해 스스로 증거를 찾을수록, 신앙을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 신이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려고 했던 그 당시의 창조과학 서적들은 다 논리적 모순에 빠져 있었고 이성적으로 납득하기가 힘들었다. 신앙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된 그는, 결국 과학이 성경에 반대되는 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무신론으로 돌아섰다. 나사(NASA)의 우주왕복선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저널리스트로서의 경력이 더욱 더 과학을 신앙보다 우선하도록 만들었을 것 같다.

무신론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이 책은 거의 모든 지면을 기독교 신앙에 반대하는 것에 할애하고 있다. "기독교 교리에 대한 생각하는 사람들의 대답"이라는 부제가 말하듯이 이 책은 기독교에 대해 상당히 도발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말하는 논점들이 꼭 기독교에만 대응하는 것은 아니며, 모든 종교에 반하는 무신론적 주장이다. 이전에 읽었던 찰스템플턴의 책-(Farewell to God)에 비하면 이 책은 훨씬 잘 쓰여져 있다. 논리적이다. 템플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내 신앙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던 것에 비해서 이 책은 충분히 나의 신앙을 흔들어 놓고 남음이 있다. 영어식 표현으로 하면 "He Got Me"이다. 앞으로 오랜 동안 나는 밀스가 내어놓은 질문들과 씨름할 것 같다.

이 책은 인터뷰와 다섯개의 큰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에 나오는 인터뷰는 왜 그가 무신론자가 되었는지, 왜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기독교는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지 안되는지 등등 그의 주장들을 전반적으로 담고 있다. 그 내용들을 뒤에서 자세하게 서술하는데, 첫번째 주제는 왜 우주의 탄생을 설명하는데 신이 필요하지 않은가이다. 두번째는 진화의 증거들이 창조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내용이다. 세번째는 기적에 대한 반응에 대한 것이고, 네번째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지옥을 만들었을 것이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등장하는 Intelligent Design (ID)에 대한 그의 반론이다. 이외에 인터넷에서 포르노를 못보게 하는 법안에 대한 그의 생각과 미국이 기독교 사상에 기초한 국가가 아니라는 주장을 담았는데, 이 내용들은 차라리 안들어가는게 낳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기독교라고 표기한 부분은 전반적인 그리스도에 근거한 신앙을 말한다. 이책에서 이야기하는 기독 종교는 개신교와 천주교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우주의 기원 - 신이 필요한가?]

우주의 기원에 대해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모든 것에는 근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13세기에 토마스 아퀴나스가 주장한 것이며, 이후 물리 법칙중 하나인 "작용-반작용"의 법칙과 합쳐져서 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듯이, 근본적으로 우주도 그 원인이 되는 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주장은 꼭 종교적인 주장이라기 보다, 누구나 한번쯤은 질문을 해봤을 내용이다. 세상은 도데체 어떻게 시작이 되었을까? 저절로 아무 이유없이 되었다고 한다면 아무래도 잘 납득이 안가게 된다.

이에 대해 밀스는 두가지 이유를 들어 "작용-반작용의 법칙"이 신의 필요를 증명한다는 주장에 반대를 한다. 첫째, 과학의 법칙은 일반적인 것이지 그것이 항상 그렇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법칙은 현상에 대한 인간의 해석이지, 그 자체가 원인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법칙만 있다고 해서 과학은 아니다. 과학이라 말할 수 있으려면 법칙을 기반으로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해 설명을 할 수가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인들이 우주의 시작에는 원인이 있어야 하며 그 원인은 신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과학의 법칙을 잘못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밀스는 다른 과학의 법칙을 들고 나온다. 그것은 "질량-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다. 그 법칙은 질량과 에너지는 상호 변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명한 아인쉬타인의 E=MC2가 이 법칙을 위한 공식이다. 빅뱅이론에 따르면 우주의 생성이전에는 시간도 공간도 없었다. 즉 질량이라 할만한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밀스는 "질량-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따라 이전에는 에너지가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을 한다. 실제로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에너지가 있을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이런 "질량-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잘못되었다는 증거가 있지 않는한, 우주는 무한한 예전부터 있어왔고, 이후에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형태만 변할 뿐이다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런데 이런 그의 주장을 찬찬히 보면 그가 자신이 말했던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용-반작용"이 현상에 대한 인간의 해석이듯, "질량-에너지 보존"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해석이다. 둘다 그에 반하는 증거가 없다. 그리고 기독교에서 "작용-반작용"이라는 법칙만 주장하지 그 중간을 메워주는 설명을 집어넣지 못한다고 비판했는데, 마찬가지로 그도 질량-에너지는 계속 보존될 것이라는 주장만 하지 그 법칙이 우주의 탄생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빅뱅이 에너지뿐이였던 우주를 현재의 우주로 변환시켰다면, 그 원인이 되는 빅뱅의 시작에 대해서는 설명을 못하고 있다.

따라서 "질량-에너지 보존"에 대한 그의 확고한 신념(한 백번은 나온 것 같다 ^^)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대로 "우주 탄생에 신이 필요없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그의 주장은 수긍하기 어렵다. 우주의 기원에 대한 비합리적이지 않은 무신론적 주장이 하나 있다라는게 내가 받은 인상이다.

[간격의 하나님 (God of Gaps)]

우주의 기원에 대한 논쟁에 더불어 그는 간격의 하나님을 언급을 한다. 이전에는 인간들이 자연현상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신을 들어 설명하려 하였지만, 과학과 이성이 발달하면서 신이 필요한 부분은 갈수록 줄어들었고 이런 현상은 앞으로 갈수록 줄어들게 될 것이다라는 것이다. 인간이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 잘 모르기에 신을 들어 설명을 했지만 언젠가는 명확한 과학적인 설명이 생길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간격의 하나님식의 접근방법에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 역사속에서 기독교와 천주교는 많은 잘못을 저질렀고, 또 지금도 종교라는 이름으로 과학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종교의 이름으로 과학을 막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과학이라는 아니 넓게 보아 모든 학문이 한가지 주장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100% 맞다고 확신하는 것이 아니다. 증거를 수집하고 계속해서 진리를 찾아나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종교가 진정한 진리라면 과학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나올 것이고, 또 그래야만 믿을만한 가치가 있는 종교일 것이다. 과학에 침범당할 신이라면 그건 벌써 신이 아니니까.

