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여행이라는 이름을 걸고 치열한 질문을 준비하던 중 "세종대왕은 천국에 갔을까"라는 글을 접했다. 글의 요지는 이렇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대로 한다면 세종대왕은 천국에 가지를 못했고, 그게 맘에 안들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것은 '종교'란 다른 차원의 것이며 해결방법은 '믿음'뿐이기 때문이다.

비기독교인, 혹은 무신론자들이 보면 이해가 안되고 반감이 갈만한 내용이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논점이 이해는 된다. 두호리님의 논점은 믿음이란 '논리'로 설명되어질 수 없는 것이고, 기독교인은 '비논리적인 경험'에 의해 예수를 신뢰하고 천국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글이다. 나도 그런 '비논리적인 경험'을 무수히 해왔으므로...

하지만 뭔가 마음이 무겁다. 정말 그러한가. 믿기 위해서는 '논리'나 '이성'을 포기해야하는가? 꼭 그렇지야 않겠지만 두호리님의 글을 보면 애초부터 '논리'와 '믿음'은 같이 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애초에 논리적인 분석은 접어두는 것이 낳다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진다. 정말 그러한가... 난 인정할 수 없다.

하나님은 (그 분이 계시다면) 우리에게 생각할 수 있는 이성을 주셨다. 어떠한 주장을 가설과 진실로 나눈다면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은 가설이요, '생각할 수 있는 이성이 있다'는 것은 진실이다. 왜냐하면 전자는 모두가 납득하는 것이 아니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생각할 수 있는 이성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이성을 인간에게 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성을 사용해서 '믿음'에 대해 의심을 가지는 것이 죄라면 이전 글에도 말했듯이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고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방임이다.

'믿음'과 '이성'에 대해 상반된 두개의 주장이 있다.

"조금이라도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기독교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 조지 스미스

"크리스찬 믿음은 반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성경의 주장은 이성과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는 타당한 제안이다" - 찰스 콜슨

누구의 말이 옳을까? 나는 아직도 '이성'과 '믿음'이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받은 이성을 사용해서 끝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믿음에 대해 질문을 할 것이다. 만약 공존할 수 없다면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굴복시키겠지만, 처음부터 한쪽을 선택한다는 것은 게으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히 믿음에는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비논리적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믿음이 이성을 죽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맹목이지 참된 믿음이 아니다.

참고로 한가지 더 지적하고 싶다. "세종대왕이 천국에 갔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모범답안은 "모른다"이다. "가지 못했다"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속성이 세상 만물을 통해서 드러나 있다고 말을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 사람들이 반응을 하는지 안하는지 예수가 전하여지지 않았을 때에도 핑계치 못할 것이다라고 말을 한다. 그 이야기는 예수가 (그 이전에는 여호와의 이름이) 전하여지지 않았을 때에도 하나님의 판단기준은 있었다라는 것이다. 성경은 그 판단 기준이 무엇인지 말을 해주지 않는다. 또 세종대왕이 만물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어떻게 반응을 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세종대왕이 천국에 갔는지 안갔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기회도 주지 않고 무조건 지옥으로 보낸다면, 그건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고 경외할 가치가 없는 폭군일 뿐이니까.

