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대표적인 무신론자중의 하나로 알려진 David Mills의 책으로 현재 무신론에 관한 책중 가장 많이 팔려지는 책이다 (Amazon 기준). 그리고 이 책을 추천한 사람은 또한명의 대표적인 무신론자인 칼 사강(Cosoms의 저자)의 아들인 Dorion Sagan이다. 쉽게 말해 무신론에 관한한 정통파이며 무신론의 바이블 ^^ 이라 할 수 있다. 밀스의 말에 의하면 그는 아홉살때에 예수를 영접했고 고등학교까지는 신실한 신자였다고 한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전도를 하다가 한 친구가 기독교 신앙이 사실이라는 증거를 제시하면 믿겠다는 말을 듣고 스스로 증거를 찾아나섰단다. 하지만 무신론자 친구를 설득하기 위해 스스로 증거를 찾을수록, 신앙을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 신이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려고 했던 그 당시의 창조과학 서적들은 다 논리적 모순에 빠져 있었고 이성적으로 납득하기가 힘들었다. 신앙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된 그는, 결국 과학이 성경에 반대되는 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무신론으로 돌아섰다. 나사(NASA)의 우주왕복선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저널리스트로서의 경력이 더욱 더 과학을 신앙보다 우선하도록 만들었을 것 같다.

무신론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이 책은 거의 모든 지면을 기독교 신앙에 반대하는 것에 할애하고 있다. "기독교 교리에 대한 생각하는 사람들의 대답"이라는 부제가 말하듯이 이 책은 기독교에 대해 상당히 도발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말하는 논점들이 꼭 기독교에만 대응하는 것은 아니며, 모든 종교에 반하는 무신론적 주장이다. 이전에 읽었던 찰스템플턴의 책-(Farewell to God)에 비하면 이 책은 훨씬 잘 쓰여져 있다. 논리적이다. 템플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내 신앙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던 것에 비해서 이 책은 충분히 나의 신앙을 흔들어 놓고 남음이 있다. 영어식 표현으로 하면 "He Got Me"이다. 앞으로 오랜 동안 나는 밀스가 내어놓은 질문들과 씨름할 것 같다.

이 책은 인터뷰와 다섯개의 큰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에 나오는 인터뷰는 왜 그가 무신론자가 되었는지, 왜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기독교는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지 안되는지 등등 그의 주장들을 전반적으로 담고 있다. 그 내용들을 뒤에서 자세하게 서술하는데, 첫번째 주제는 왜 우주의 탄생을 설명하는데 신이 필요하지 않은가이다. 두번째는 진화의 증거들이 창조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내용이다. 세번째는 기적에 대한 반응에 대한 것이고, 네번째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지옥을 만들었을 것이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등장하는 Intelligent Design (ID)에 대한 그의 반론이다. 이외에 인터넷에서 포르노를 못보게 하는 법안에 대한 그의 생각과 미국이 기독교 사상에 기초한 국가가 아니라는 주장을 담았는데, 이 내용들은 차라리 안들어가는게 낳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기독교라고 표기한 부분은 전반적인 그리스도에 근거한 신앙을 말한다. 이책에서 이야기하는 기독 종교는 개신교와 천주교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우주의 기원 - 신이 필요한가?]

우주의 기원에 대해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모든 것에는 근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13세기에 토마스 아퀴나스가 주장한 것이며, 이후 물리 법칙중 하나인 "작용-반작용"의 법칙과 합쳐져서 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듯이, 근본적으로 우주도 그 원인이 되는 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주장은 꼭 종교적인 주장이라기 보다, 누구나 한번쯤은 질문을 해봤을 내용이다. 세상은 도데체 어떻게 시작이 되었을까? 저절로 아무 이유없이 되었다고 한다면 아무래도 잘 납득이 안가게 된다.