그렇기에 방법이 비인격적이 아닌 이상 과학적인 탐구는 어느 것에서든 종교의 이름으로 제한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진화론 연구를 할 수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진화론을 끝까지 연구해서 신이 정해놓은 한계를 만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해서 신을 발견한다면 그게 신이 정해놓은 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과 종교가 서로 불편해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진정 신이 있다면 진정한 신의 영역은 신의 영역으로 남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모든 간격을 없애는 것도 신이 준 소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진화론 vs. 창조론]

우주의 창조및 생명의 기원에 대한 기독교적 접근 방법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 접근방법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는 것이다. 하나님은 6일동안 이 세상을 만드셨고, 7일째는 쉬셨다. 그때 하루는 말 그대로 24시간인 하루이다. 아담이 언제 셋을 낳았는지도 나오고, 또 계속해서 언제 자손을 낳았는지가 나오므로 이를 계산하면 언제 세상이 창조되었는지 계산할 수 있다. 지금까지 많은 신학자들이 언제 세상이 창조되었는지 이를 기반으로 계산을 했다. 사람마다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대략 6000년 정도로 계산이 된다. 지질학이 발달되기 전까지, 그리고 방사성 탄소연대측정 기술이 나오기 전까지 아무도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과학적인 방법을 계산해서 지구의 나이를 측정하면 지구가 약 45억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누가 맞는 것일까? 전에는 탄소연대측정 방법에 대해서 인정 못하겠다는 주장이 많았다. 그래서 거북이등의 나이를 계산하니 200만년이 나왔다는 등의 과학의 결과를 통째로 못믿겠다는 말들도 기독교계에서 주장된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주장을 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탄소연대측정이 일관적인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대로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한꺼번에 생성되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지층에 나타난 화석들을 보면 일관적으로 초기 생명체부터 더 진화된 생명체로 순서대로 일관되게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연에서 보여지는 증거들은 확실히 진화론의 편이지 창조론의 편이 아니다. 일부 창조과학자들은 지금 발견되는 화석들이 노아의 방주사건 때에 한꺼번에 땅속에 뭍히면서 생긴 것이다라고 주장을 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런 주장은 기독교인인 내가 봐도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어떻게 물에 휩쓸린 생물체들이 차곡 차곡 그것도 지구 전역에 걸쳐서 차례대로 뭍힐 수 있을까? 인간은 위험에 대해 인식을 하고 피하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나중에 뭍혔다고 하지만, 지구상에는 올라갈 산이 없는 평지도 상당하다. 그들이 어떻게 다 산위로 올라갈 수 있을까? 그렇게 따진다면 물 속에서 오래 살 수 있는 어류 종류가 가장 나중에 뭍여야하는 것이 아닐까?

이와 더불어 밀스는 이 책에서 진화론에 반하는 창조론자의 질문들에 대해 하나 하나 반박을 한다. 예를 들어 화석은 순서대로 여러 시기에 발견이 되지만 유독 캄브리안기에 많은 화석이 발견된다. 그래서 이 시기를 창조의 시기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캄브리안기 이전에도 생명체는 발견되었고, 또 캄브리안기에는 아직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는 발견되지 않았다.

중간화석에 대한 진화론자의 반박도 담고 있다. 진화론에서 A에서 B로 종이 변하는 것을 주장하면 창조론자들은 그 중간화석이 어디 있냐고 반박을 해왔다. 이에 대해 밀스는 진화론자들이 A와 B의 중간인 A'를 발견하면 창조론자들이 A와 A', A'와 B의 중간 화석을 요구한다고 불평을 했다. 아무리 합당한 중간화석을 증거로 제시해도 창조론자들은 수긍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경우, 자연에서 보여지는 진화의 증거들을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게 된다.

두번째 접근방법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6일동안 이 세상을 만든 것이 아니고 이 지구도 6000년전에 만든 것이 아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족보는 모든 사람을 담은 것이 아니고 중요한 인물들만 적어놓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밀스는 성경의 표현 - 누구는 얼마를 살았고 몇살에 자식을 낳았다 - 은 누가 봐도 실제적인 족보를 담은 것이라는 점을 들어 이런 주장에 반박한다. 또한 성경의 일부를 과학적인 증거에 밀려 임시적으로 다르게 해석한다면, 즉 성경의 해석이 경우에 따라 달라진다면, 성경의 다른 부분은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바빌론 문명의 기록이 남겨진 최초의 시기가 6000년전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며 결국 성경이 제시한 인류와 지구의 역사에 대한 이해는 바빌론 사람들의 제한적인 이해를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 아니겠느냐는 말을 한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확실히 과학이 밝혀낸 증거들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창조론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창조론에 입각해 진화론을 반박하는 글들을 많이 봤지만, 솔직히 말해 수준의 차이가 너무 난다. 창조론자들의 이야기는 내가 봐도 억지가 많고 진화론자의 이야기는 밝혀진 증거에 의한 담담한 설명을 담고 있다.  진화가 "어떻게" 벌어졌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른 과학자들이 많겠지만 적어도 진화가 "있었다"라는 점에서는 과학자들 사이에 별 이견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런 진화의 증거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부분이 나의 신앙에는 어떠한 영향을 끼칠까? 솔직히 말해 진화대 창조에 있어 내 이성은 진화의 편을 벌써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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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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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4/27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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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쉐아르님 안녕하세요. 공부가 어떻게 진전되고 계신가 궁금해서 와봤습니다. 열심히 공부하시네요. ^^

    인류역사 6000년설은 그야말로 기독교에 폭 빠진 서양사람들의 믿음이었을 뿐입니다. 동양인들은 그런 생각 안 했어요. 우주는 영원하다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인류역사는 길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우주의 시작에 신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강박관념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버트란드 러셀 경이 이미 지적했듯이, 우주의 원인인 신이 있어야 한다면, 그 신의 원인은 무어냐는 겁니다. 신의 신, 신의 신의 신, 신의 신의 신의 신...... 계속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요.

    어차피 궁극의 제 1원인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그 궁극의 제 1 원인이 이 우주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또한, 신이 이 우주와 일심동체이지 말라는 법도 없는 거지요.
    동양적인 자연관에 의하면, 이 우주는 스스로 그러한 존재, 즉 자연입니다. 스스로 존재하지요. 우주의 근원을 찾을 경우, 변덕이 심하고 돈을 요구하는 인격신이 아니라, 법칙으로서의 도, 이법으로서의 하늘 정도가 제시될 뿐입니다.

    객관적으로 비판적으로 자유롭게 사고하시는 쉐아르 님의 말씀에 기분이 좋습니다. 흔히 선입견에 사로잡혀서 한 쪽만의 사고를 보여주는 분들이 너무 많거든요. 그런 사고, 이기심, 욕망에 의해 세상은 왜곡되고 있고 대사기극이 진행되는 게 지금 이 세상이지요.