이 대답이 내가 찾은 '이성'적인 대답이요 대부분의 복음적인 크리스찬들이 사용하는 대답이다. 그렇다. 나는 아직도 이성과 믿음이 서로를 죽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내가 빌리그래함이 그렇듯 "내 머리로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해도 당신의 말씀이니 믿겠다"고 할지, 찰스템플톤이 그랬든 "그 행위가 마음을 닫는 이성의 자살"이라고 하며 더 이상 크리스찬이 되기를 거부할지는 나는 아직 모른다. 그건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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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19 07:2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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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왠 일인지 트랙백이 한번도 성공을 못합니다. 그래서 원본 글의 주소를 남깁니다. http://dooholee.com/blog/dooholee/908
  2. 길동이
    2007.02.19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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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국에 못 가셨습니다. 저는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고 늘 갈등하면서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만 이 나라 사람들의 학습되어진 믿음대로라면 분명 못 가셨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믿음이 이성을 아주 쉽게 죽이기도 합니다.
    • 2007.02.19 23:2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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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글 감사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그 부분은 좀 이해가 안되네요. 제가 배워왔던 지식에 따르면 "모른다"가 그 문제에 대한 답이였거든요. 아마도 교회가 더 보수적으로 되어가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3.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02.19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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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른다."
    신학대학을 다닐때 조직신학교수님께서 자주 주셨던 말씀입니다.
    무책임한 대답은 아니었다라고 생각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우리의 사고를 넘어설때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이 답답하고 어리석어보이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포기하면 안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가진 이성으로 할 수 있는 만큼
    하나님을 향한 탐구는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이던 학문이던 비판이던. 그런 여행을 기대합니다.
    • 2007.02.19 23:5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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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 기독교에 관한 질문이 아니더라도 세상에는 "모른다"라고 답을 해야하는 문제들이 참 많이 있지요. 전 "모른다"가 꼭 이성과 위배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게 저희가 알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저것 끼워맞추어 억지 답을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낳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개인 혹은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답을 변질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그냥 "모른다"라고 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4. 길동이
    2007.02.26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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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대왕이 천국에 갔을까..를 모른다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천국에 갔을까를 모른다고 해도 좋을런지..? 아니면 지금도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도 역시 천국에 갈 수 있는 여부 조차 모른다는 대답이 나오게 되지는 않을지..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다르다면 기독교의 답변은 확실히 안갔다가 옳은 답이 아닐지..
    • 2007.02.27 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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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서에 따르면 예수의 이름이 전해지고 나면 핑계댈 수가 없다고 합니다. 예수의 이름이 전달되고 난 후와 전달되기 전에는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그 기준이 예수를 선택할지 거부할지를 결정할 수 있을만큼 충분히 전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면 구약시대의 인물들 모세, 엘리야, 다윗조차도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할 수 있지요. 아니면 율법을 따르냐 따르지 않느냐가 기준이라면 율법을 완전히 지킬 사람은 없는 것인데, 그도 구원의 절대 기준이 되긴 어렵겠지요. 그리고 율법이 주어지지 않는 이방인들에게는 구원의 방법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면 그건 공평한 하나님이 아니겠지요.

      여러가지로 생각해도 예수가 전달되지 않았다면 다른 기준이 적용되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렇지도 않다면 정말 폐쇄적이고 불공평한 하나님이 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과연 믿고 따를만한 하나님이라고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에 대한 비판중에 가장 큰 항목이라면 기독교의 배타성일거다. 나는 기독교가 정말 배타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독교의 교리를 보면 배타적일 수 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에 대한 배타성은 나중에 다시 한번 적어보고 싶고, 오늘은 예수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기독교를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간중에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한사람이 예수라는 것에는 부정하지 않을 것 같다. 예수의 전기라 할 수 있는 사복음서 공통적으로 예수의 공생애(공적으로 활동한 기간)를 삼년이라고 한다. 30살부터 33살. 마흔이 된 내가 돌아보면 설흔 즈음의 나는 아직도 파릇파릇하고 ^^ 철이 없었던 나이였다. 그런 적은 나이에 고작 3년,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나라의 변방에서 주로 활동했던 한 사람이 이후 이천년 동안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 어찌 보면 기적의 하나라고 생각이 든다.

예수에 대한 해석도 참 많다. 이천년전의 인물이고 또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모습이 제한적인 시각만을 보여주다 보니, 예수라는 한 인물을 총체적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은 사실 없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이는 구세주로, 어떤 이는 혁명가로, 어떤 이는 현자 중의 하나로, 예수에 대한 해석도 다 제각각이다. 인간이다 아니다, 신이다 아니다, 결혼을 했다 안했다, 사생아다 아니다... 세상의 어느 누구가 이렇게 다양한 면에서 다양하게 해석되어지는 인물이 있을까?

소위 기독교인들이 강조하는 몇가지 기본적인 교리가 있다. 기독교안에 많은 교파들이 있으면서도 어떤 파는 이단이다, 어떤 파는 이단이 아니다라고 판단하는 근거가 이 몇가지 교리를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그 중에 예수에 대한 교리라 한다면 1) 예수의 동정녀 탄생 2) 예수의 신성과 인성 3) 예수의 죽음 4) 예수의 부활 5) 예수의 승천및 재림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근본적인 교리를 보면 예수는 분명 보통의 사람과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

하지만 그런 시각을 배타적이라고 생각하고 예수를 다시 해석해야한다는 주장은 끊임없이 계속 되어왔다. 뭐 그리 배타적으로 해석할 필요 있냐? 예수라는 인물을 아예 무시하지는 않지만 신이라는 것은 좀 믿기 힘들지 않냐? 그냥 좋은 교훈을 제공하는 현자의 하나로 해석을 하자... 라는 주장이다.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는 싫어하지만 예수는 좋아하기도 한다. 그뿐인가. 정통 교회라는 곳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교회 왜 다니냐고? 그냥 좋은 말씀 듣고 나면 사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보기에 교인들중 30%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쩌면 더 될 수도 있고.