이에 대해 밀스는 두가지 이유를 들어 "작용-반작용의 법칙"이 신의 필요를 증명한다는 주장에 반대를 한다. 첫째, 과학의 법칙은 일반적인 것이지 그것이 항상 그렇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법칙은 현상에 대한 인간의 해석이지, 그 자체가 원인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법칙만 있다고 해서 과학은 아니다. 과학이라 말할 수 있으려면 법칙을 기반으로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해 설명을 할 수가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인들이 우주의 시작에는 원인이 있어야 하며 그 원인은 신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과학의 법칙을 잘못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밀스는 다른 과학의 법칙을 들고 나온다. 그것은 "질량-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다. 그 법칙은 질량과 에너지는 상호 변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명한 아인쉬타인의 E=MC2가 이 법칙을 위한 공식이다. 빅뱅이론에 따르면 우주의 생성이전에는 시간도 공간도 없었다. 즉 질량이라 할만한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밀스는 "질량-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따라 이전에는 에너지가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을 한다. 실제로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에너지가 있을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이런 "질량-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잘못되었다는 증거가 있지 않는한, 우주는 무한한 예전부터 있어왔고, 이후에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형태만 변할 뿐이다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런데 이런 그의 주장을 찬찬히 보면 그가 자신이 말했던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용-반작용"이 현상에 대한 인간의 해석이듯, "질량-에너지 보존"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해석이다. 둘다 그에 반하는 증거가 없다. 그리고 기독교에서 "작용-반작용"이라는 법칙만 주장하지 그 중간을 메워주는 설명을 집어넣지 못한다고 비판했는데, 마찬가지로 그도 질량-에너지는 계속 보존될 것이라는 주장만 하지 그 법칙이 우주의 탄생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빅뱅이 에너지뿐이였던 우주를 현재의 우주로 변환시켰다면, 그 원인이 되는 빅뱅의 시작에 대해서는 설명을 못하고 있다.

따라서 "질량-에너지 보존"에 대한 그의 확고한 신념(한 백번은 나온 것 같다 ^^)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대로 "우주 탄생에 신이 필요없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그의 주장은 수긍하기 어렵다. 우주의 기원에 대한 비합리적이지 않은 무신론적 주장이 하나 있다라는게 내가 받은 인상이다.

[간격의 하나님 (God of Gaps)]

우주의 기원에 대한 논쟁에 더불어 그는 간격의 하나님을 언급을 한다. 이전에는 인간들이 자연현상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신을 들어 설명하려 하였지만, 과학과 이성이 발달하면서 신이 필요한 부분은 갈수록 줄어들었고 이런 현상은 앞으로 갈수록 줄어들게 될 것이다라는 것이다. 인간이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 잘 모르기에 신을 들어 설명을 했지만 언젠가는 명확한 과학적인 설명이 생길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간격의 하나님식의 접근방법에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 역사속에서 기독교와 천주교는 많은 잘못을 저질렀고, 또 지금도 종교라는 이름으로 과학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종교의 이름으로 과학을 막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과학이라는 아니 넓게 보아 모든 학문이 한가지 주장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100% 맞다고 확신하는 것이 아니다. 증거를 수집하고 계속해서 진리를 찾아나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종교가 진정한 진리라면 과학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나올 것이고, 또 그래야만 믿을만한 가치가 있는 종교일 것이다. 과학에 침범당할 신이라면 그건 벌써 신이 아니니까.

그렇기에 방법이 비인격적이 아닌 이상 과학적인 탐구는 어느 것에서든 종교의 이름으로 제한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진화론 연구를 할 수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진화론을 끝까지 연구해서 신이 정해놓은 한계를 만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해서 신을 발견한다면 그게 신이 정해놓은 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과 종교가 서로 불편해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진정 신이 있다면 진정한 신의 영역은 신의 영역으로 남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모든 간격을 없애는 것도 신이 준 소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진화론 vs. 창조론]

우주의 창조및 생명의 기원에 대한 기독교적 접근 방법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 접근방법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는 것이다. 하나님은 6일동안 이 세상을 만드셨고, 7일째는 쉬셨다. 그때 하루는 말 그대로 24시간인 하루이다. 아담이 언제 셋을 낳았는지도 나오고, 또 계속해서 언제 자손을 낳았는지가 나오므로 이를 계산하면 언제 세상이 창조되었는지 계산할 수 있다. 지금까지 많은 신학자들이 언제 세상이 창조되었는지 이를 기반으로 계산을 했다. 사람마다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대략 6000년 정도로 계산이 된다. 지질학이 발달되기 전까지, 그리고 방사성 탄소연대측정 기술이 나오기 전까지 아무도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과학적인 방법을 계산해서 지구의 나이를 측정하면 지구가 약 45억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누가 맞는 것일까? 전에는 탄소연대측정 방법에 대해서 인정 못하겠다는 주장이 많았다. 그래서 거북이등의 나이를 계산하니 200만년이 나왔다는 등의 과학의 결과를 통째로 못믿겠다는 말들도 기독교계에서 주장된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주장을 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탄소연대측정이 일관적인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대로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한꺼번에 생성되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지층에 나타난 화석들을 보면 일관적으로 초기 생명체부터 더 진화된 생명체로 순서대로 일관되게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연에서 보여지는 증거들은 확실히 진화론의 편이지 창조론의 편이 아니다. 일부 창조과학자들은 지금 발견되는 화석들이 노아의 방주사건 때에 한꺼번에 땅속에 뭍히면서 생긴 것이다라고 주장을 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런 주장은 기독교인인 내가 봐도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어떻게 물에 휩쓸린 생물체들이 차곡 차곡 그것도 지구 전역에 걸쳐서 차례대로 뭍힐 수 있을까? 인간은 위험에 대해 인식을 하고 피하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나중에 뭍혔다고 하지만, 지구상에는 올라갈 산이 없는 평지도 상당하다. 그들이 어떻게 다 산위로 올라갈 수 있을까? 그렇게 따진다면 물 속에서 오래 살 수 있는 어류 종류가 가장 나중에 뭍여야하는 것이 아닐까?

