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도올이 인기다. 어느 신문이든 도올의 주장과 함께, 그게 새로운 지식인의 주장인양 한마디 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 같은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정도 기독교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참 웃기다 못해 한심하고, 또 허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 오늘 읽은 기사의 전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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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은 4일 펴낸 <기독교성서의 이해>에서 이미 논쟁을 불러온 ‘구약 폐기론’뿐 아니라 현 기독교에서 너무나 당연스럽게 여기는 유일신앙과 삼위일체설을 정면으로 반박해 또다른 쟁점을 만들었다.

그의 글은 예수 생애 전후 시대와 성서가 형성된 당시의 종교, 문화, 인물들에 대한 고증을 깔고 있다. 기독교를 공인해 13번째 사도로까지 불리는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장인과 부인, 친자식까지 처참하게 고문해 죽인 ‘역사적 사실’도 글에 언급했다.

이 책은 ‘성서 문자 무오류설’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도올은 “초기 기독교엔 구전과 예배제식만 있었지 경전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며 “1세기에만 해도 예수한테서 직접 말씀을 듣거나, 직접 들은 제자한테서 직접 전해들은 ‘사도’의 말이 경전과 같은 권위를 지녔는데, 2세기 초에 이런 사람들이 모두 죽고, 교회 내의 구술 전통이 변형되고 왜곡되면서 곳곳에서 사도성을 가장해 경전을 저작하거나 편집하는 것이 자유롭게 이뤄졌다”고 쓰고 있다.

그는 또 이스라엘 민족의 유일신앙은 야훼교를 창시한 모세로부터 출발한 것이며, 초기 기독교에선 예수가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생각도 자연스러웠다고 주장했다. 그는 “니케아 종교회의(325년)에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알렉산더와 ‘예수는 인간일 뿐’이라며 논쟁했던 아리우스는 오늘날엔 흉악한 이단자로 취급되고 있다”며 “그러나 당시 아리우스의 주장은 초기 기독교도들의 리버럴한 사상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대변한 것이었고, 그렇지 않았다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직접 중재에 나설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도올은 “‘성부·성자·성신’이라는 말도 복음서의 개념이 아니며 오직 가톨릭교회 내에서 성립한 삼위일체 논쟁 이후의 독단적인 교리 개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자유주의 신학 전통이 활발한 서구에서는 자유로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복음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전통 탓에 논의 제약이 심했다. 도올의 주장이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배경이다. 조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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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도올이 삼위일체를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진리라고 인정한 이유를 알기나 하고 말하는 걸까? 그리고 그와 다른 주장을 하는 자들을 이단자로 취급한 이유를 알고 있을까? 삼위일체라는 교리가 나오게 된 근거가 되는 성경구절들을 제대로 찾아보기나 하고 말하는 걸까? 최초의 성경 사본의 추정연대가 50~60년이라는 사실을 알기나 하고 말하는 걸까? 세상에 가장 많은 사본과 참고자료가 있는 것이 성경이고 그들의 일치되는 비율이 95%가 넘는다는 것을 알고서도 자유로운 저작과 편집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성서 문자 무오류설’의 위험성을 지적했다고? 도올은 지금 기독교에서 성서의 문자 하나 하나를 아무런 의식없이 받아들인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무리 보수적인 교회에서도 완전 무오류설을 믿는 교회는 없다. 필사 과정에서 실수가 생길 수 있는 것을 다 인정하고 있다.

도올이 하는 주장의 수준을 보면 그가 '다빈치 코드' 하나 읽고 말하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도올이 하는 말들은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다. 2000년 기독교 역사에서 수없이 거론되어지고 수없이 교정을 거친 말들이다. 그런데 마치 자기가 새로이 깨달은 것인양 이야기하고, 또 그것이 새로운 지적인양 보도하는 신문들... 하나같이 한심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보수적인 전통 탓에 논의 제약이 심했다고? 도올의 주장이 파격적이라고? 20년도 전에 아직도 고등학생이였던 나도 여러번 토론하고 고민했던 주제다. 도데체 뭐가 새롭고 뭐가 파격적이라는 건가?