합리주의와 인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예수를 인간의 이성을 사용해서 재해석하는 것일 수도 있고, 어찌 보면 좋은게 좋은 거라고 하는 관점일 수도 있다. 또 기독교의 배타성으로 인한 폐해를 보면서 제시하는 합리적인 절충안일 수도 있다. 모든 종교가 다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예수의 가르침도 사랑하라는 것이니, 그냥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좋은 이야기 중의 하나로 여기자는 생각이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예수에 대해서는 모 아니면 도다. 결론부터 말하면 예수는 미친 사람이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이다. C.S. 루이스라는 크리스찬 지성인 (이런 표현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이 자주 말하는 정말 멍청한 말이 있다. 난 그 말이 다시는 안나왔으면 좋겠다. "나는 예수를 위대한 도덕적인 선생으로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 하지만 그를 하나님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 이 말은 정말 말이 안되는 말이다. 만약 그저 인간이기만 한 어떤 사람이 예수가 한 거와 같은 말을 한다면 그는 도덕적 선생이 될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는 미쳤거나... 아니면 지옥의 악마정도 될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선택을 해야한다. 이 예수라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거나 아니면 정신병자 혹은 그보다 더 문제가 많은 사람이다. 우리는 그를 미쳤다고 입을 다물게 하고, 침을 뱉고, 혹은 그를 죽여버릴 수가 있다. 아니면 그의 발에 엎드려 그를 주님 혹은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잘봐주는 척 하면서 예수가 위대한 스승이라고 하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은 말을 해서는 안된다. 예수는 그런 선택권을 남겨주지 않았다. 그는 절대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예수의 말을 기록한 것이 성경이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의 모습이 후세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발견된 기록의 양과 발견시기를 생각하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이 초기 기독교(예수의 죽음 이후 2~30년 내외)의 기록과 거의 같다는 주장에 더 설득력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디. 성경이 제대로 보존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 집중적으로 파고 들 생각이다.

어쨋든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발언을 놓고 보면 다음의 사실들을 알 수 있다.

1.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했다. 베드로와의 대화, "나를 부인하는 자는 아버지를 부인하는 자"라는 발언, 대제사장앞에서 심판 받을 때의 발언, 당시 유대사회에서 하나님을 '아바'라 불렀다는 점등, 예수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했다는 증거는 복음서에 널려 있다.

2.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생각했다. 바리새인들과의 대화중 하나님에게만 쓸 수 있는 표현인 "I AM"이라는 말로 자신을 표현한점, 하나님만이 할 수있다고 여겨졌던 "죄를 용서한다"고 말한점등, 예수는 분명히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생각했다.

3. 예수는 자신만이 구원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요한복음의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이라는 표현, 사마리아 여인에게 자신이 구원의 근원임을 이야기한점, 자신의 죽음이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라는 확실한 정체성의 확립등, 예수는 자신이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왔음을 확실히 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이런 발언을 지금 세상에서 했다고 가정해보자. 예를 들어 평판이 좋은 사회운동가가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은 자신의 측근들과 힘을 모아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아주고, 부패한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를 주며, 타락한 권력층을 비판을 한다. 참으로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가끔 가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하나님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라고 이야기한다면.... 그래도 이 사람을 세상에 도움을 주는 도덕적 스승으로 모실 것인가? 아니면 사회운동가? 성인중의 하나... 넌센스다.

나는 아직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지, 아니면 정신병자인지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둘 이외의 다른 선택은 없다. 예수에게 굴복하던지 아니면 완전히 무시하던지.

예수를 좋은 말 몇마디한 성인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넌센스도 없고, 예수를 구세주라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교회 생활하는 것만큼 인생의 낭비도 없다.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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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02.1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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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들은 자신의 모습을 본떠 신을 만들었다...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 2007.02.16 14:5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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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구스님...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종교라는 것은 정말 없어져야겠지요. 꼭 기독교뿐 아니라 모든 종교가요.

      제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적어도 예수에 대해서는 좋은게 좋은거라는 식의 해석은 불가능하다는 거였습니다. 그런 두리뭉실한 평가를 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거지요.
  2. 2007.02.1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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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예수에게 굴복한 쪽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 2007.02.16 15: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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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정적으로는 저도 굴복하고 싶습니다... 그게 편하니까요. ^^;;; 하지만 그냥 습관적인 신앙은 싫더라구요. 그래서 하나 하나 따져보는 중입니다.

