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눈 기억이 있다. "세상 모든 종교가 다 사람을 사랑하라고 하고,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라고 말을 한다. 내가 보기에는 다 거기서 거기다". 나는 이렇게 말을 했다. "그건 구원이라는 것을 배제하고 봤을 때이다. 종교에 구원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구원의 문제에 관한한 모든 종교는 다 다른 것이다".

정말 그렇다. 종교마다 제시하는 궁극적인 목표나 구원의 방법은 다 다르다. 어느 종교든지 구원의 방법에 관한한 폐쇠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경우는, 예수의 경우는 다르다. 기독교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이라는 명시적인 선언 때문일 것이다. 예수는 자신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것이 진리라고 믿는다. 종교마다 각각 다른 구원의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의 종교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과연 그런가? 예수 이외에 다른 길은 없는 것인가?

우리는 겸손을 미덕으로 삼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자기가 회사에서 가장 일을 잘하고, 또 자신이 높은 자리와 높은 연봉을 받아 마땅하다고 지속적으로 주장을 한다면. 설사 그 사람이 능력이 많다고 하더라도 심정적으로 거부감이 느껴질 것이다. 하물며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구원의 문제에서 기독교처럼 "예수만이 유일한 길이다. 그를 믿지 않는자는 다 지옥에 떨어진다"라고 말한다면 일단 반감부터 생길 수 밖에 없다.

이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중에 제일 큰 이유는 그 주장이 독선적으로 들린다는 것과 또 공평하지 않게 여겨진다는 것이다.

절대로 '절대'라는 말을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Never say 'never')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이다. 특히 현대사회처럼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예수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말이 쉽게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흔히 사용하는 비유가 있다. 산정상에 올라가는 길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가 있다. 어떤 이는 사람들이 닦아놓은 등산로를 통해서 올라갈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암벽을 등반해서 어렵게 올라갈 수도 있다. 하다못해 헬리콥터를 타고 산 정상으로 날아오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구원'이라는 종교의 궁극적인 경지에 이르는 방법도 종교마다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평성의 문제 또한 답이 필요하다. 예수를 모르고 살았던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또한 세상에는 아직도 예수가 전달되지 않은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들은 그럼 자동적으로 지옥에 간다는 것인가? 윤리적인 측면은 어떠한가? 간디와 같이 누가 봐도 숭고한 삶을 산 사람이 예수를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갔다고 하는데, 세상에 대한 적대감 하나로 17명을 죽인 김대두 같은 사람이 죽기 직전에 회개하고 천국에 갔다고 한다면 뭔가 불공평한 것 아닌가?

요즘 같은 세상에 정말 예수만이 답인가? 다른 곳에서도 구원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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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하나님이 있다면 세상에 왜 고통이 있을까?"

첫번째 질문이면서,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도록 만드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서 일단 "믿음사건: The Case for Faith"의 해당 내용을 읽었다. 질문에 대해 충분히 동감하면서,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곰곰히 되새기면서 읽었다.

그 대답은 어떻게 보면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인 것 같다. 하나님은 선하다, 고로 악을 미워한다. 하나님은 전능하다, 고로 악을 없앨 수 있다. 하나님은 전지하다, 고로 어느것이 좋은 것인지 안다. 이 세가지를 생각한다면 논리적 결론은 "이 세상에 악이 있을 수는 없다"이다. 하지만 악은 있다!! 세상에 고통은 있다!!