이와 더불어 밀스는 이 책에서 진화론에 반하는 창조론자의 질문들에 대해 하나 하나 반박을 한다. 예를 들어 화석은 순서대로 여러 시기에 발견이 되지만 유독 캄브리안기에 많은 화석이 발견된다. 그래서 이 시기를 창조의 시기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캄브리안기 이전에도 생명체는 발견되었고, 또 캄브리안기에는 아직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는 발견되지 않았다.

중간화석에 대한 진화론자의 반박도 담고 있다. 진화론에서 A에서 B로 종이 변하는 것을 주장하면 창조론자들은 그 중간화석이 어디 있냐고 반박을 해왔다. 이에 대해 밀스는 진화론자들이 A와 B의 중간인 A'를 발견하면 창조론자들이 A와 A', A'와 B의 중간 화석을 요구한다고 불평을 했다. 아무리 합당한 중간화석을 증거로 제시해도 창조론자들은 수긍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경우, 자연에서 보여지는 진화의 증거들을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게 된다.

두번째 접근방법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6일동안 이 세상을 만든 것이 아니고 이 지구도 6000년전에 만든 것이 아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족보는 모든 사람을 담은 것이 아니고 중요한 인물들만 적어놓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밀스는 성경의 표현 - 누구는 얼마를 살았고 몇살에 자식을 낳았다 - 은 누가 봐도 실제적인 족보를 담은 것이라는 점을 들어 이런 주장에 반박한다. 또한 성경의 일부를 과학적인 증거에 밀려 임시적으로 다르게 해석한다면, 즉 성경의 해석이 경우에 따라 달라진다면, 성경의 다른 부분은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바빌론 문명의 기록이 남겨진 최초의 시기가 6000년전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며 결국 성경이 제시한 인류와 지구의 역사에 대한 이해는 바빌론 사람들의 제한적인 이해를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 아니겠느냐는 말을 한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확실히 과학이 밝혀낸 증거들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창조론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창조론에 입각해 진화론을 반박하는 글들을 많이 봤지만, 솔직히 말해 수준의 차이가 너무 난다. 창조론자들의 이야기는 내가 봐도 억지가 많고 진화론자의 이야기는 밝혀진 증거에 의한 담담한 설명을 담고 있다.  진화가 "어떻게" 벌어졌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른 과학자들이 많겠지만 적어도 진화가 "있었다"라는 점에서는 과학자들 사이에 별 이견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런 진화의 증거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부분이 나의 신앙에는 어떠한 영향을 끼칠까? 솔직히 말해 진화대 창조에 있어 내 이성은 진화의 편을 벌써 들고 있다.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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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눈 기억이 있다. "세상 모든 종교가 다 사람을 사랑하라고 하고,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라고 말을 한다. 내가 보기에는 다 거기서 거기다". 나는 이렇게 말을 했다. "그건 구원이라는 것을 배제하고 봤을 때이다. 종교에 구원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구원의 문제에 관한한 모든 종교는 다 다른 것이다".

정말 그렇다. 종교마다 제시하는 궁극적인 목표나 구원의 방법은 다 다르다. 어느 종교든지 구원의 방법에 관한한 폐쇠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경우는, 예수의 경우는 다르다. 기독교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이라는 명시적인 선언 때문일 것이다. 예수는 자신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것이 진리라고 믿는다. 종교마다 각각 다른 구원의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의 종교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과연 그런가? 예수 이외에 다른 길은 없는 것인가?

