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여행이라는 이름을 걸고 치열한 질문을 준비하던 중 "세종대왕은 천국에 갔을까"라는 글을 접했다. 글의 요지는 이렇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대로 한다면 세종대왕은 천국에 가지를 못했고, 그게 맘에 안들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것은 '종교'란 다른 차원의 것이며 해결방법은 '믿음'뿐이기 때문이다.

비기독교인, 혹은 무신론자들이 보면 이해가 안되고 반감이 갈만한 내용이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논점이 이해는 된다. 두호리님의 논점은 믿음이란 '논리'로 설명되어질 수 없는 것이고, 기독교인은 '비논리적인 경험'에 의해 예수를 신뢰하고 천국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글이다. 나도 그런 '비논리적인 경험'을 무수히 해왔으므로...

하지만 뭔가 마음이 무겁다. 정말 그러한가. 믿기 위해서는 '논리'나 '이성'을 포기해야하는가? 꼭 그렇지야 않겠지만 두호리님의 글을 보면 애초부터 '논리'와 '믿음'은 같이 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애초에 논리적인 분석은 접어두는 것이 낳다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진다. 정말 그러한가... 난 인정할 수 없다.

하나님은 (그 분이 계시다면) 우리에게 생각할 수 있는 이성을 주셨다. 어떠한 주장을 가설과 진실로 나눈다면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은 가설이요, '생각할 수 있는 이성이 있다'는 것은 진실이다. 왜냐하면 전자는 모두가 납득하는 것이 아니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생각할 수 있는 이성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이성을 인간에게 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성을 사용해서 '믿음'에 대해 의심을 가지는 것이 죄라면 이전 글에도 말했듯이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고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방임이다.

'믿음'과 '이성'에 대해 상반된 두개의 주장이 있다.

"조금이라도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기독교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 조지 스미스

"크리스찬 믿음은 반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성경의 주장은 이성과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는 타당한 제안이다" - 찰스 콜슨

누구의 말이 옳을까? 나는 아직도 '이성'과 '믿음'이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받은 이성을 사용해서 끝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믿음에 대해 질문을 할 것이다. 만약 공존할 수 없다면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굴복시키겠지만, 처음부터 한쪽을 선택한다는 것은 게으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히 믿음에는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비논리적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믿음이 이성을 죽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맹목이지 참된 믿음이 아니다.

참고로 한가지 더 지적하고 싶다. "세종대왕이 천국에 갔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모범답안은 "모른다"이다. "가지 못했다"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속성이 세상 만물을 통해서 드러나 있다고 말을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 사람들이 반응을 하는지 안하는지 예수가 전하여지지 않았을 때에도 핑계치 못할 것이다라고 말을 한다. 그 이야기는 예수가 (그 이전에는 여호와의 이름이) 전하여지지 않았을 때에도 하나님의 판단기준은 있었다라는 것이다. 성경은 그 판단 기준이 무엇인지 말을 해주지 않는다. 또 세종대왕이 만물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어떻게 반응을 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세종대왕이 천국에 갔는지 안갔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기회도 주지 않고 무조건 지옥으로 보낸다면, 그건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고 경외할 가치가 없는 폭군일 뿐이니까.

이 대답이 내가 찾은 '이성'적인 대답이요 대부분의 복음적인 크리스찬들이 사용하는 대답이다. 그렇다. 나는 아직도 이성과 믿음이 서로를 죽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내가 빌리그래함이 그렇듯 "내 머리로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해도 당신의 말씀이니 믿겠다"고 할지, 찰스템플톤이 그랬든 "그 행위가 마음을 닫는 이성의 자살"이라고 하며 더 이상 크리스찬이 되기를 거부할지는 나는 아직 모른다. 그건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Posted by 쉐아르
:

기독교에 대한 비판중에 가장 큰 항목이라면 기독교의 배타성일거다. 나는 기독교가 정말 배타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독교의 교리를 보면 배타적일 수 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에 대한 배타성은 나중에 다시 한번 적어보고 싶고, 오늘은 예수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기독교를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간중에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한사람이 예수라는 것에는 부정하지 않을 것 같다. 예수의 전기라 할 수 있는 사복음서 공통적으로 예수의 공생애(공적으로 활동한 기간)를 삼년이라고 한다. 30살부터 33살. 마흔이 된 내가 돌아보면 설흔 즈음의 나는 아직도 파릇파릇하고 ^^ 철이 없었던 나이였다. 그런 적은 나이에 고작 3년,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나라의 변방에서 주로 활동했던 한 사람이 이후 이천년 동안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 어찌 보면 기적의 하나라고 생각이 든다.

예수에 대한 해석도 참 많다. 이천년전의 인물이고 또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모습이 제한적인 시각만을 보여주다 보니, 예수라는 한 인물을 총체적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은 사실 없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이는 구세주로, 어떤 이는 혁명가로, 어떤 이는 현자 중의 하나로, 예수에 대한 해석도 다 제각각이다. 인간이다 아니다, 신이다 아니다, 결혼을 했다 안했다, 사생아다 아니다... 세상의 어느 누구가 이렇게 다양한 면에서 다양하게 해석되어지는 인물이 있을까?