    쉐아르 님께서 소개해주신 책을 나중에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 2007/05/0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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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드라우미님 오랜만이네요 ^^;;

      6000년설은 이제 아무도 안믿는 교리가 되어버린듯합니다. 기독교내에서도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는 분위기이구요.

      하지만 우주의 시작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 논란의 시작은 빅뱅이지요. 빅뱅이론에 의하면 우주의 시작이 있는 것이니까요. 칼람 논쟁에 대해서 들어보셨나요? 1. 모든 시작하는 것에는 원인이 있다. 2. 우주는 시작이 있다. 3. 그러므로 우주의 근원에는 원인이 있다. 라는 것이 칼람 (Kalam) 주장입니다. 나중에 한번 자세하게 정리해볼 생각입니다.

      요즘 우주에 대해서 생각하니 너무나 이해안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정말 지금의 생이 끝이라면... 죽어서도 제가 가지고 있는 질문들에 대해 답을 얻지 못한다면 정말 죽어도 눈을 못감을 것 같네요 ^^;;;
  2. 2007/05/01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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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요즘은 양쪽의 책을 번갈아 읽고 있습니다. 어느 한쪽만 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책만 읽는다고 뭐 해결책이 나오겠냐... 머리만 커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지만 저보다 먼저 같은 고민을 한 사람들을 글을 읽는게 많은 도움이 되네요.
  3. 2007/05/01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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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말씀입니다. 공자가 그런 말을 했다지요.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하루 종일 먹지도 자지도 않고 생각해보았으나, 공부하는 것만 못하더라"

    다른 분들의 다양한 생각과 발견한 사실들을 다각도로 검토해보는 게 좋습니다. 그게 공부지요. 효율적인 진리탐구라는 거지요.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고 주자가 말했다지요. 사람이 평생 공부해도 모든 것을 알기는 어렵겠지요. 저는 그래서 불가사의론자라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 이 세상은 불가사의하다는 겁니다. 진화론의 주창자인 찰스 다윈도 불가사의론자라고 하지요.

    진리를 진지하게 탐구하되, 모르는 문제는 모른다고 솔직히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것은 위험한 태도니까요. 그런 태도가 흔히 맹신, 도그마라는 것입니다.

    그 칼람 논쟁은, 앞에서 이미 말씀드린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 경의 지적에 의하면, 헛바퀴를 도는 논리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는 원인이 있다. 그렇다면 그 원인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 원인의 원인의 원인은 무엇인가?.......
    어차피 궁극의 원인은 그 자신이 스스로 존재할 수 밖에 없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 우주를 '자연'이라고 부릅니다. 스스로 그러하다.......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는 시작조차 없었다..... 머리가 핑핑 돌기 시작하지요~ ^^;;;

    우주의 근원은 인격적인가 비인격적인가, 우주의 근원은 우주와 같이 있나 아니면 분리되어있나 등 다양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추상적으로 사고하면 관념의 함정에 빠지기 쉬우므로, 현실적으로 구체적으로 섬세하게 사고하시는 게 유리할 것입니다.

    저도 잘 모르는 게 많아서 앞으로 꾸준히 배워보고 싶은데, 참으로 인생은 짧고 할 일은 많네요. ^^;;;
    열공합시다!

후안무치라는 말이 있다. 창피함을 느껴야 함에도 창피한 줄을 모른다면 이미 '더 나아지고자' 하는 마음을 버렸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한국 교회가 그렇지 않은가 생각한다.

보지는 않았지만 '뉴스후'라는 프로그램에서 조용기 목사와 김홍도 목사의 문제점에 대해 보도했다고 한다. 횡령을 하고 도망친 조목사의 아들이 매달 렌트비가 700만원인 집에서 살았다는 것, 1700억원의 예산이 불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것등... 누가 봐도 순복음교회와 조용기목사에게는 문제가 있다. 거기다 김홍도목사의 세습 (참 이 목사는 가지가지한다... 불륜에 막말에 이제는 세습까지 ㅡ.ㅡ)까지.

거기다 대고 나름 기독교인라는 사람들이 음모론을 제기하며 항의를 하고 있다. 크게 두가지 주장이 있다. 왜 기독교의 큰 명절인 부활절을 앞두고 이런 보도를 하느냐라는 것과 왜 같은 사람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문제 보도를 하느냐라는 것이다. 정말 후안무치가 아닐 수 없다.

예수님이 성전 청소를 하신 것은 유월절을 눈 앞에 두고 있었을 때이다. 예수님이 지금 한국 교회의 추악한 모습을 보시고... "부활절 이후에나 이야기를 하지"라고 하셨을까? 문제점을 고치는데 가장 좋은 때는 '바로 지금'이다. 잘못된 것은 고쳐야하는 것이다.

왜 한 사람을 두고 계속 보도를 하느냐라고 한다면 도데체 그 사람은 왜 안 바뀌냐고 묻고 싶다. 그리고 그 사람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목사들 사회는 서로의 비리에 대해 일반인보다 더 잘 안다) 한국 교회는 도데체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이래 놓고도 자정능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총체적 부패다. 아무리 말세에 혹세무민하는 이들이 많이 생긴다고 성경은 말하지만, 말세에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사탄의 공격이 강해진다고 하지만... 한국 교회 도데처 어디까지 추락할 것인가? 두 사람의 잘못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등질지, 도데체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려고 그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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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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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4/27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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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는 말씀입니다. 구구절절이 동감합니다.

    참고로, '일부' 교회 목사님들의 비리행각에 대해서 '반기독교시민연합'이라는 사이트에 아주 자세히 올라와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비리가 들통 난 목사들이 너무 많아서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 리스트가 너무나 깁니다. 심심하실 때 직접 가서 보시면 경탄할 만합니다.
    • 2007/05/01 13:58
      댓글 주소 수정/삭제
      제가 지금까지 경험한 목사들의 경우를 본다면 목사들의 윤리의식이 일반 신도 아니 세상의 평균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람핀 목사 둘에, 횡령이 하나... 게을러서 아무것도 안하고 교회를 떠난 목사는 그래도 낳은 편이지요.
      그럼에도 아직도 괜찮은 목사님들이 남아있고 세상에 도움을 주는 기독교 집단이 있다는 것에 작으나마 희망을 가져봅니다. 쓰레기 같은 목사들 다 없어지고 제대로 된 목사들만 남는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좋아질 거라고 아직도 저는 믿고 있거든요.
  2. 2007/05/01 21:0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어디나 인격적으로 훌륭한 분들이 있어서 희망을 주지요.
    그런 분들이 늘어나고, 잘못하는 분들과 잘못된 생각들, 믿음들이 줄어들기를 기원해봅니다.

