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하나님이 있다면 세상에 왜 고통이 있을까?"

첫번째 질문이면서,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도록 만드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서 일단 "믿음사건: The Case for Faith"의 해당 내용을 읽었다. 질문에 대해 충분히 동감하면서,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곰곰히 되새기면서 읽었다.

그 대답은 어떻게 보면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인 것 같다. 하나님은 선하다, 고로 악을 미워한다. 하나님은 전능하다, 고로 악을 없앨 수 있다. 하나님은 전지하다, 고로 어느것이 좋은 것인지 안다. 이 세가지를 생각한다면 논리적 결론은 "이 세상에 악이 있을 수는 없다"이다. 하지만 악은 있다!! 세상에 고통은 있다!!

아직 나는 "무조건 믿고 맡겨라"는 용납 못하겠다. 우리의 이성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므로 다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에도 찬성할 수 없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일관적인 메시지가 있다면, 일관적인 설명이 있다면 그건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고통의 문제, 악의 문제를 말할 때 항상 등장하는 것이 자유의지이다. 인간을 로봇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차라리 나을 로봇으로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고민 안하게. 그냥 딱 정해진 방향으로만 살아가게. 불행하게도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선택할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 의지를 사용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선택'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우리에게 좋을 것이 될 수 있기에 고통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이해못할 말은 아니다. 맨날 나를 보면 생긋 웃고 있는 강아지 인형보다는, 가끔은 짖기도 하는 진짜 강아지의 사랑이 더 가치있을 것이다. 밥만 주면 좋아라 하며 꼬리치는 강아지보다는, 맛나게 차려줘도 불평하는 딸아이의 사랑이 더 고귀한 것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악'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놔두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을 선택하기를 기대하고 기다린다... 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고통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건 사실 납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독교인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오늘의 나쁜 것이 내일의 좋은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이 개입한다는 것이다. 이건 이성의 문제는 아니다. 이건 체험의 문제이다. 이런 전제하에 예수의 사건은 최대한의 고통이 결국에는 좋은 것을 이룬 증거이다. 고통당하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 당시는 완전한 패배였지만, 그 패배가 있었기에 결국 그의 목적을 이룬 것이다.

흥미로운 주장이 있다. 고통당하는 이들을 보고 "하나님은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통의 외부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고통 당하는 이들은 더 신을 찾게 되고, 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아무일 없이 편안할 때보다, 힘들고 어려울 때 더 신앙이 좋아진 것 같다. 우리 집만 해도 아버지 사업이 망한 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으니까.

"그거야 힘드니까 의지하는 것을 찾을려고 하는 거잖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신이 있다면 인간의 고통을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의 예는 참 많이 보인다. 고통의 상황에서 인간은 정반대의 선택을 할 수가 있다. 어떤 이는 신을 부정하고, 어떤 이는 신을 발견한다. 자유의지가 있기에 인간은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고통의 상황에서 인간은 신에 대해 더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예수는 많은 고통을 받았다.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버림을 받았고, 그를 왕으로 삼겠다고 떠받들던 백성들은 그를 못박으라 외쳤다. 매맏고, 찢겨지고, 십자가에 못박히며, 하나님과의 단절까지 경험했다. 유태인 수용소에 같혔던 코리텐붐의 말대로 "우리 상황이 아무리 어둡다 한들, 그는 더 어두운 곳에 있다". 그가 고통을 당했기에 하나님이 인간을 고통 가운데 그대로 내어버려 두신 것은 아니다. 인간의 고통에 대한 하나님의 답은 예수이다.

믿겨지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일관적인 납득할만한 설명은 발견했다고 생각한다. 전체에 대한 명백한 답이 주어진 것은 아니지만, 신이 자기 멋대로 인간을 괴롭히는 엉터리 독재자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25년전 한 부부가 있었다. 교회는 다녔지만, 그렇게 열심은 아니였던 남편은 부동산을 일찌기 시작해 열채도 넘는 집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부인이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시골 외진 곳에 갔다가 맹장이 터졌다. 그런데 시골 의사가 오진을 해서 약을 잘못주어 결국 맹장이 썩게 되었는데도 이를 며칠간 내버려 두었다. 큰 병원으로 옮겼지만 이미 내장은 망가질데로 망가진 상태였고, 수송 도중 실제로 숨이 잠깐 멈추었다 다시 회복되기까지 했다.

육개월 동안 입원해 있으면서 그동안 벌어놓았던 재산을 다 날렸음에도 남편은 부인이 살아났음에 감사하며 정말로 열심인 신앙인이 되었다. 그로부터 25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기도를 다니며, 정말 성실하게 직장생활과 신앙생활을 했다. 그리고 전재산이라 할 수 있는 농원을 선교사업에 쓰게 해달라고 하나님에게 드렸다. 자신은 너무나도 검소한 생활을 하시면서.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이야기다. 고통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 고통을 통해 인간이 성장하고 더 성숙해질 수 있다는 것의 증거는 사실 내 바로 옆에 있다. 장인 장모의 인자함과 열심, 성숙함에는 언제나 고개가 숙여진다. 그 분들 보면 이 말이 맞는 것 같다.

"인간의 고통을 보면서 신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고통에 동참하지 않는 자다.
그 고통을 당하는 사람, 그 고통에 동참하는 사람은 오히려 신에 가까와진다".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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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번 언급했듯이 찰스템플턴이 자신의 신앙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먹을 것이 없어 죽은 아이를 안고 고통하는 한 여인의 사진을 보았을 때였다. 실제 아직도 아프리카에서는 하루에 만이천명의 아이들이 먹을 것이 없거나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간다고 한다. 기운이 하나도 남지 않아 온 얼굴에 붙어 있는 파리떼를 쫓지 못하는 아이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얼마나 마음 아픈 모습인지.

그 뿐인가. 세상 곳곳에서 전쟁과 가난으로 목숨을 잃거나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환경이 좋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술취한 운전사에 의해 한순간에 아버지를 잃어버린 가정. 유괴범에 의해 소중한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 신앙생활 열심히 하던 착한 아들을 전쟁터에서 잃어버린 윤상병의 경우는 어떤가. 그들의 신앙이 부족해서 생긴 일일까?

이성적으로 따졌을 때, 세상의 고통과 사랑의 하나님을 연결시키기는 참 어렵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면서 인간의 고통을 그대로 놔둔다면 선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세상에 자식을 사랑한다 하면서 죽어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고 있을 부모는 없기 때문이다. 가끔 아이들이 힘들어도 가르치기 위해서 그냥 놔두는 부모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힘든 것과 죽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다른 각도로 선하기에 인간을 위해 좋은 일을 해주기 원하더라도, 해줄 수 없다면 전능한 하나님이 아니다. 마치 선한 신과 악한 신이 있어 악한 신이 인간을 괴롭혀도, 선한 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제한되어 있는, 힘이 딸리는 그런 식의 신화가 되어버린다.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의지할 수 있는가?

세상의 적지 않은 재앙이 사람으로 인해 생긴 것들이다. 하지만 큰 재앙을 가지고 오는 지진이나 가뭄, 폭풍, 전염병등은 사람의 잘못으로 생긴 것은 아니다. 사람은 그런 것들을 콘트롤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 누군가? 그건 신이 아닌가?
 
첫번째 질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누구나 한번은 느껴봤을 질문. 아픔을 겪었거나, 주위의 고통을 보았던 사람이라면 "도데체 하나님이 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질문 한 번은 다 해보지 않았을까?  

사랑의 하나님이 있다면 어떻게 세상에 고통이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을 것 같다.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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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년간 간직하고 있던 신념에 대한 질문을 시작하며...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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