우리는 겸손을 미덕으로 삼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자기가 회사에서 가장 일을 잘하고, 또 자신이 높은 자리와 높은 연봉을 받아 마땅하다고 지속적으로 주장을 한다면. 설사 그 사람이 능력이 많다고 하더라도 심정적으로 거부감이 느껴질 것이다. 하물며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구원의 문제에서 기독교처럼 "예수만이 유일한 길이다. 그를 믿지 않는자는 다 지옥에 떨어진다"라고 말한다면 일단 반감부터 생길 수 밖에 없다.

이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중에 제일 큰 이유는 그 주장이 독선적으로 들린다는 것과 또 공평하지 않게 여겨진다는 것이다.

절대로 '절대'라는 말을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Never say 'never')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이다. 특히 현대사회처럼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예수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말이 쉽게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흔히 사용하는 비유가 있다. 산정상에 올라가는 길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가 있다. 어떤 이는 사람들이 닦아놓은 등산로를 통해서 올라갈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암벽을 등반해서 어렵게 올라갈 수도 있다. 하다못해 헬리콥터를 타고 산 정상으로 날아오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구원'이라는 종교의 궁극적인 경지에 이르는 방법도 종교마다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평성의 문제 또한 답이 필요하다. 예수를 모르고 살았던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또한 세상에는 아직도 예수가 전달되지 않은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들은 그럼 자동적으로 지옥에 간다는 것인가? 윤리적인 측면은 어떠한가? 간디와 같이 누가 봐도 숭고한 삶을 산 사람이 예수를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갔다고 하는데, 세상에 대한 적대감 하나로 17명을 죽인 김대두 같은 사람이 죽기 직전에 회개하고 천국에 갔다고 한다면 뭔가 불공평한 것 아닌가?

요즘 같은 세상에 정말 예수만이 답인가? 다른 곳에서도 구원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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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존재에 대한 논쟁이 있을 때마다 항상 등장하는 것이 진화론이다. 아니 사실 논쟁을 거는 쪽은 기독교인 쪽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검색엔진에서 "진화론" "증거" 이 두단어를 치고 검색을 하면, 진화론을 증명하는 증거보다, 진화론의 증거를 부정하는 기독교인들의 글이 더 많이 올라와 있다.

근데 진화론을 부정한다는 기독교인들의 글을 보면 너무 천편일률적이다. 어느 글에서나 등장하는 똑같은 논점, 똑같은 주장들. 창조론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론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에서 그치고 있다. 진화론이 틀렸다고 해서 창조론이 곧 옳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창조론을 옹호하여 과학으로 증명한다고 하는 창조과학회에 가보더라도 상황이 더 좋은 것은 아니다. 반쯤은 진화론의 문제점 지적. 나머지 반은 창조론 옹호이지만 많은 글들이 과학이라 부르기에는 부족한 글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창조과학이라고 이름을 거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논리가 일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이는 빅뱅이 사실이 아니라는 증거를 열심히 나열하고, 어떤 이는 빅뱅이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글을 쓰고 있다.

그에 비해 진화론에 관한 학술적인 자료들을 찾아보면 굉장히 체계가 잡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증거자료들과 증거화석들이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창조론 비판에 대한 글만 읽어본 기독교인들은 진화론이 허접한 이론이고 증명되지도 않은 가설을 어거지로 우기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진화론을 공부해보면 꽤나 체계적이고 뒷받침되는 증거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각 가설에 대해 어떤 증거가 나오면 그 가설이 잘못되었다는 것까지도 연구가 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조론과는 명백히 위배되어 보이는 진화론. 그리고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무시할 수 없는 양의 증거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증거들을 신이 없다는 증거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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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보면 많은 기적들이 나온다. 노아의 홍수, 애굽에서의 열가지 재앙, 홍해가 갈라짐, 사막에서의 만나, ... 신약시대로 가서는 예수의 동정녀 탄생, 그리고 예수의 부활까지. 이런 많은 기적들. 인간의 이성으로는 믿기가 굉장히 힘들다.

첫째, 이런 기적들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된다. 노아의 홍수가 생기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가장 높은 산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의 물이 있어야하는데, 그 엄청난 양의 물이 지금은 어디로 갔는가? 노아의 방주만 해도, 하나의 방주 안에 어떻게 모든 동물들을 쌍쌍이 넣을 수 있었을까? 그 먹이는? 그 배설물들은? 예수의 부활에 대해서는 어떤가? 아무도 죽은지 사흘이 지나가서 부활하지 않는다. 잠깐 숨이 끊어졌다 살아나는 이는 있어도, 예수처럼 무덤에 뭍혔다가 살아나는 사람은 없다.