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눈 기억이 있다. "세상 모든 종교가 다 사람을 사랑하라고 하고,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라고 말을 한다. 내가 보기에는 다 거기서 거기다". 나는 이렇게 말을 했다. "그건 구원이라는 것을 배제하고 봤을 때이다. 종교에 구원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구원의 문제에 관한한 모든 종교는 다 다른 것이다".

정말 그렇다. 종교마다 제시하는 궁극적인 목표나 구원의 방법은 다 다르다. 어느 종교든지 구원의 방법에 관한한 폐쇠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경우는, 예수의 경우는 다르다. 기독교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이라는 명시적인 선언 때문일 것이다. 예수는 자신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것이 진리라고 믿는다. 종교마다 각각 다른 구원의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의 종교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과연 그런가? 예수 이외에 다른 길은 없는 것인가?

우리는 겸손을 미덕으로 삼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자기가 회사에서 가장 일을 잘하고, 또 자신이 높은 자리와 높은 연봉을 받아 마땅하다고 지속적으로 주장을 한다면. 설사 그 사람이 능력이 많다고 하더라도 심정적으로 거부감이 느껴질 것이다. 하물며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구원의 문제에서 기독교처럼 "예수만이 유일한 길이다. 그를 믿지 않는자는 다 지옥에 떨어진다"라고 말한다면 일단 반감부터 생길 수 밖에 없다.

이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중에 제일 큰 이유는 그 주장이 독선적으로 들린다는 것과 또 공평하지 않게 여겨진다는 것이다.

절대로 '절대'라는 말을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Never say 'never')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이다. 특히 현대사회처럼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예수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말이 쉽게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흔히 사용하는 비유가 있다. 산정상에 올라가는 길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가 있다. 어떤 이는 사람들이 닦아놓은 등산로를 통해서 올라갈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암벽을 등반해서 어렵게 올라갈 수도 있다. 하다못해 헬리콥터를 타고 산 정상으로 날아오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구원'이라는 종교의 궁극적인 경지에 이르는 방법도 종교마다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평성의 문제 또한 답이 필요하다. 예수를 모르고 살았던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또한 세상에는 아직도 예수가 전달되지 않은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들은 그럼 자동적으로 지옥에 간다는 것인가? 윤리적인 측면은 어떠한가? 간디와 같이 누가 봐도 숭고한 삶을 산 사람이 예수를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갔다고 하는데, 세상에 대한 적대감 하나로 17명을 죽인 김대두 같은 사람이 죽기 직전에 회개하고 천국에 갔다고 한다면 뭔가 불공평한 것 아닌가?

요즘 같은 세상에 정말 예수만이 답인가? 다른 곳에서도 구원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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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4/27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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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는 말씀입니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모순이 있지요. 전지전능한 조물주가 어찌해서 전 인류를 애시당초 자신을 알도록 하지 않을까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인데 말입니다.

    전지전능하다는 조물주가 초라해지는 순간입니다. 전도사들이 땅 끝까지 달려가 전도해야만 조물주의 존재를 안다는 그 기독교의 주장은, 그야말로 신성모독에 다름 아닙니다.

    요즘은 텔레비전 전도, 텔레비전 목회를 하잖아요? 조물주가 텔레비전의 힘을 빌지 않으면 자기 존재도 못 알리는 하찮은 존재일까요? 그건 아니지요.

    결국은, 조물주에 대해서 인간들이 자기 맘대로 허풍 떨었다고 볼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조물주는 그대로인데 인간들이 자기 맘대로 조물주의 이름을 도용한 것이지요.

    그래도 점잖은 조물주는 인간들이 자기 이름을 도용해도 화내지 않고 그저 이 우주를 천천히 변함없이 돌리고 있을 뿐입니다. 까부는 건 인간들 뿐이지요.
    • 2007/05/0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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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조물주의 이름을 도용했다는 생각은 못해봤네요. 하나님이 있다면 왜 좀더 쉬운 방법을 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은 대부분의 생각있는 기독교인들은 다 하는 질문입니다. 예를 들어 하늘에 다 알아볼 수 있도록 "나는 신이다. 나를 경배하라"라고 쓰면 되잖아요. 아니면 TV전파를 가로채서 전 세계에 동시에 방송을 해도 좋을 것 같구요. 훨씬 더 편하고 좋은 방법이 있는데 그걸 왜 안쓰는 걸까... 하는 고민을 실제로 많이들 합니다. 물론 이 질문에 답하는 정답은 있습니다. 그 정답이 마음에 수용이 되느냐... 하는 것은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요.
  2. 2007/05/01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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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정답(?)은 무엇일지 궁금하군요. 흔히 말하는 인간의 자유의지 이야기라면, 저는 그건 정답이 아니라고 봅니다.
    죽은 뒤의 천당과 지옥, 종말 뒤의 신세계,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어차피 그럴 거면, 왜 지금은 이 세상을 이렇게 방치할까요?
    앞뒤가 안 맞는 모순된 행동입니다. 일관성이 전혀 없지요. 이게 과연 신의 참모습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날조된 신의 모습입니다.

    그냥 모든 인간이 선하게 살도록 만들어놓으면 됩니다. 굳이 신의 존재를 알릴 필요조차 없지요. 이 세상 자체가 천당이고 낙원인데 말이지요.

    결국, 이 세상에 대한 공상적 가정에 근거한 모순된 논리 전개일 뿐입니다.
    이 세상이 그 자체로 낙원이면, 굳이 왜 신을 경배해야 하나요? 신은 그냥 우리와 함께 하는데 말입니다.

    자유의지론은 모순 중의 모순입니다. 나쁜 짓을 할 수 있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지요. 자유의지가 아니라 방종의지가 맞는 단어입니다.
    나쁜 짓을 할 수 있게 만들어놓고서 책임을 묻는 건 신으로서 어울리는 행동이 아닙니다. 사람은 자기 자식의 행동을 완전히 통제할 능력이 없으니 할 수 없지요. 하지만 신은 전지전능하다면서요?

    사람한테나 어울리는 논리를 신에게 덮어씌우니 모순이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인격신론은 어설프다는 거지요. 신이 어떻게 인간 같은 존재겠습니까. 이 세상을 온통 인격화시켜서 사고하는 인간의 사고방식 자체가 문제인 거지요.