      저의 글이 혹시나 골든님의 믿음에 네거티브로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저 마음 약하거든요...
  3. 2007.02.16 15:0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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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굴복한 사람입니다. 쉐아르님의 영적 여행길을 축복합니다.
    • 2007.02.16 15:2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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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축복해주신다니...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난감하긴 하네요 ^^;;;
  4. 2007.02.1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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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에서 말씀해주신 루이스 님의 주장은, 흡사 예전 어느 유명인의 정치적 주장을 연상시키네요. 어설픈 양비론은 싫다, 입 닥쳐라...... 라는 말.
    그런데요,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어설픈 양비론이 아니라, 섬세하게 이것저것 따져보니 양쪽 다 잘못된 주장을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검토도 제대로 안 해보고 한 사람이 진리만 이야기했다고 보거나, 한 사람이 거짓말만 했다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겠지요. 섬세하게, 하나하나 따져봐야 합니다.
    어설픈 양비론이 아니라, 섬세한 양비론은 좋은 것입니다. 어설픈 편가르기, 흑백논리가 오히려 위험한 것이지요. 세상은 지금까지 그 어설픈 흑백논리에 의해서 피와 폭력의 역사로 이어져왔습니다. 기독교계를 비롯한 여러 종교와 사상이 세상을 피로 물들인 건 모두 그 흑백논리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미치광이냐 신이냐,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는 주장은 틀린 것일 수 있습니다. 루이스 님의 주장은 기독교 변증론일 뿐입니다. 그리고 기독교 변증론은 흔히 빠지기 쉬운 골목길로 빠지고는 하지요. 목적 자체가 '기독교 변증'이기 때문이지요. 진리 탐구가 아니고요.

    예수 그리스도가 했던 주장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지나치지 말고 돌보라는 말은 명언이지요. 그런 점에서 현자 맞네요.
    그런데, "내가 신"이라는 주장을 예수만 한 것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도 "내가 신"이라는 주장을 한 교주가 창시한 종교가 있습니다. 아마 무슨 종교 이야기하는지 아실 겁니다. 도에 관심 있냐는 질문을 길거리에서 받잖아요.
  5. 2007.02.1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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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에 대해 비판하는 안티 진영의 자료들을 보시면 흥미로운 사실들을 많이 배울 수 있습니다. 비판자들이 지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예수는 자신을 신의 아들이라고 했지, 신이라고 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헛갈리시나요? 신의 아들과, 신은 다릅니다. 또한, 그 신의 아들이란 말이 무슨 뜻이냐도 기독교 종파에 따라 해석이 달라요.

    불교에도 석가모니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세상에서 내가 유일하게 귀하다)이라고 했다지요. 이 말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뜻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의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의 종교들 중에, 한 특정 개인을 신격화하는 것만큼 우스꽝스러운 신앙형태가 없습니다. 이른바 우상숭배 되기 딱이지요. 예수가 "야훼신을 잘 모셔라"고 했는지, 아니면 "나 예수를 신으로 모셔라"라고 했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계속 다퉈왔습니다. 아시다시피 기독교에서는 종교재판으로 반대파를 숙청했고요.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투표를 통해 예수를 신으로 승격시켰다는 것도 이미 아실 것입니다.

    개인을 신격화하거나 절대화하는 것은 수많은 독재자들이 써온 정책입니다. 그리고 신을 부정하는 불교조차도, 어떤 종파에서는 붓다를 절대화하고 신격화하는 모순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선종에서 붓다의 절대화를 비판하는 이야기들이 많은 것은 바로 그러한 시대적 상황 때문이기도 합니다.
  6. 2007.02.18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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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그리스도가 현자적인 언행만 했느냐에 대해서는 비판도 받습니다. 버트란드 러셀 님의 책("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을 보시면 그러한 섬세한 비판을 보실 수 있지요.

    예수의 "원수를 사랑하라" 같은 말을 포함해서, 바이블의 주장들은 극단적인 증오와 파괴의 정서가 많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즉, 흑백논리의 표본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당연히 비판의 대상이 됩니다. 다른 종교의 경전들과 비교해보면 그 특징이 두드러집니다. 다른 종교들에서 원수나 적에 대해 강조하는 걸 보기는 힘들거든요.