한국 기독교가 교회 짓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은 초등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 이야기 말고 도올에게서 제대로 된 학문적인 그리고 신학적인 지적을 보고 싶다. 어디서 줏어들은 소문을 말하는게 아니라 기독교 교리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문제가 있는지 하는 제대로 된 비평을 듣고 싶다.

자기도취에 빠져 몇마디 한 것에 남비 들끓듯 하는 걸 보니, 기독교의 꼴이 참 우습게 되긴 되었나 보다. 얼마나 제대로 된 역할을 못했기 이런 주장이 화제가 될까?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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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나가다
    2007.03.22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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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속에서 보는 숲과 숲밖에서 보는 숲은 차이가 있는 겁니다.
    무조건적인 믿음보다는 알고 믿자는 것이 도올의 주장인 듯 하더군요.
    "삼위일체를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진리라고 인정한 이유"
    회의에서 인정한 겁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하는 그런 종류의 회의말이지요.
    학문적인 비난이 아니라 비평은 누구든 할 수 있습니다.
    강제적인 전도와 교회 건물의 외형적인 확장이라도
    이제 좀 자제를 해야 이 나라에서 기독교가 살아 남습니다.
    남의 것은 전혀 있는 그대로 인정을 못하는 것이
    한국기독교라 한 소리 나오면 이렇게 들끓는 겁니다.
    저도 교회를 다닙니다만 이건 아니다...이런 것 정말 많습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
    • 2007.03.23 01:5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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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가다'님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맞지요. 한국 기독교 문제 정말 많습니다. 제가 이 블로그에 적어놓을 글들을 보신다면 제가 한국 기독교를 옹호하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도올의 말이 알고 믿자는 주장 정도로 받아들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저는 반대로 도올에게 제대로 알고 비판을 해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도올의 말대로 예수가 죽은 후 예수를 인간으로 여기는 생각들이 초대 교인들 사이에 자유로왔다면 그 주장이 당시에 얼마나 받아들였는지, 성경의 어느 부분에서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지를 제시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주장이 성경 전체의 일관적인 메시지와 일치하는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성경 전체의 일관적인 메시지는 도올의 주장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런 불일치를 극복하기 위해서 구약은 없애버리고 요한복음만 가치있다고 접근한다면 그건 제대로된 학문적인 접근이 아니지요.

      전 니케아 종교회의를 이렇게 이해합니다. 굉장히 초기단계부터 주류의 입장은 삼위일체를 인정하는 것이였습니다. 삼위일체라는 용어는 쓰지 않았더라도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고 하나님으로 인정을 했습니다. 이는 사도들의 편지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 주류의 입장을 회의를 통해서 확립을 한 겁니다. 새로운 주장을 꺼집어내서 인정한 것이 아니라요. 그렇기에 제가 "삼위일체를 인정한 이유"를 아느냐고 물어본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강제 전도와 외형 중심, 그리고 목회자들의 비윤리성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고, 또 그에 따른 징벌이 있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도올 같은 사람에게서 남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닌 제대로된 기독교 비판을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2. 2007.03.25 15:1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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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중에 '예수만이 유일한 길인가'에서 제 생각을 정리할 생각입니다만... 저는 '산 정상으로 이르는 길에는 여러갈래가 있을 수 있다'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그럴 수 있겠지요. 실제로 그러니까요.