신의 존재에 대한 논쟁이 있을 때마다 항상 등장하는 것이 진화론이다. 아니 사실 논쟁을 거는 쪽은 기독교인 쪽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검색엔진에서 "진화론" "증거" 이 두단어를 치고 검색을 하면, 진화론을 증명하는 증거보다, 진화론의 증거를 부정하는 기독교인들의 글이 더 많이 올라와 있다.

근데 진화론을 부정한다는 기독교인들의 글을 보면 너무 천편일률적이다. 어느 글에서나 등장하는 똑같은 논점, 똑같은 주장들. 창조론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론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에서 그치고 있다. 진화론이 틀렸다고 해서 창조론이 곧 옳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창조론을 옹호하여 과학으로 증명한다고 하는 창조과학회에 가보더라도 상황이 더 좋은 것은 아니다. 반쯤은 진화론의 문제점 지적. 나머지 반은 창조론 옹호이지만 많은 글들이 과학이라 부르기에는 부족한 글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창조과학이라고 이름을 거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논리가 일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이는 빅뱅이 사실이 아니라는 증거를 열심히 나열하고, 어떤 이는 빅뱅이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글을 쓰고 있다.

그에 비해 진화론에 관한 학술적인 자료들을 찾아보면 굉장히 체계가 잡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증거자료들과 증거화석들이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창조론 비판에 대한 글만 읽어본 기독교인들은 진화론이 허접한 이론이고 증명되지도 않은 가설을 어거지로 우기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진화론을 공부해보면 꽤나 체계적이고 뒷받침되는 증거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각 가설에 대해 어떤 증거가 나오면 그 가설이 잘못되었다는 것까지도 연구가 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조론과는 명백히 위배되어 보이는 진화론. 그리고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무시할 수 없는 양의 증거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증거들을 신이 없다는 증거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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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과학과 신앙

    2007/03/25 00:06
    삭제
    또 남깁니다(너무 도배 하는 것 같아 죄송...). 저는 과학과 친하질 않아서 확실하게 답을 드릴 수 없지만, 제가 아는 것만은 알려 드리겠습니다. 일단 기독교의 과학계에서도 진화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단, 일정 범위 내에서의 진화만이지만요. 그러니까 환경과 생존을 위해 색이 변했다던가, 같은 종인데 모양이 틀리다던가(북극곰 과 일반 곰, 북극 여우와 일반 여우 등) 하는 것은 진화로 인한 것이다 라는 것에 찬성하고 있습니다. 다만, 진화로 생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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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3/25 15:0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기독교에서 인정하는 진화는 소진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같은 종내에서의 발전을 말하는 것이지요. 논쟁거리가 되는 것은 대진화입니다. 새로운 종이 생긴다거나 (원숭이에서 인간이 나온다던가), 혹은 생명이 없는 것에서 생명이 생겨나는 것을 말하지요. 제가 이야기한 증거는 대진화에 대한 증거들입니다. 제 생각에는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기에는 꽤 많은 대진화의 증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빅뱅이론과 창세기 1장 2절과 3절에 대해서 생각했던 것을 정리한 글이 있습니다. '최초의3분'이라는 태크를 사용해서 찾아보시면 됩니다. 말씀하신대로, 근본을 파고 들어가면 빛이 남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창세기의 시작과 연관이 된다고 말할 수 있지요.

    제가 질문하고자 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실제 증거와 신앙과 '겉보기에는' 서로 배치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였습니다. 그 문제에 대한 답은 솔직히 저도 아직은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생각하고 답을 찾아봐야할 것 같아서요.

성경에 보면 많은 기적들이 나온다. 노아의 홍수, 애굽에서의 열가지 재앙, 홍해가 갈라짐, 사막에서의 만나, ... 신약시대로 가서는 예수의 동정녀 탄생, 그리고 예수의 부활까지. 이런 많은 기적들. 인간의 이성으로는 믿기가 굉장히 힘들다.

첫째, 이런 기적들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된다. 노아의 홍수가 생기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가장 높은 산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의 물이 있어야하는데, 그 엄청난 양의 물이 지금은 어디로 갔는가? 노아의 방주만 해도, 하나의 방주 안에 어떻게 모든 동물들을 쌍쌍이 넣을 수 있었을까? 그 먹이는? 그 배설물들은? 예수의 부활에 대해서는 어떤가? 아무도 죽은지 사흘이 지나가서 부활하지 않는다. 잠깐 숨이 끊어졌다 살아나는 이는 있어도, 예수처럼 무덤에 뭍혔다가 살아나는 사람은 없다.

둘째, 이런 기적들이 왜 성경의 시대에만 나타나는가? 지금 세상에는 왜 부활하는 사람이 없는가? 왜 지금 세상에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제물을 태우지는 않는가?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 한번이라도 보여주면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것 같은데 말이다. 간혹 가다 기도해서 병이 낳았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우연이거나 아니면 정신적인 위안에 불과하다. 부흥회에서 은혜받고 암이 낳았다고 좋아하던 사람이 일년 있다가 죽는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셋째, 기독교에서는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도 의문이다. 기도를 해서 기도한데로 되면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고 하고, 그대로 안되면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한다. 그렇다면 기도에 응답해서 인간세상에 개입하신다는 하나님은 어디에 있는가? 이래도 감사, 저래도 감사라면 기도하는 의미가 그럼 무엇인가?

템플턴은 그의 책에서 "이성이 조금만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전설이 동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한다. 이성과 기적, 과학과 기적. 같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생각하는 사람이 기적을 믿는다는 일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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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답2: 기적을 일어나게 할 근원이 존재하는가?

    2007/03/23 06:18
    삭제
    기적이라는 것을 이야기할려면 먼저 기적의 정의부터 내려야 할 것 같다. 국어사전에 기적의 뜻은 '사람의 생각이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기이한 일'으로 정의 되어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말한다. 또한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기적이라고도 표현한다. 기독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종교에 대해 사람들이 비판하는 것은 소위 기적을 못 믿겠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성경은 온갖 기적으로 가득차 있다. 노아의 홍수, 애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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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번 언급했듯이 찰스템플턴이 자신의 신앙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먹을 것이 없어 죽은 아이를 안고 고통하는 한 여인의 사진을 보았을 때였다. 실제 아직도 아프리카에서는 하루에 만이천명의 아이들이 먹을 것이 없거나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간다고 한다. 기운이 하나도 남지 않아 온 얼굴에 붙어 있는 파리떼를 쫓지 못하는 아이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얼마나 마음 아픈 모습인지.