둘째, 이런 기적들이 왜 성경의 시대에만 나타나는가? 지금 세상에는 왜 부활하는 사람이 없는가? 왜 지금 세상에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제물을 태우지는 않는가?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 한번이라도 보여주면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것 같은데 말이다. 간혹 가다 기도해서 병이 낳았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우연이거나 아니면 정신적인 위안에 불과하다. 부흥회에서 은혜받고 암이 낳았다고 좋아하던 사람이 일년 있다가 죽는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셋째, 기독교에서는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도 의문이다. 기도를 해서 기도한데로 되면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고 하고, 그대로 안되면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한다. 그렇다면 기도에 응답해서 인간세상에 개입하신다는 하나님은 어디에 있는가? 이래도 감사, 저래도 감사라면 기도하는 의미가 그럼 무엇인가?

템플턴은 그의 책에서 "이성이 조금만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전설이 동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한다. 이성과 기적, 과학과 기적. 같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생각하는 사람이 기적을 믿는다는 일은 불가능하다.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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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번 언급했듯이 찰스템플턴이 자신의 신앙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먹을 것이 없어 죽은 아이를 안고 고통하는 한 여인의 사진을 보았을 때였다. 실제 아직도 아프리카에서는 하루에 만이천명의 아이들이 먹을 것이 없거나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간다고 한다. 기운이 하나도 남지 않아 온 얼굴에 붙어 있는 파리떼를 쫓지 못하는 아이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얼마나 마음 아픈 모습인지.

그 뿐인가. 세상 곳곳에서 전쟁과 가난으로 목숨을 잃거나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환경이 좋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술취한 운전사에 의해 한순간에 아버지를 잃어버린 가정. 유괴범에 의해 소중한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 신앙생활 열심히 하던 착한 아들을 전쟁터에서 잃어버린 윤상병의 경우는 어떤가. 그들의 신앙이 부족해서 생긴 일일까?

이성적으로 따졌을 때, 세상의 고통과 사랑의 하나님을 연결시키기는 참 어렵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면서 인간의 고통을 그대로 놔둔다면 선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세상에 자식을 사랑한다 하면서 죽어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고 있을 부모는 없기 때문이다. 가끔 아이들이 힘들어도 가르치기 위해서 그냥 놔두는 부모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힘든 것과 죽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다른 각도로 선하기에 인간을 위해 좋은 일을 해주기 원하더라도, 해줄 수 없다면 전능한 하나님이 아니다. 마치 선한 신과 악한 신이 있어 악한 신이 인간을 괴롭혀도, 선한 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제한되어 있는, 힘이 딸리는 그런 식의 신화가 되어버린다.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의지할 수 있는가?

세상의 적지 않은 재앙이 사람으로 인해 생긴 것들이다. 하지만 큰 재앙을 가지고 오는 지진이나 가뭄, 폭풍, 전염병등은 사람의 잘못으로 생긴 것은 아니다. 사람은 그런 것들을 콘트롤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 누군가? 그건 신이 아닌가?
 
첫번째 질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누구나 한번은 느껴봤을 질문. 아픔을 겪었거나, 주위의 고통을 보았던 사람이라면 "도데체 하나님이 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질문 한 번은 다 해보지 않았을까?  

사랑의 하나님이 있다면 어떻게 세상에 고통이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을 것 같다.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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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아이를 좋아하는 여인이 하나 있었다. 이 여인은 사랑이 워낙 넘치기 때문에 그 사랑을 받아줄 아이들이 필요했다. 아이들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이 여인의 최대 행복한 순간이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아이들이 나중에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착한 아이로 자랄지, 아니면 말을 안듣는 나쁜 아이로 자랄지 알 수가 있었다. 무섭지만 아이들이 만약에 말을 안들으면, 그 아이들은 평생 감옥에 같혀 매일 매일 형벌을 받아야한다. 그래도 이 여인은 아이를 낳는다. 착한 아이와 나쁜 아이를 동시에... 그리고 그 모든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 중의 반 넘는 아이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나쁜 아이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

전지 (모든 것을 앎) 라는 하나님의 속성과 사랑이라는 속성을 섞어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만들어 보면 위와 같은 모양이 나올 수 있다. 실제로 이 것이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의 시나리오다. 하나님은 사랑할 대상이 필요해서 그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에덴 동산에 두어 살게 하였는데, 그 에덴 동산에는 선악과라는 나무를 두어 인간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순종해야하는 것을 항상 기억하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으며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을 했고, 그 결과 인간 세계에 죄가 들어왔다. 아들인 예수를 보내어 착한 아이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많은 아이들이 나쁜 아이로 자라 결국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