    하지만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것과 구원에 이르는 길을 비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구원이라는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과, 산 정상에 오르는 것과 같이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비교하는 것이니까요. 굳이 비교한다면 하늘에 올라가는 길이라고나 할까요? 산 정상은 인간의 힘으로 올라갈 수 있지만, 하늘로 올라가는 일은 누군가 들어주기 전에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이 됩니다. 다원주의는 결국 구원을 인간의 영역에서 보기 때문이지요. 어디에나 진리의 파편은 있을 수 있지만, 전체가 진리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는 것이지요.
  3. 2007.04.27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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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올 선생의 주장을 이해하려면 도올 선생의 책을 읽어봐야 잘 알 수 있겠지요. 도을 선생의 책에 실린 글들을 보면 이야기가 상당히 복잡해지더군요.
    거기에 대한 판단이야 읽은 독자 스스로 할 문제고요.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길 자체가 맞는 길인지 틀리는 길인지 누가 압니까? 자기 신앙이 진리라는 증거나 보증이 어디 있나요? 자기 취향, 자기 마음일 뿐이지요.
    산꼭대기에 뭐가 있는지, 그 산이 맞기나 한지도 모르면서, 길 갖고 싸운들 뭐하나요? 지식은 없고 믿음만 난무할 뿐인데요.

    도올 선생의 경우, 신학도 전공했다고 들었습니다. 도올 선생의 견해로는, 사도 바울의 이론은 바울의 이론일 뿐 예수 오리지널이 아니다~ 대충 그런 것이더군요.

    또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역시 진지한 신학연구와 고민 끝에, 구약을 버리고 신약만 취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저술도 했지요. 그렇게 생각할 만한 여러 근거들이 있거든요. 그건 바로 기독교의 복음 신앙관이 아닌, 주체적인 한 인간으로서의 입장과 판단에 근거합니다.

    사해문서니 여러 문헌들 중에서 취사선택해서 바이블을 만들었다는 게 도올 선생의 주장이더군요. 그런 점에서 벌써 무오류설은 심각한 타격을 받지요.
    게다가 번역과정에서 본뜻이 훼손된 부분도 적지 않지요.
    하나만 예를 들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도, 원래는 낙타가 아니라 밧줄이라나 그런 뜻이래요. 번역 과정에서 왜곡된 거지요.

    저는 쉐아르 님과 도올 선생이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떤 증거에 입각해서 견해를 말하는지, 그 깊이와 정밀함이 어떠한지를 평가할 입장도 아니고 자격도 없으니 그냥 '재미있구나' 하면서 볼 뿐입니다.
    이 이야기도 그냥 참고로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도올 선생에 대해서 별 감정이 없습니다.
    그리고, 도올 선생이 주장하는 것 중에는 맞는 이야기도 있고 틀리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도올 선생이 맞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야기 방식의 문제라든가 독자의 무지로 인해서 도올 선생의 이야기를 오해하게 되는 부분도 있더군요. 제 실제 체험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데카르트가 시대상황의 한계(사회적 종교적 압력)와 자신의 신앙 때문에 인간 기계설과 영혼설을 절충한 설을 발표했는데, 도올 선생은 시대상황의 한계를 강조했더군요.
    이 경우 철학이나 철학자 데카르트의 속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은 혼동을 일으키기 쉽지요. 도올 선생의 말을 부정하거나 오해하게 될 여지가 있지요.

    느긋하게 탐구하는 게 좋습니다. 또한, 이런 종교 문제는 관점 차이도 존재하니까 여러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게 좋겠지요.
    쉐아르 님이야 워낙 현명하게 철저하게 비판적으로 잘 생각하시니까 이런 말씀 드릴 필요도 없겠지만요.

    그리고, 도올 선생의 말이 별로 특별한 이야기도 아닌데 왜 새삼스럽게 화제냐~ 하셨는데요,
    그게 사실은 현재 한국교회의 수준과 사태의 심각성을 증언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쉐아르 님이야 깊이 있게 공부하고 고민하시는 분이시니까 시시하게 느껴지실지도 모르지만, 수많은 일반 신도들이야 별 공부나 생각 없이 믿는 분들도 많은 듯 싶습니다. 그런 분들 입장에서 볼 때야 도올 선생의 이야기가 새롭거나 충격일 수도 있지요.

    사실, 도올 선생 식의 노골적인 이야기, 고민, 논쟁을 한국 교회에서 대놓고 하나요? 그냥 무작정 믿으라고만 하지요.
    문제 제기를 한다는 측면에서만 봐도 나름의 의미는 있을 수도 있겠지요.

    저야 뭐 별 생각없이 그냥 지켜보는 입장입니다만......