그 뿐인가. 세상 곳곳에서 전쟁과 가난으로 목숨을 잃거나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환경이 좋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술취한 운전사에 의해 한순간에 아버지를 잃어버린 가정. 유괴범에 의해 소중한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 신앙생활 열심히 하던 착한 아들을 전쟁터에서 잃어버린 윤상병의 경우는 어떤가. 그들의 신앙이 부족해서 생긴 일일까?

이성적으로 따졌을 때, 세상의 고통과 사랑의 하나님을 연결시키기는 참 어렵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면서 인간의 고통을 그대로 놔둔다면 선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세상에 자식을 사랑한다 하면서 죽어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고 있을 부모는 없기 때문이다. 가끔 아이들이 힘들어도 가르치기 위해서 그냥 놔두는 부모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힘든 것과 죽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다른 각도로 선하기에 인간을 위해 좋은 일을 해주기 원하더라도, 해줄 수 없다면 전능한 하나님이 아니다. 마치 선한 신과 악한 신이 있어 악한 신이 인간을 괴롭혀도, 선한 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제한되어 있는, 힘이 딸리는 그런 식의 신화가 되어버린다.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의지할 수 있는가?

세상의 적지 않은 재앙이 사람으로 인해 생긴 것들이다. 하지만 큰 재앙을 가지고 오는 지진이나 가뭄, 폭풍, 전염병등은 사람의 잘못으로 생긴 것은 아니다. 사람은 그런 것들을 콘트롤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 누군가? 그건 신이 아닌가?
 
첫번째 질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누구나 한번은 느껴봤을 질문. 아픔을 겪었거나, 주위의 고통을 보았던 사람이라면 "도데체 하나님이 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질문 한 번은 다 해보지 않았을까?  

사랑의 하나님이 있다면 어떻게 세상에 고통이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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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어느 정도 생겼을 때부터 내 인생의 일부분이였다. 지금은 그 신앙의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아 나가고 있지만, 교회에 대한 애정은 아직 흔들림이 없다.

그렇기에 지금의 기독교, 특히 한국 교회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참 마음이 아프다.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전에도 이야기했듯이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지 28년이 되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 생활을 했었기에 여기 저기 교회일에 많이 개입이 되었다. 그리고 큰 매형이 목사이다 보니, 쉽게 드러나지 않는 목사들의 뒷이야기를 들을 경우가 더러 있다. 그 기간동안 직접 보고 경험하고 들은 것들을 놓고 보면, 내가 아직도 교회를 다니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성경의 진리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한국교회가 예전부터 주장해왔던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길 원한다면 이런 목회자들은 제발 교회에서 떠났으면 좋겠다.

1. 하나님 두려워 하지 않는 목회자들 교회를 떠나라

교회에서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으면 흔히 이런 말로 위로를 한다. 교회란게 죄인들이 오는 곳이잖아. 좋은 병원에 환자가 많듯이 좋은 교회에는 죄인들이 많은 법이야라고. 그 말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 좋은 병원의 의사들은 정신병자는 아니지 않은가? 지금 와서 돌아보면 내가 다녔던 교회들, 내가 경험한 목사들의 상당수가 신도보다도 못한 윤리성을 보여준 것 같다. 내 청춘을 바쳤던 교회의 담임목사는 유학간 자식이 졸업했는데도 등록금을 계속 받아가다가 문제가 되었다. 그걸 충성파 장로를 시켜서 문제없다 만들어놓고 그 문제를 지적한 사람들을 다 교회에서 내쫓아 버렸다. 멀쩡한 교회 사택 놔두고 워커힐 아파트를 요구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말이다. 여자랑 바람피다 남편이 오자, 베란다에 매달려 있다 떨어져 죽은 목사는 매형 노회의 부노회장이였단다. 미국 와서 처음 몇년 다녔던 목사의 경우는 부패의 총집합소였다. 국제결혼한 여인들이 많이 다니던 교회였는데, 그중 세명의 여자와 이년 넘게 동시에 바람을 피우다 결국은 꼬리가 잡혔다. 당연히 잘라내야 할 이 목사(목사란 호칭이 너무 아깝다)에 협박당한 노회장(이 사람도 문제 투성이다)과 동료목사가 협잡해 목사 충성파를 도와 교회 건축헌금으로 모아놓은 돈 중 8천만원을 퇴직금조로 주어 보내고, 그 자의 바람핀 것을 지적했던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교회에서 나와야만 했다. 너무 그런 일이 많아서인지 소소하게 잠깐 바람핀 것은 문제 축에도 끼지도 못하는 것 같다. 어떤 부흥사가 집회하다가 앞줄에 앉아있던 여자가 전날밤 같이 잤던 룸사롱의 호스테스인 걸 보고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는 지나치며 듣게 되는 가십에 불과하다. 전에 적었던 김, 조, 곽 목사들의 문제도 일반 상식으로 봐도 용서할 수 없는 죄가 아닌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이럴 수는 없다. 이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 교회 목회자로 남아 있는 것은 결국 목회를 직업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맘으로 매주 설교가 나올까? 하긴 누구는 설교집을 복사해서 읽고 있더구만... 그래서 양심이 있다면 떨려서라도 하나님 믿어라, 착하게 살아라 못할텐데 말이다. 하나님 믿지 않는 목회자들 제발 교회를 떠나라.

2. 돈을 섬기는 목회자들 교회를 떠나라

중학교 때였다. 교회는 새로 건축을 준비하던 중이였고, 교회가 부흥해야 한다며 당시 이름을 날리던 신현균 목사를 데리고 왔다. 부흥회가 끝나고 마지막 건축헌금 작정의 순간이 되자 신목사는 일단은 얌전히 성도들의 작정헌금을 요청했다. 원하던 금액이 안나왔을까? 이 목사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뒷문 잠그세요. 아무도 못나가게"하더니 계속해서 헌금 작정을 요구했다. 어느 여자분 내고 싶어도 낼 수 없어서 마음이 아팠는지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 소리에 신 목사가 한말을 나는 아직도 있지 못한다. "왜 울고 그래. 내가 돈 내라고 그랬지 울라고 그랬어?" 25년전의 일이다.