소위 기독교인들이 강조하는 몇가지 기본적인 교리가 있다. 기독교안에 많은 교파들이 있으면서도 어떤 파는 이단이다, 어떤 파는 이단이 아니다라고 판단하는 근거가 이 몇가지 교리를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그 중에 예수에 대한 교리라 한다면 1) 예수의 동정녀 탄생 2) 예수의 신성과 인성 3) 예수의 죽음 4) 예수의 부활 5) 예수의 승천및 재림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근본적인 교리를 보면 예수는 분명 보통의 사람과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

하지만 그런 시각을 배타적이라고 생각하고 예수를 다시 해석해야한다는 주장은 끊임없이 계속 되어왔다. 뭐 그리 배타적으로 해석할 필요 있냐? 예수라는 인물을 아예 무시하지는 않지만 신이라는 것은 좀 믿기 힘들지 않냐? 그냥 좋은 교훈을 제공하는 현자의 하나로 해석을 하자... 라는 주장이다.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는 싫어하지만 예수는 좋아하기도 한다. 그뿐인가. 정통 교회라는 곳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교회 왜 다니냐고? 그냥 좋은 말씀 듣고 나면 사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보기에 교인들중 30%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쩌면 더 될 수도 있고.

합리주의와 인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예수를 인간의 이성을 사용해서 재해석하는 것일 수도 있고, 어찌 보면 좋은게 좋은 거라고 하는 관점일 수도 있다. 또 기독교의 배타성으로 인한 폐해를 보면서 제시하는 합리적인 절충안일 수도 있다. 모든 종교가 다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예수의 가르침도 사랑하라는 것이니, 그냥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좋은 이야기 중의 하나로 여기자는 생각이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예수에 대해서는 모 아니면 도다. 결론부터 말하면 예수는 미친 사람이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이다. C.S. 루이스라는 크리스찬 지성인 (이런 표현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이 자주 말하는 정말 멍청한 말이 있다. 난 그 말이 다시는 안나왔으면 좋겠다. "나는 예수를 위대한 도덕적인 선생으로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 하지만 그를 하나님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 이 말은 정말 말이 안되는 말이다. 만약 그저 인간이기만 한 어떤 사람이 예수가 한 거와 같은 말을 한다면 그는 도덕적 선생이 될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는 미쳤거나... 아니면 지옥의 악마정도 될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선택을 해야한다. 이 예수라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거나 아니면 정신병자 혹은 그보다 더 문제가 많은 사람이다. 우리는 그를 미쳤다고 입을 다물게 하고, 침을 뱉고, 혹은 그를 죽여버릴 수가 있다. 아니면 그의 발에 엎드려 그를 주님 혹은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잘봐주는 척 하면서 예수가 위대한 스승이라고 하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은 말을 해서는 안된다. 예수는 그런 선택권을 남겨주지 않았다. 그는 절대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예수의 말을 기록한 것이 성경이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의 모습이 후세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발견된 기록의 양과 발견시기를 생각하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이 초기 기독교(예수의 죽음 이후 2~30년 내외)의 기록과 거의 같다는 주장에 더 설득력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디. 성경이 제대로 보존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 집중적으로 파고 들 생각이다.

어쨋든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발언을 놓고 보면 다음의 사실들을 알 수 있다.

1.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했다. 베드로와의 대화, "나를 부인하는 자는 아버지를 부인하는 자"라는 발언, 대제사장앞에서 심판 받을 때의 발언, 당시 유대사회에서 하나님을 '아바'라 불렀다는 점등, 예수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했다는 증거는 복음서에 널려 있다.

2.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생각했다. 바리새인들과의 대화중 하나님에게만 쓸 수 있는 표현인 "I AM"이라는 말로 자신을 표현한점, 하나님만이 할 수있다고 여겨졌던 "죄를 용서한다"고 말한점등, 예수는 분명히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생각했다.

3. 예수는 자신만이 구원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요한복음의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이라는 표현, 사마리아 여인에게 자신이 구원의 근원임을 이야기한점, 자신의 죽음이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라는 확실한 정체성의 확립등, 예수는 자신이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왔음을 확실히 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이런 발언을 지금 세상에서 했다고 가정해보자. 예를 들어 평판이 좋은 사회운동가가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은 자신의 측근들과 힘을 모아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아주고, 부패한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를 주며, 타락한 권력층을 비판을 한다. 참으로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가끔 가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하나님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라고 이야기한다면.... 그래도 이 사람을 세상에 도움을 주는 도덕적 스승으로 모실 것인가? 아니면 사회운동가? 성인중의 하나... 넌센스다.

나는 아직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지, 아니면 정신병자인지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둘 이외의 다른 선택은 없다. 예수에게 굴복하던지 아니면 완전히 무시하던지.

예수를 좋은 말 몇마디한 성인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넌센스도 없고, 예수를 구세주라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교회 생활하는 것만큼 인생의 낭비도 없다.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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