아직 나는 "무조건 믿고 맡겨라"는 용납 못하겠다. 우리의 이성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므로 다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에도 찬성할 수 없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일관적인 메시지가 있다면, 일관적인 설명이 있다면 그건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고통의 문제, 악의 문제를 말할 때 항상 등장하는 것이 자유의지이다. 인간을 로봇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차라리 나을 로봇으로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고민 안하게. 그냥 딱 정해진 방향으로만 살아가게. 불행하게도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선택할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 의지를 사용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선택'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우리에게 좋을 것이 될 수 있기에 고통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이해못할 말은 아니다. 맨날 나를 보면 생긋 웃고 있는 강아지 인형보다는, 가끔은 짖기도 하는 진짜 강아지의 사랑이 더 가치있을 것이다. 밥만 주면 좋아라 하며 꼬리치는 강아지보다는, 맛나게 차려줘도 불평하는 딸아이의 사랑이 더 고귀한 것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악'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놔두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을 선택하기를 기대하고 기다린다... 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고통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건 사실 납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독교인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오늘의 나쁜 것이 내일의 좋은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이 개입한다는 것이다. 이건 이성의 문제는 아니다. 이건 체험의 문제이다. 이런 전제하에 예수의 사건은 최대한의 고통이 결국에는 좋은 것을 이룬 증거이다. 고통당하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 당시는 완전한 패배였지만, 그 패배가 있었기에 결국 그의 목적을 이룬 것이다.

흥미로운 주장이 있다. 고통당하는 이들을 보고 "하나님은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통의 외부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고통 당하는 이들은 더 신을 찾게 되고, 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아무일 없이 편안할 때보다, 힘들고 어려울 때 더 신앙이 좋아진 것 같다. 우리 집만 해도 아버지 사업이 망한 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으니까.

"그거야 힘드니까 의지하는 것을 찾을려고 하는 거잖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신이 있다면 인간의 고통을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의 예는 참 많이 보인다. 고통의 상황에서 인간은 정반대의 선택을 할 수가 있다. 어떤 이는 신을 부정하고, 어떤 이는 신을 발견한다. 자유의지가 있기에 인간은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고통의 상황에서 인간은 신에 대해 더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예수는 많은 고통을 받았다.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버림을 받았고, 그를 왕으로 삼겠다고 떠받들던 백성들은 그를 못박으라 외쳤다. 매맏고, 찢겨지고, 십자가에 못박히며, 하나님과의 단절까지 경험했다. 유태인 수용소에 같혔던 코리텐붐의 말대로 "우리 상황이 아무리 어둡다 한들, 그는 더 어두운 곳에 있다". 그가 고통을 당했기에 하나님이 인간을 고통 가운데 그대로 내어버려 두신 것은 아니다. 인간의 고통에 대한 하나님의 답은 예수이다.

믿겨지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일관적인 납득할만한 설명은 발견했다고 생각한다. 전체에 대한 명백한 답이 주어진 것은 아니지만, 신이 자기 멋대로 인간을 괴롭히는 엉터리 독재자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25년전 한 부부가 있었다. 교회는 다녔지만, 그렇게 열심은 아니였던 남편은 부동산을 일찌기 시작해 열채도 넘는 집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부인이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시골 외진 곳에 갔다가 맹장이 터졌다. 그런데 시골 의사가 오진을 해서 약을 잘못주어 결국 맹장이 썩게 되었는데도 이를 며칠간 내버려 두었다. 큰 병원으로 옮겼지만 이미 내장은 망가질데로 망가진 상태였고, 수송 도중 실제로 숨이 잠깐 멈추었다 다시 회복되기까지 했다.

육개월 동안 입원해 있으면서 그동안 벌어놓았던 재산을 다 날렸음에도 남편은 부인이 살아났음에 감사하며 정말로 열심인 신앙인이 되었다. 그로부터 25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기도를 다니며, 정말 성실하게 직장생활과 신앙생활을 했다. 그리고 전재산이라 할 수 있는 농원을 선교사업에 쓰게 해달라고 하나님에게 드렸다. 자신은 너무나도 검소한 생활을 하시면서.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이야기다. 고통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 고통을 통해 인간이 성장하고 더 성숙해질 수 있다는 것의 증거는 사실 내 바로 옆에 있다. 장인 장모의 인자함과 열심, 성숙함에는 언제나 고개가 숙여진다. 그 분들 보면 이 말이 맞는 것 같다.

"인간의 고통을 보면서 신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고통에 동참하지 않는 자다.
그 고통을 당하는 사람, 그 고통에 동참하는 사람은 오히려 신에 가까와진다".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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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읽은 책에 대해 교회 사람들에게 소개할 목적으로 쓴 글이다. 이 책을 읽고 내 신앙을 점검하며 그전에 질문하지 않았던 기독교의 이해 되지 않고 모순된 점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점검하기 시작하게 되었으니 참 아이러니 한 일이다.