교회에서 얼마나 돈을 밝히는지 알 수 있는 한 대목이다. 나중에 알게된 것이지만 이렇게 부흥사가 가서 작정헌금을 많이 받아내면 그 중 얼마를 리베이트 명목으로 받는다고 한다. 요즘 교회는 하나님이 두개다. 명목상 경배하는 여호와 하나님. 교회를 지배하는 또 다른 실질적인 하나님은 돈이다. 재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힘이다. 세상에 소통되는 그 원칙이 교회에서도 100%는 아니더라도 95%는 똑같이 적용된다. 부유한 지역의 교회들은 금요일에 주일 1부예배라는 이름으로 드린단다. 금요일에 와서 편하게 예배드리고, 일요일에는 놀러갈 수 있도록. 왜 그럴까? 보통 금요예배에는 헌금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김홍도 목사의 금란교회가 새로운 예배당을 돈을 엄청 들여 남부럽지 않은 ㅡ.ㅡ 예배당을 지었다. 헌당예배랍시고 참석했던 그밥의 그나물인 한 목사가 이런 말을 했단다. "목사가 되어서 이정도 멋진 예배당을 하나님께 드려야지. 그러지 못하는 목사들은 창피한줄 알아야 돼" 난 그 목사의 하나님은 도데체 어떤 하나님인지 궁금하다. 이름은 기억안나지만 그 목사도 꽤 큰 교회의 담임목사다.

난 교회가 세상보다 제물을 더 숭배한다고 생각은 안한다. 하지만 세상보다 덜 숭배한다고도 생각 안한다. 최소한 교회만큼은 자본의 논리에서 좀 벗어나야하지 않겠는가. 하나님보다 돈이 더 중요한 목회자들 제발 교회를 떠나라.

3. 신도수 제일주의 목회자들 교회를 떠나라

한국 기독교에서 신도수는 곧 파워다. 목사들도 사람이 사는 사회인지라 예전에는 연륜이니 나이니 따졌단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거 별로 힘이 없단다. 신도수 많은 교회 목사가 최고 대우를 받고, 그렇지 못한 목사들은 부러움에 "나도 한번 큰 교회 만들고 말테다"라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 목사의 윤리성이니 인간성... 영향이 없지야 않겠지만, 신도수가 많으면 성격이 개 같아도 일단 용납이 된다. 지금 한국교회가 이렇게 세상과 담을 쌓고 자기 밥그릇만 챙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성장 제일 주의 때문일 것이다.

신도수가 중요한 이유는 곧 그것이 중요한 수입원이기 때문이다. 요즘 강남에는 적당한 숫자로 "알뜰한" 신자들만 받아서 잘먹고 잘살자는 교회도 생겼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신도수 많은게 짱이다. 무슨 교회 성장학 세미나는 그렇게 많은지. 성공한 교회라는 이야기만 나오면 미국이고, 아르헨티나고, 싱가폴이고 때거지로 몰려가 어떻게 신도수 늘렸나 배우고 온다.

한때 "전도 안하는 사람은 구원 받은게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교회들이 있었다. 아니 아마 지금 더 늘었으면 늘었지 없어지진 않았을거다. 이거 성경 말씀에 비추어보면 명백한 오류다. 하지만 상관없다. 신도들의 죄의식을 자극하든, 구원을 걸고 협박을 하든 사람들 끌어다가 교회를 채우게 하는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해마다 새로운 전도왕이 생기고 책을 쓰고 여기 저기 다니면서 강연하는 것, 예수의 지상명령에 비추어 볼 때 틀린게 아니라지만 좋은 맘으로만 쳐다볼 수는 없는 것이다. 큰 교회 만드는게 가슴에 쌓인 오랜 숙원인, 오로지 오매불망 대형교회가 꿈인 목회자들 제발 교회를 떠나라.

4. 공부하지 않는 목회자들 교회를 떠나라

80년대 초반이였던 것 같다. 창조과학회라는 단체에서 와서 강연을 하는데, 천체 사진을 보여주면서 한쪽 구석에 구멍같은게 있다고 말하며, 그게 성경이 말하는 천국의 증거란다. 하늘에 구멍이 뚫려있어 그곳으로 들어가면 천국에 들어간단다. 20몇년밖에 지나지 않은 일이다. 중학생의 이성으로도 말이 안되는 주장을 과학이라는 이름을 들고 이야기를 하는게 통하였다.

성경이나 교리에 대해 질문을 하면 많은 교회들이 제대로 대답을 못하고 "주님의 뜻"과 "오직 믿음"을 강조하는 경우가 있다. 꽤 큰 교회를 담당하는 목사가 성경의 기본적인 가족 관계도 모르는 것을 보고 황당했던 기억이 있다. 그게 통하는게 한국 교회다. 무디 목사처럼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더라도 크게 일을 한 사람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무디는 부족한 지식을 쌓을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교회를 보면 그런 지식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널린게 신학교다. 이전에 했던 공부가 무엇이던지 간에 "은혜"받고 신학교에 가면 어떤 곳에서는 이년만에 졸업을 한다. 그리고 바로 전도사요 몇년 지나면 목사다. 그래도 나름대로 체계가 잡힌 교단은 쉽게 목사 안수를 하지는 않지만, 군소교단에서 그걸 다 지키는 건 아니다. 실제 친척 중의 하나는, 신앙 경력 전혀 없이 어느날 받은 "은혜"에 신학교에 들어가 이년만에 전도사가 되었다. 그 사람 나중에 혼자 사는 여신도와 바람펴서 부인과 이혼했다.

기독교는 그대로의 논리가 있다. 무수한 사람들이 기독교의 교리를 설명하기 위해 체계적인 이론을 쌓아왔다. 예를 들어 존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란 책이 있다. 예수에 대한 교리들을 체계적으로 왜 그래야하는가를 설명해 놓은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기독교가 참 논리적인 종교구나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한국 교회중 어느 교회에서도 그런식의 체계적인 접근을 보질 못했다. 그런 고전을 목회자들이 안 읽어 봤을까? 기독교에 대한 많은 질문들에 대해 합리적이면서도 성경에 위배되지 않는 설명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 교회에서 잘 듣지 못한다. 왜 그럴까? 내가 목회자들보다 똑똑해서? 책을 많이 읽어서? 아니다. 지금 한국 교회에서는 그런 지식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도 밀어붙이면 된다는 목회자들. 목회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성경이 말하는 것을 약간 비틀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목회자들. 이 사람들이 위의 세가지 경우만큼 직접적인 해를 주지야 않지만 결국 무지한 상태에서 목회자만 좇아가는 신도들을 만들기에 이런 목회자들도 교회를 떠나야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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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쏟아내었더니 마음이 후련하긴 하다. 그런데 이런 말이 들리는 것 같다. "너는 얼마나 잘 났기에". 맞다. 나도 부족한 것 있고, 나도 돈 중요하다 생각하고, 나도 성경의 말들에 의심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 부족한 사람들이지.