    제 입장에서 보기에는, 진리 자체를 추구해야지, 어떤 종교의 교리가 맞네 틀리네 논쟁한들, 그건 마치 귀신이 다리가 있냐 없냐를 갖고 다투는 것과 비슷해보입니다. 귀신의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운 마당에, 귀신이 다리가 있냐 없냐를 갖고 싸운들 신통한 해답이 나올까요?

    그런 점에서 교리 논쟁만큼 비생산적인 논쟁이 없을 듯 싶네요.
    중세시대에는 핀 끝에 천사가 몇 명 올라갈 수 있느냐를 놓고 논쟁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 2007.05.01 14:3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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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올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마음 한구석에 "그의 책도 안 읽어보고 어떻게 비판을 하냐?"라는 찔림이 있었느데 보드라우미님이 바로 지적을 해주시네요 ㅡ.ㅡ;;;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가 썼다는 책을 찾아서 읽어볼려고 주문해 놨습니다. (근데 요즘은 책읽을 시간이 너무 없어서 ㅡ.ㅡ)

      근데 저의 접근 방법은 도올이나 보드라우미님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기독교, 그리고 다른 모든 종교들을 인간이 만들었고 거기서 인간이 쌓아놓은 지혜를 얻는 것이 다라고 생각한다면 도올의 접근방법이 당연히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질문하는 것은 기독교가 성경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성경이 신의 말씀이 아니고,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기독교에 대한 공부도 전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좀 극단적이지요?

      성경이 많은 문서들을 추려서 나온 결과물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른 어떤 문서들보다도 성경의 사본들은 절대적으로 많습니다. 숫자는 정확히 기억이 안나지만 성경의 전체 혹은 일부가 담긴 고문서가 3만개가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그 문서들을 서로 비교하면 전체적으로 주장하는 내용이 일관적입니다. 정확한 비교는 안되겠지만 알렉산더 대왕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그가 죽은 후 150년이 넘은 후에 되어진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무도 알렉산더에 대해 의심을 안하지요. 그런 것에 비하면 예수의 일생에 대한 기록은 차고 넘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근본적인 교리들 - 하나님의 아들 예수,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로 인한 대속 -에 대한 내용들은 상당히 초기단계의 문서 (예수 사후 30년 이내)에서부터 발견이 됩니다. 따라서 저는 후세 사람들이 기독교의 주장을 편의에 맞추어서 변질시켰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최초에 예수가 말한 것이 사실이냐 아니냐가 저에게는 더 큰 질문입니다.

      그렇기에 성경을 쪼개어서 신약만 수용하고 구약은 폐기한다는 것은 인간의 관점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신이 없다면 신약도 별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면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이야기했고 자신만이 구원의 방법이라 이야기했습니다. 그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예수가 아무리 좋은 말을 했든 별 가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정도 좋은 이야기야 다른 사람도 얼마든지 했으니까요.

      저는 기독교는... 그리고 모든 종교는 참 아니면 거짓 둘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참이 아닌 종교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극히 적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참이라고 믿지도 않으면서 그 종교에 남아있는 자들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키는 거지요. 썩은 목사들이 다 그런 부류라고 생각합니다. 전 신이 없다고 생각되는 순간, 예수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순간 아무 미련없이 기독교를 떠날 생각입니다. 참이 아닌 종교는 그 자체가 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4. 2007.05.0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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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쉐아르 님의 말씀에 대체적으로 동의하면서, 좀 다른 측면도 생각해봅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과연 예수라는 분이 말한 게 당대나 후대에 제대로 이해되었는가, 기독교인들이나 신학자들이 구약부터 신약까지 일관된 논리를 전개하려고 꿰어맞추긴 하지만, 그게 과연 진실인가?
    (구약의 예언에 맞추려고 당나귀 타고 입성하는 예수.... ^^)

    저는 순수한 진리 탐구의 입장이고, 인간을 중심에 놓는 입장이니,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의 가정에 얽매여서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의 많은 종교들은, 과학이나 기술, 철학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만들어졌지요. 그런데, 어떤 하나의 종교 안에 담긴 여러 주장들이나 가르침이 있는데, 그게 과연 100% 전부 진실이거나, 100% 거짓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진실과 거짓이 범벅이 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면의 진실, 일면의 거짓.