개인적으로 정말 기독교를 알고 기독교를 비판할려면 이 정도의 지식을 조사해보고 반박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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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시대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는 이천년이라는 시간이 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이 이천년전 실제로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을까? 그 시간동안 후세 교회들이 자신들을 위해 성경을 바꾸었다는 의심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고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지금의 기독교는 전설과 다른 종교들의 혼합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정말 우리가 믿는 것이 예수가 이야기한것과 같은 것인가? 누구는 예수가 한번도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데...

부활이 정말 있었을까? 예수는 실제 죽은 것이 아닌데 사람들이 잘못 알고 무덤에 옮긴 것은 아닐까? 유대 사람들의 주장대로 예수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친 것은 아닐끼? 우리가 부활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자신들의 신념을 위해 사실을 왜곡한 것이 아니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자신에게 해보거나 아니면 들어봤을 만한 질문들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전통적인 가치관은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세상에서는 더 많은 질문을 하게 된다. 기독교에서는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많은 경우 논리보다는 믿음으로 대응하는 것을 보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게 접근한다. 그런 질문들에 대해 논리와 이성을 사용해서 답을 한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기독교는 "불타는 감성위의 이성 (Logic on the fire)"이라고. 기독교가 논리적이 아니라는 세상의 관점에 대해 이 책은 오히려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기 위해서는 더 큰 믿음이 필요하다고 논리적으로 반박한다.

이 책을 쓴 리 스트로벨은 예일법대 출신으로 시카고 트리뷴의 법조 담당 편집장을 지냈던 사람이다. 무신론자였던 리는 부인인 레슬리가 기독교인이 되면서 그녀의 변화된 모습을 보았다. 처음에 걱정을 했지만 그녀의 신실한 모습에 기독교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하게되었다. 스스로 이년 가까이 자신이 훈련받았던 법적인 지식과 분석 방법을 사용해서 예수에 대해 질문을 던졌고, 예수를 믿을 수 밖에 없다는 논리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이 책은 본인의 영적인 여정을 참고 삼아 열네개의 질문에 대해 그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가 그들과 지적인 토론을 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열네개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 예수의 생애를 담은 복음은 믿을만한가?
- 복음이 지금까지 변형없이 보존되었다고 믿을만 한가?
- 복음서 이외에 예수의 생애를 담은 참조자료가 있는가?
- 고고학은 복음서의 내용에 일치하는가 혹은 그 내용을 부정하는가?
- 예수님의 기록은 그의 신앙과 일치하는가?
- 예수는 진정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었는가?
- 예수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했을때 그의 정신상태는 신뢰할만 했는가?
- 예수는 하나님의 속성을 만족하는가?
- 예수는, 그리고 예수만이 메시야의 조건을 만족하는가?
-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죽었는가?
- 예수는 진정 그의 무덤에서 사라졌는가?
- 예수는 그의 죽음이후 사람들에게 보여졌는가?
- 그 밖에 부활을 증명할만한 다른 증거들이 있는가?

각 질문별로 그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서 인터뷰하는 내용을 담았다.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서 결과만 담은 것이 아니라 마치 잡지의 인터뷰 기사처럼 당시의 분위기를 생생히 전달하는 방법으로 기술이 되어 있어 매우 흥미로왔다.

각 질문별로 자세하게 증거자료를 제시하기에 평소 가졌던 질문, 혹은 불신자들이 해올 질문들에 대해 보다 자신있게 답할 수 있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 내용을 다 담을 수는 없고 개인적으로 강하게 다가왔던 내용들을 몇가지 이야기해보겠다.