하지만 내가 지적하고 싶은 건 몇몇 목회자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목회자가 어떤 문제가 있던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교회만 크면 모든게 용납되는 그런 흐름이다. 교회 전체적으로 그런 분위기를 없애지 못한다면 한국교회의 장래는 없다고 생각한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만 제대로 따라도, 예수를 닮고자 조금만 노력해도 한국교회는 최소한 욕은 먹지 않을 것이다. 예수의 원리를 따르지 않고 세상의 원리를 따르는 목회자들... 그렇게 세상이 좋으면 교회를 떠나는게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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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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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아이를 좋아하는 여인이 하나 있었다. 이 여인은 사랑이 워낙 넘치기 때문에 그 사랑을 받아줄 아이들이 필요했다. 아이들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이 여인의 최대 행복한 순간이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아이들이 나중에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착한 아이로 자랄지, 아니면 말을 안듣는 나쁜 아이로 자랄지 알 수가 있었다. 무섭지만 아이들이 만약에 말을 안들으면, 그 아이들은 평생 감옥에 같혀 매일 매일 형벌을 받아야한다. 그래도 이 여인은 아이를 낳는다. 착한 아이와 나쁜 아이를 동시에... 그리고 그 모든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 중의 반 넘는 아이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나쁜 아이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

전지 (모든 것을 앎) 라는 하나님의 속성과 사랑이라는 속성을 섞어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만들어 보면 위와 같은 모양이 나올 수 있다. 실제로 이 것이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의 시나리오다. 하나님은 사랑할 대상이 필요해서 그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에덴 동산에 두어 살게 하였는데, 그 에덴 동산에는 선악과라는 나무를 두어 인간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순종해야하는 것을 항상 기억하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으며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을 했고, 그 결과 인간 세계에 죄가 들어왔다. 아들인 예수를 보내어 착한 아이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많은 아이들이 나쁜 아이로 자라 결국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

전지하신 하나님이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을 것을 몰랐을까? 몰랐다면 전지한 하나님이 아니다. 만약 알았다면 그건 방임이 아닌가? 어떤 부모가 사랑하는 아이를 놀이방에서 놀게 했다. 그 안에는 아이가 재미있게 놀만한 장난감이 참 많이 널려있다. 그런데 그 안에 칼한자루가 놓여있다면? 아이한테 이 칼은 위험하니까 절대로 만지지마? 라고 했다고 부모의 책임이 다 없어지는 걸까? 더군다나 그 아이가 칼을 만져서 다칠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렇다면 미리 그 칼을 없애버리는게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부모의 책임이 아닐까? 아이가 칼을 만져서 다쳤다면 도데체 누구의 책임이 더 큰 걸까? 게다가 그 부모는 아이가 칼을 만졌다고 놀이방에서 쫓아내버렸다.

심각한 자기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속성으로 전지 (모든 것을 앎) 전능 (모든 것을 할 수 있음), 무소부재 (어디에나 있음), 영원성 (처음과 끝이 없음), 그리고 변하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도데체 이런 하나님이라면 인간이 태어나서 고생하고, 그리고 많은 수의 인간들이 결국 지옥에서 끝나지 않을 형벌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 인간을 왜 만들었을까? 자기 만족을 위해서? 사랑의 대상이 필요해서 강아지 하나 데려오듯 인간을 만들은 걸까? 그렇게 해놓고 왜 자기 자식까지 죽여가면서 인간을 위해 애를 쓸까? 아예 처음부터 인간을 만들지 않았으면 되는 것 아닐까? 그럼 사랑할 대상이 없어서 너무 외로워지는 건가? 그걸 못참는다면 전능의 하나님일까?

우리 딸이 예뻐하는 강아지 인형이 있다. 너무나 예뻐해서 잘 때도 안고 자고, 학교에도 들고 다닌다. 그 강아지 인형은 절대로 내 딸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우리 딸이 그 인형으로 인해 얻는 즐거움이 줄어드는 것 같지도 않다. 사랑하고자하는 딸 아이의 욕구를 강아지 인형은 적어도 지금은 충분히 만족시키고 있다.

사랑할 대상이 필요하다면 아예 인간의 인형을 만들면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말 잘듣는 천사들도 있지 않은가? (몇몇은 반항을 하긴 했지만...) 도데체 인간을, 그것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을 하나님은 왜 만들었는가?

인간들이 죄(성경이 말하는)를 짓고 고생하다 지옥에 가는 것... 그건 인간과 하나님의 공동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을 충분히 아시는 하나님이 왜 그냥 놔두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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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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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가족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우선 9살 먹은 우리 딸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아빠.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인데 왜 사탄을 그냥 놔두시나요? 지금 사탄을 없애버리고 사람들이 다 차가게 살면 안되나요?" 나는 내가 알고있는 모범답안을 말해줬다. "그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실려고 그런 거야. 우리는 로봇이 아니잖아". 그 대답에 우리 아이는 만족한 모양이다. 그래 우리는 로봇이 아니지...

아내에게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에 같이 쓸 수 있는 저널을 하나 선물을 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은 릭워렌이라는 목사가 쓴 책으로 크리스찬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 40일간 점검할 수 있게 쓰여진 책이다. 많은 기독교인이 읽고 영향을 받았다. 이 책 첫날 내용이 이거다. "우리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아내가 그걸 읽고 나서 나에게 한 말. "이게 우리 살아가는 목적의 전부라면 우리는 로봇 아닌가?" "전에는 다 이해가 되었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동의가 안되네"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인가?"

자유의지를 주었다고 하면서, 우리 삶의 목적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러면 그 자유의지는 원래 지어진 목적대로 살지 않는 자유의지가 아닌가? 결국 죄를 짓는 자유의지라고 해석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을 즐겨하시는 것 같다. 고민하고 갈등하지 않는 방법은 딱 하나다. "믿고 그냥 고분 고분 순종하는 것" 그럼 그게 로봇이랑 뭐가 다른가? 결국 하나님이 원하는 건 로봇이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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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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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트랙백] 로봇인가 아니면 자유인인가..

    2007/02/19 09:43
    삭제
    쉐아르님의 로봇인가 아니면 자유인인가... 에 대한 덧글. "우리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라고 하는 건 저도 머리로는 알지만, 삶에서는 왜 그래야 하는지, 쉽게 잘 안되더군요. 사실, 저렇게 표현 되는 건 창조목적이 그러하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서로 설득하려고 또는 설득당하지 않으려고, 결론이 나지 않는 갑론을박에 목을 메는 경우를 가끔 봅니다. 그러다가 교회에서 예배시간에 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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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18 0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