전지하신 하나님이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을 것을 몰랐을까? 몰랐다면 전지한 하나님이 아니다. 만약 알았다면 그건 방임이 아닌가? 어떤 부모가 사랑하는 아이를 놀이방에서 놀게 했다. 그 안에는 아이가 재미있게 놀만한 장난감이 참 많이 널려있다. 그런데 그 안에 칼한자루가 놓여있다면? 아이한테 이 칼은 위험하니까 절대로 만지지마? 라고 했다고 부모의 책임이 다 없어지는 걸까? 더군다나 그 아이가 칼을 만져서 다칠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렇다면 미리 그 칼을 없애버리는게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부모의 책임이 아닐까? 아이가 칼을 만져서 다쳤다면 도데체 누구의 책임이 더 큰 걸까? 게다가 그 부모는 아이가 칼을 만졌다고 놀이방에서 쫓아내버렸다.

심각한 자기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속성으로 전지 (모든 것을 앎) 전능 (모든 것을 할 수 있음), 무소부재 (어디에나 있음), 영원성 (처음과 끝이 없음), 그리고 변하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도데체 이런 하나님이라면 인간이 태어나서 고생하고, 그리고 많은 수의 인간들이 결국 지옥에서 끝나지 않을 형벌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 인간을 왜 만들었을까? 자기 만족을 위해서? 사랑의 대상이 필요해서 강아지 하나 데려오듯 인간을 만들은 걸까? 그렇게 해놓고 왜 자기 자식까지 죽여가면서 인간을 위해 애를 쓸까? 아예 처음부터 인간을 만들지 않았으면 되는 것 아닐까? 그럼 사랑할 대상이 없어서 너무 외로워지는 건가? 그걸 못참는다면 전능의 하나님일까?

우리 딸이 예뻐하는 강아지 인형이 있다. 너무나 예뻐해서 잘 때도 안고 자고, 학교에도 들고 다닌다. 그 강아지 인형은 절대로 내 딸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우리 딸이 그 인형으로 인해 얻는 즐거움이 줄어드는 것 같지도 않다. 사랑하고자하는 딸 아이의 욕구를 강아지 인형은 적어도 지금은 충분히 만족시키고 있다.

사랑할 대상이 필요하다면 아예 인간의 인형을 만들면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말 잘듣는 천사들도 있지 않은가? (몇몇은 반항을 하긴 했지만...) 도데체 인간을, 그것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을 하나님은 왜 만들었는가?

인간들이 죄(성경이 말하는)를 짓고 고생하다 지옥에 가는 것... 그건 인간과 하나님의 공동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을 충분히 아시는 하나님이 왜 그냥 놔두셨을까?

Posted by 쉐아르
:
어제 오늘 가족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우선 9살 먹은 우리 딸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아빠.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인데 왜 사탄을 그냥 놔두시나요? 지금 사탄을 없애버리고 사람들이 다 차가게 살면 안되나요?" 나는 내가 알고있는 모범답안을 말해줬다. "그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실려고 그런 거야. 우리는 로봇이 아니잖아". 그 대답에 우리 아이는 만족한 모양이다. 그래 우리는 로봇이 아니지...

아내에게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에 같이 쓸 수 있는 저널을 하나 선물을 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은 릭워렌이라는 목사가 쓴 책으로 크리스찬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 40일간 점검할 수 있게 쓰여진 책이다. 많은 기독교인이 읽고 영향을 받았다. 이 책 첫날 내용이 이거다. "우리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아내가 그걸 읽고 나서 나에게 한 말. "이게 우리 살아가는 목적의 전부라면 우리는 로봇 아닌가?" "전에는 다 이해가 되었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동의가 안되네"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인가?"

자유의지를 주었다고 하면서, 우리 삶의 목적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러면 그 자유의지는 원래 지어진 목적대로 살지 않는 자유의지가 아닌가? 결국 죄를 짓는 자유의지라고 해석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을 즐겨하시는 것 같다. 고민하고 갈등하지 않는 방법은 딱 하나다. "믿고 그냥 고분 고분 순종하는 것" 그럼 그게 로봇이랑 뭐가 다른가? 결국 하나님이 원하는 건 로봇이란 건가?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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