    저는 맹신에 사로잡히는 게 싫어서 어떤 특정 종교를 믿지 않고, 또 어떤 사상을 좋아하더라도 그 속에 틀린 부분이 있으면 정확히 '이건 틀렸다' 지적하는 편입니다. 그런 태도가 진리 탐구자의 자세로서 맞겠지요.

    제가 짧게나마 공부하고 경험해본 바로는, 현재 시중에 퍼져있는 여러 종교들 안에는 긴 역사를 거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들이 범벅이 되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이게 과연 붓다의 오리지널한 생각인가?' '이게 과연 예수의 오리지널한 생각인가?' '이게 과연 공자의 오리지널한 생각인가?' 의심스러운 대목이 있어요.
    후대인들이 자기 멋대로의 생각을 뒤섞어서 오염된 부분들이 적지 않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진리 탐구를 하는 것은, 한 발 한 발 진리를 향해서 전진하는 것이라는 게 제 입장입니다.
    물론, 진리가 아닌 것은 아닐 뿐이지요. 어떤 종교의 특정 교리가 진리냐, 아니냐에 대한 답은 쉐아르 님 말씀대로 명백하겠지요.
    단, 종교에는 수많은 교리들과 교훈들이 있으므로, 저는 일부의 진실에는 동의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라, 죄인을 미워하지 말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라, 그런 이야기는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웃에 무관심하고 죄인을 너무 미워하는 사람들 보면 안스럽더군요. 자신이 교회 다닌다면서 그런 사람 보면 참 어이가 없더라고요.

    쉐아르 님 말씀대로, 예수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이 없느냐에 대한 답은 명백하겠지요. 거짓, 아니면 참이겠지요.
    제 입장에서는, 그 주장의 속뜻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진실하게 선을 실천하면서 살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이런 주장이라면 좋다고 봅니다.
    그러나, 교회 안 나가고 헌금 안 내면 지옥 떨어진다...... 이런 식의 주장이라면, 그런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거짓말이라는 게 여러 증거와 근거에 의거한 결론입니다.

    진리의 전매특허란 게 있을까요? 공자를 통하지 않고서는 진리를 알 수 없다는 주장이 황당한 것처럼, 예수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 받을 수 없다는 주장도 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지전능한 신으로서는 너무 안 어울리는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신은 그냥 그 전지전능함으로 우리 전 인류가 진리를 알고 평화롭게 살도록 세상을 만들어놓으면 될 뿐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 대한 억지스러운 근본주의 기독교식 해석은...... 저는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현실 도피의 측면이 너무 강하달까요.
    이게 제 의견입니다.
  5. 2007.05.0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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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참, 그리고요, 기독교에 비판적인 분들의 지적을 보면, 아리송한 부분들이 있기는 합니다.
    예수라는 ㅂ
  6. 2007.05.0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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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라는 분이 초창기에 그다지 유명하지 않아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독교 관련 문서 말고 당시의 로마 역사책 같은 곳에 기록된 게 없다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예수라는 분이 과연 실존했던 분인지 의심스럽다는 겁니다.
    예수의 일대기와 비슷한 신화는 전부터 여러 곳에 있었기도 하고요. 그러다보니, 예수의 일대기는 기존의 신화들을 짜집기한 게 아니냐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런 학설을 집중적으로 소개한 서적도 있는데, 우리나라 기독교계의 반발로 더 이상 발간되지 않는다나요.

    또한, 예수라는 분이 실존하기는 했어도, 성경에 기록된 대로 초능력과 기적을 행하지는 않았으리라는 견해도 있어요. 물론, 정신적인 차원에서 기적 비스무레한 일시적 호전 증상을 보이는 분들은 있었겠지만요.(요즘도 그런 일들은 종종 보고되고 있지요. 정신적 마취 증상이랄까요.)

