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번 언급했듯이 찰스템플턴이 자신의 신앙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먹을 것이 없어 죽은 아이를 안고 고통하는 한 여인의 사진을 보았을 때였다. 실제 아직도 아프리카에서는 하루에 만이천명의 아이들이 먹을 것이 없거나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간다고 한다. 기운이 하나도 남지 않아 온 얼굴에 붙어 있는 파리떼를 쫓지 못하는 아이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얼마나 마음 아픈 모습인지.

그 뿐인가. 세상 곳곳에서 전쟁과 가난으로 목숨을 잃거나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환경이 좋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술취한 운전사에 의해 한순간에 아버지를 잃어버린 가정. 유괴범에 의해 소중한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 신앙생활 열심히 하던 착한 아들을 전쟁터에서 잃어버린 윤상병의 경우는 어떤가. 그들의 신앙이 부족해서 생긴 일일까?

이성적으로 따졌을 때, 세상의 고통과 사랑의 하나님을 연결시키기는 참 어렵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면서 인간의 고통을 그대로 놔둔다면 선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세상에 자식을 사랑한다 하면서 죽어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고 있을 부모는 없기 때문이다. 가끔 아이들이 힘들어도 가르치기 위해서 그냥 놔두는 부모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힘든 것과 죽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다른 각도로 선하기에 인간을 위해 좋은 일을 해주기 원하더라도, 해줄 수 없다면 전능한 하나님이 아니다. 마치 선한 신과 악한 신이 있어 악한 신이 인간을 괴롭혀도, 선한 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제한되어 있는, 힘이 딸리는 그런 식의 신화가 되어버린다.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의지할 수 있는가?

세상의 적지 않은 재앙이 사람으로 인해 생긴 것들이다. 하지만 큰 재앙을 가지고 오는 지진이나 가뭄, 폭풍, 전염병등은 사람의 잘못으로 생긴 것은 아니다. 사람은 그런 것들을 콘트롤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 누군가? 그건 신이 아닌가?
 
첫번째 질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누구나 한번은 느껴봤을 질문. 아픔을 겪었거나, 주위의 고통을 보았던 사람이라면 "도데체 하나님이 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질문 한 번은 다 해보지 않았을까?  

사랑의 하나님이 있다면 어떻게 세상에 고통이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을 것 같다.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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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년간 간직하고 있던 신념에 대한 질문을 시작하며...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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