    레오 톨스토이는 바이블이 대부분 한심하며 예수의 가르침과 도통 무관하다며 4복음서 이외의 바이블 내용 전부를 버릴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고 하지요. 주체적인 종교 해석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글에서 말씀하신 대로, 예수는 따라도 교회는 따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사상에도 여러 측면이 있고, 또한 바이블이 예수 본래의 주장들만 담은 것인가, 아니면 후세인들이 자기 멋대로의 주장들을 첨부하고 윤색한 것인가도 말들이 많습니다. 명백히 모순된 부분들도 꽤 있고요.
    그래서 예수의 주장이나 인격에 대해서는 평가가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점은, 기독교라는 거대 종교에 대해서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점이 많다는 것입니다. 특히나 지옥 교리 같은 것은 결코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나쁜 짓을 하면 지옥 간다느니 하는 평범한 이야기조차 비판의 여지가 있는 판국에, 하물며 교회에 안 나가면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지옥 간다는 식의 주장은 황당무계하며 혹세무민하는 주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재의 기독교가 과연 예수 본래의 주장일 것인가? 또한,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예수의 주장이고,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후세인들의 제멋대로 각색인가?

    제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기독교 안에서 세상을 보시면 평생 거기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 내 자신으로부터 모든 걸 봐야지요. (물론 이미 그 길을 추구하고 계시지요.)
    조물주는 자연을 통해, 삶을 통해 진실을 드러낼 것입니다. 결코 특정 종교단체나 특정 서적을 통해서 진실을 드러내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특정 종교단체나 특정 서적은, 사람들의 주장일 뿐입니다. 그게 조물주의 주장은 아니지요. 조물주가 특정 드라마나 특정 만화를 통해서만 진리를 드러낼 리가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게 제 생각입니다.

    기독교에 대한 평가는 그런 주체적인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류역사는 길기 때문에 이런저런 복잡한 문화들이 쌓이고 비틀려서 현재의 문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기독교는 그러한 인류의 수많은 문화유산들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기독교 외의 수많은 다른 문화들, 역사들을 살펴보시는 게 유리하다고 권해드립니다. 특정 이념에 젖은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건 세상을 왜곡해서 볼 위험이 있어서 좋지 않거든요. 이 우주는 기독교의 잣대로 규정될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요. 교회에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우겨댔지만 결국 지구는 태양 주위를 빙글빙글 돌 뿐이었다는 게 증명됐듯이 말이지요.
  7. 2007.02.18 11:4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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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드라우미님, 오셨네요 ^^;

    제가 글에서도 언급을 했듯이 기독교는 배타적인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루이스가 이야기했던 그런 이유들이 있는 것이고요. 물론 보드라우미님 이야기대로 양쪽 다 비교해봐야겠지요. 그게 지금 제가 하는 일이구요. 하지만 제가 한가지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선택적 취득입니다. 어떤 부분은 용납할 수 있으나 다른 부분은 아니다라는 접근이요. 예를 들어 도올이 현재 취하는 방식이요. 요한복음은 추상적이라 거론할만 하나, 다른 복음은 신화적이라 의미가 없고, 구약은 다 내다버려야할 것이다라는 주장이요. 종교가 그렇게 나뉘어서 해석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예를 들어 구약이 없다면 메시야의 예언도 없고 그렇다면 예수는 평범한 인간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 말이 옳다는 것이 아니고 그런 식의 접근 방법이 옳다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안티진영의 자료에 대해서는 저도 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느쪽이 옳다고 생각된다고 확실하게 말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신앙고백이 고린도전서 15장 중반의 내용입니다. 이안에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고백되어지는데 이 내용은 35~40년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어집니다. 그렇다면 예수가 후에 신으로 승격되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예수가 자신을 하나님으로 표현한 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복음서가 후에 수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요.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기독교는 선택적으로 잘라놓고 이것은 옳지만 이것은 옳지않다라는 접근 방식이 오히려 참다운 접근을 방해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이해하는 것은 용납하지만, 이해못하는 것은 누군가 나중에 추가한 믿지못할 신앙형태이다라는 식의...
  8. 2007.02.18 12: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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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중에 다른 글에서 정리하겠지만 기독교는 한두가지의 가설 (모든 사람이 납득할 수 있는 것이므로)에서 시작한다면 굉장히 논리적인 종교입니다. 그 가설은 인격신의 존재이지요. 사랑과 정의라는 속성을 가진... 그 이후는 굉장히 잘 짜맞추어진 시나리오대로 진행이 됩니다. 사실 기독교에 대한 모든 비판적 질문들에 대해 전체적교리상에 허점이 안생기면서도 대답할 수 있는 모범답안들이 있지요. 예를 들어 전혀 이해하기 힘든 동정녀 탄생의 교리에는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논리적 설명(물론 기독교 내의 교리이지만)이 뒷받침 되어 있지요.

    그런 것에 대한 이해가 없이 일방적인 기독교에 대한 비판은 아무 것도 이룰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소모적인 종교논쟁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제 나름대로는 제 3의 길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양쪽의 주장을 모두 보는 것이지요. 그게 저는 더 옳은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9. 서부서 한도경
    2022.03.1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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