    죽었다 살아나는 문제도 그래요. 현대의 중국에도 의사가 죽었다고 진단해서 관에다 넣었는데 다시 되살아난 할머니의 사례도 보고되었지요. 자연적으로 죽었다 살아나는 분들이 가끔 있다고 합니다. 겉으로는 죽은 것으로 보이지만, 어떤 연고로 죽은 듯했지만 사실은 죽지 않았고 다시 재생이 시작된 경우지요. 그 할머니는 이도 다시 나고 살결도 고와지고 머리도 검어지고 그러셨다네요. 텔레비전에서 봤습니다.

    도올 선생의 책은 읽어보시면 재미있으실 겁니다. ^^
    기본적으로 쉐아르 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아, 그리고 톨스토이가 신약만 인정하고 구약은 부정한 근거는 이래요.
    구약의 신은 너무나 야만적이고 잔인해서 제 정신 갖고 받아들이기 힘든 신이라는 겁니다.
    신약의 예수의 가르침은 질적으로 전혀 다른 주장이라는 거지요.
    구약이 있어서 그 영향으로 예수라는 위인이 나타난 거지만, 그러나 예수는 종교 개혁을 단행했다는 겁니다.
    구약에서 예언한 존재가 바로 예수...라는 주장은, 결국 어떤 인간들의 관점일 뿐입니다. 그 주장이 진리라는 근거는.... 없어요!

    그런 점에서 볼 때, 톨스토이의 주장 역시 동등한 자격을 가진 하나의 견해가 될 수 있는 거지요. 무교회주의라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가톨릭 입장에서 볼 때는 개신교의 주장 역시 이단 아닌가요? 하지만 어차피 진리라는 증거,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볼 때는 별 차이도 없지요.

    최근에 예수가 아들을 낳아서 후손이 이어졌다는 주장이 책으로 영화로 나와서 유명해졌는데(다빈치 코드), 어떤 가톨릭 교인이 그러더군요. 그 주장은 거짓이라고요.
    그런데, 자신의 가톨릭 신앙이 진실이라는 근거는 있는 것일까요? 뚜렷한 근거가 없기는 서로 비슷하다고 보입니다.

    결국, 모든 판단은 스스로 해야 하는데, 그 판단기준이 뭐냐는 겁니다.
    그 기준이 인간성이냐, 인본주의냐, 아니면 자신의 이득이냐, 진리냐, 공포나 두려움이냐, 그런 게 문제라고 봅니다.
    일상생활의 현실이냐, 어떤 책에 쓰인 문구냐, 머리 속의 공상적 관념이냐?

    충분한 증거를 입수했느냐, 다각도로 검토해보았느냐, 탐구의 깊이가 충분하냐, 편협한 관점은 아니냐, 여러 사실들을 논리적으로 일관되게 종합해보았느냐?
  7. 2007.05.01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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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보기에는, 어떤 주장이 진리냐 아니냐 이전에, 그 주장의 근거가 이성에 근거하고 증거에 입각한 주장이냐, 아니면 무조건 믿으라는 도그마 맹신이냐가 문제라고 봅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미 기존의 많은 종교들은 불합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현실과 모순되는 주장을 하면서 증거도 없이 무작정 믿으라며 지옥 갈 거라고 협박을 하는데, 이건 이미 거짓말이고 넓은 의미에서의 사기행각일 뿐입니다.

    자신이 진리 탐구를 한다면, 현실과 모순되는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대안을 찾아보는 진실한 노력이 뒤따라야 구도자로서 말이 되는 거지요.

    현실을 외면하고 그냥 무조건 믿으라는 맹신의 자세는 현실 도피이고 세뇌일 뿐입니다. 저는 그런 태도에 반대합니다.
    인류가 이만큼이나 진보해온 것은, 인간의 이성과 양심이 살아있기 때문일 겁니다. 한 때 종교의 맹신적 도그마가 위세를 떨치고 악행을 저지른 때도 있었지만,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릴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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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년간 간직하고 있던 신념에 대한 질문을 시작하며...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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