- 성경의 내용을 담은 사본들과 고고학적 자료들은 다른 어떤 고대문서보다 월등히 많고 초기자료는 예수의 공생애 이후 2~30년내에 작성되어진 것으로 믿어진다. 따라서 기독교 외부에서 주장하듯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의 모습이 후세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
- 예수는 분명히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이야기하였다. 또한 심리학적으로 그 말을 할 때의 그는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현명하며 안정되었다. 즉 예수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분명히 알고 계셨다.
-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의학적인 지식과 역사적인 지식을 동원해서 예수가 어떻게 고난을 당하셨고 돌아가셨는가가 자세히 저술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면서 예수는 왜 그렇게 고통을 감수하였나 생각했다.
- 유태인이였던 라피데스 목사는 자신이 영적 방황끝에 예수가 자신이 어릴 때부터 봐왔던 구약에서 말하는 메시야임을 알고 예수를 영접하였다. 그 자세한 과정을 통해 예수를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을 알 수 있다.
- 예수의 제자들은 부활이 사실인지 아니면 거짓인지 분명히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랬던 그들이 모두 자신의 목숨을 바쳐 부활한 예수를 전하였다. 세상의 누가 거짓을 위해 그렇게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었을까? 개인적으로 이 사실이 부활의 가장 강력한 증거가 아닐까 생각한다.

신앙이란 100% 이성으로 설명되어질 수는 없는 것이고 이해가 되어지지 않는 부분은 빌리그래함 목사가 그랬듯이 결국 믿음으로 굴복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성을 주신 이상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증명되는 부분들을 알게 된다면 더 믿음이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저자인 리 스트로벨은 인터뷰한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이 그들의 신앙을 더 강하게 만들었는가? 모두가 다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 참고로 이책의 10대용판도 있다. 자녀들의 신앙을 위해서 미리 읽게 해주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될 거라 생각한다..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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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 대한 비판중에 가장 큰 항목이라면 기독교의 배타성일거다. 나는 기독교가 정말 배타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독교의 교리를 보면 배타적일 수 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에 대한 배타성은 나중에 다시 한번 적어보고 싶고, 오늘은 예수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기독교를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간중에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한사람이 예수라는 것에는 부정하지 않을 것 같다. 예수의 전기라 할 수 있는 사복음서 공통적으로 예수의 공생애(공적으로 활동한 기간)를 삼년이라고 한다. 30살부터 33살. 마흔이 된 내가 돌아보면 설흔 즈음의 나는 아직도 파릇파릇하고 ^^ 철이 없었던 나이였다. 그런 적은 나이에 고작 3년,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나라의 변방에서 주로 활동했던 한 사람이 이후 이천년 동안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 어찌 보면 기적의 하나라고 생각이 든다.

예수에 대한 해석도 참 많다. 이천년전의 인물이고 또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모습이 제한적인 시각만을 보여주다 보니, 예수라는 한 인물을 총체적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은 사실 없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이는 구세주로, 어떤 이는 혁명가로, 어떤 이는 현자 중의 하나로, 예수에 대한 해석도 다 제각각이다. 인간이다 아니다, 신이다 아니다, 결혼을 했다 안했다, 사생아다 아니다... 세상의 어느 누구가 이렇게 다양한 면에서 다양하게 해석되어지는 인물이 있을까?

소위 기독교인들이 강조하는 몇가지 기본적인 교리가 있다. 기독교안에 많은 교파들이 있으면서도 어떤 파는 이단이다, 어떤 파는 이단이 아니다라고 판단하는 근거가 이 몇가지 교리를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그 중에 예수에 대한 교리라 한다면 1) 예수의 동정녀 탄생 2) 예수의 신성과 인성 3) 예수의 죽음 4) 예수의 부활 5) 예수의 승천및 재림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근본적인 교리를 보면 예수는 분명 보통의 사람과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

하지만 그런 시각을 배타적이라고 생각하고 예수를 다시 해석해야한다는 주장은 끊임없이 계속 되어왔다. 뭐 그리 배타적으로 해석할 필요 있냐? 예수라는 인물을 아예 무시하지는 않지만 신이라는 것은 좀 믿기 힘들지 않냐? 그냥 좋은 교훈을 제공하는 현자의 하나로 해석을 하자... 라는 주장이다.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는 싫어하지만 예수는 좋아하기도 한다. 그뿐인가. 정통 교회라는 곳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교회 왜 다니냐고? 그냥 좋은 말씀 듣고 나면 사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보기에 교인들중 30%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쩌면 더 될 수도 있고.

합리주의와 인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예수를 인간의 이성을 사용해서 재해석하는 것일 수도 있고, 어찌 보면 좋은게 좋은 거라고 하는 관점일 수도 있다. 또 기독교의 배타성으로 인한 폐해를 보면서 제시하는 합리적인 절충안일 수도 있다. 모든 종교가 다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예수의 가르침도 사랑하라는 것이니, 그냥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좋은 이야기 중의 하나로 여기자는 생각이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예수에 대해서는 모 아니면 도다. 결론부터 말하면 예수는 미친 사람이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이다. C.S. 루이스라는 크리스찬 지성인 (이런 표현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이 자주 말하는 정말 멍청한 말이 있다. 난 그 말이 다시는 안나왔으면 좋겠다. "나는 예수를 위대한 도덕적인 선생으로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 하지만 그를 하나님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 이 말은 정말 말이 안되는 말이다. 만약 그저 인간이기만 한 어떤 사람이 예수가 한 거와 같은 말을 한다면 그는 도덕적 선생이 될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는 미쳤거나... 아니면 지옥의 악마정도 될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선택을 해야한다. 이 예수라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거나 아니면 정신병자 혹은 그보다 더 문제가 많은 사람이다. 우리는 그를 미쳤다고 입을 다물게 하고, 침을 뱉고, 혹은 그를 죽여버릴 수가 있다. 아니면 그의 발에 엎드려 그를 주님 혹은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잘봐주는 척 하면서 예수가 위대한 스승이라고 하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은 말을 해서는 안된다. 예수는 그런 선택권을 남겨주지 않았다. 그는 절대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예수의 말을 기록한 것이 성경이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의 모습이 후세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발견된 기록의 양과 발견시기를 생각하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이 초기 기독교(예수의 죽음 이후 2~30년 내외)의 기록과 거의 같다는 주장에 더 설득력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디. 성경이 제대로 보존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 집중적으로 파고 들 생각이다.

어쨋든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발언을 놓고 보면 다음의 사실들을 알 수 있다.

1.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했다. 베드로와의 대화, "나를 부인하는 자는 아버지를 부인하는 자"라는 발언, 대제사장앞에서 심판 받을 때의 발언, 당시 유대사회에서 하나님을 '아바'라 불렀다는 점등, 예수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했다는 증거는 복음서에 널려 있다.

2.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생각했다. 바리새인들과의 대화중 하나님에게만 쓸 수 있는 표현인 "I AM"이라는 말로 자신을 표현한점, 하나님만이 할 수있다고 여겨졌던 "죄를 용서한다"고 말한점등, 예수는 분명히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생각했다.

3. 예수는 자신만이 구원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요한복음의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이라는 표현, 사마리아 여인에게 자신이 구원의 근원임을 이야기한점, 자신의 죽음이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라는 확실한 정체성의 확립등, 예수는 자신이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왔음을 확실히 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이런 발언을 지금 세상에서 했다고 가정해보자. 예를 들어 평판이 좋은 사회운동가가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은 자신의 측근들과 힘을 모아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아주고, 부패한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를 주며, 타락한 권력층을 비판을 한다. 참으로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가끔 가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하나님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라고 이야기한다면.... 그래도 이 사람을 세상에 도움을 주는 도덕적 스승으로 모실 것인가? 아니면 사회운동가? 성인중의 하나... 넌센스다.

나는 아직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지, 아니면 정신병자인지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둘 이외의 다른 선택은 없다. 예수에게 굴복하던지 아니면 완전히 무시하던지.

예수를 좋은 말 몇마디한 성인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넌센스도 없고, 예수를 구세주라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교회 생활하는 것만큼 인생의 낭비도 없다.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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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년간 간직하고 있던 신념에 대한 질문을 시작하며...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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