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가족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우선 9살 먹은 우리 딸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아빠.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인데 왜 사탄을 그냥 놔두시나요? 지금 사탄을 없애버리고 사람들이 다 차가게 살면 안되나요?" 나는 내가 알고있는 모범답안을 말해줬다. "그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실려고 그런 거야. 우리는 로봇이 아니잖아". 그 대답에 우리 아이는 만족한 모양이다. 그래 우리는 로봇이 아니지...

아내에게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에 같이 쓸 수 있는 저널을 하나 선물을 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은 릭워렌이라는 목사가 쓴 책으로 크리스찬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 40일간 점검할 수 있게 쓰여진 책이다. 많은 기독교인이 읽고 영향을 받았다. 이 책 첫날 내용이 이거다. "우리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아내가 그걸 읽고 나서 나에게 한 말. "이게 우리 살아가는 목적의 전부라면 우리는 로봇 아닌가?" "전에는 다 이해가 되었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동의가 안되네"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인가?"

자유의지를 주었다고 하면서, 우리 삶의 목적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러면 그 자유의지는 원래 지어진 목적대로 살지 않는 자유의지가 아닌가? 결국 죄를 짓는 자유의지라고 해석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을 즐겨하시는 것 같다. 고민하고 갈등하지 않는 방법은 딱 하나다. "믿고 그냥 고분 고분 순종하는 것" 그럼 그게 로봇이랑 뭐가 다른가? 결국 하나님이 원하는 건 로봇이란 건가?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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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에 대한 증거

2007. 2. 15. 03:28
많은 기독교 서적들이 부활의 증거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러가지 증거들이 제시가 된다. 비어있는 무덤, 사람들에게 보여짐, 사람들의 변화 등등. 일부에서는 부활은 후세에 타종교에서 빌려온 개념이 전설과 결합이 되면서 나중에 기독교에 소개된 것이라고 하지만, 굉장히 초창기에 쓰여진 바울의 신앙고백이 부활을 명시하는 것을 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사실 부활은 부활을 믿는 것보다 그것을 부정하기 위해 다른 이유를 대는 것이 심정적으로 더 쉽다. 예를 들어 마리아가 찾아갔던 무덤은 예수의 무덤이 아니라 다른 무덤이였다던지, 아니면 예수가 죽은 것이 아니라 기절해있었다던지... 그런 설명을 하는 것이 부활을 믿는 것보다 더 이해하기가 쉬운 것이다. 하지만 그런 주장에는 논리적으로 결점이 너무 많다.

논리적인 기독교 서적들 (Case for Christ, 누가 돌을 옮겼느가)을 보면 부활을 믿지 않기 위해서는 억지 주장을 가져다 붙여야되고, 부활을 믿지 않기 위해서는 더 큰 믿음이 필요하다는 말을 한다. 나는 그 주장에 어느정도 논리적으로 동의한다.

그 주장중 내 맘에 가장 강력하게 다가온 것은 제자들의 변화였다. 그 제자들은 분명히 부활이 사실인지 거짓말인지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예수가 죽지 않고 기절했었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너무 결점이 많기에 죽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예수를 봤는지 안봤는지에 따라 부활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너무나 쉽게 증명이 되고, 제자들은 분명히 눈으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이 제자들이, 겁쟁이였던 제자들이 갑자기 변했다. 만약 부활이 거짓이라면 그들 모두가 거짓을 위해 목숨을 걸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서? 요즘의 정명석 같은 사이비도 그 측근에 있는 사람들은 진실을 알면서도 정명석 옆에 머물러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돈이나 권력이 개입이 되어 있다. 예수의 제자들의 경우는 그런게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뭘까? 신념? 명예? 만약 부활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도 그럴 수 있었을까?

내가 아직 신앙을 버리지 않은 것은 제자들의 변화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활이 사실이라는 것 말고는 그들의 변화를 설명할 수가 없다.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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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대한 소망

2007. 2. 15. 01:47
오늘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비행기를 탈려고 기다리고 있다가 마음 아픈 광경을 보았다.

군인이였다. 그 옆에는 그 군인을 눈물로 보내는 사십 정도 되어보이는 부인과 열살 정도 되어보이는 두 딸이 있었다. 군인 가족이라면 헤어져 지내는 것에 익숙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울면서 보내는 걸 보니 남편이 이라크 전장에 나가는 것 같다. 눈물로 보내는 부인, 그 슬픔이 너무 커서일까. 옆에 서 있는 두 딸은 차마 아빠와 마지막 포옹도 못하고 울고만 서 있었다. 남편의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서인지, 비행기안에 들어서는 모습을 사진기에 담던 그 부인은 두 딸과 그 자리를 떠났다.

다음번에는 좀더 젊은 커플이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군인. 아마도 아까 그 사람과 같은 경로로 이라크에 가는 것 같다. 그 둘의 마지막 포옹. 지금까지 살면서 그렇게 오래, 그렇게 간절한, 그리고 그렇게 슬픈 포옹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애써 웃고 있던 여자의 눈가가 붉어지며 결국에는 눈물을 떨구어내는 모습을 나는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남자의 얼굴은 다른 쪽을 향하고 있어서 보지는 못했지만 결국 같은 모습이 아니였을까.

그 두 가족의 이별을 지켜보면서 나는 전쟁의 원인인 부시와 미국을 욕하고 싶은 마음보다도 현실의 슬픔에 더 마음이 아팠다. 지금도 아프리카에서는 하루에 2만7천명의 아이들이 영양실조거나 아니면 치료를 제대로 못받아서 죽어간다고 한다. 그 이야기는 하루에 2만7천의 가족이 죽음으로 사랑하는 이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하늘에 대고 주먹이라도 휘두르고 싶을 처절한 슬픔을 2만7천의 어머니들이 겪고 있다는 것이다.

죽을 가능성보다도 살아서 다시 만날 가능성이 훨씬 많은 군인 가족의 이별이 이렇게 슬플진데, 죽어가는 아이를 지켜봐야하는 그 많은 어머니들의 마음은 어떨까? 고칠수 없는 병 때문에 사랑하는 이를 보내는 가족들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왜 세상은 이렇게 슬픈 것인지... 왜 세상에 슬픔이 존재해야만 하는 것인지... 왜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슬픔을 계속 주는지...

그 슬픈 현실이 싫다. 그리고 그 현실 속에 살고 있는 내가 싫다.

나는 천국을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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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쓴 글이다. 이 글을 내가 활동하는 사진 동호회에 올렸더니 잘 아는 후배가 이런 댓글을 달았다. "현실이 슬프기에 '천국'이라는 생각, 개념, 정의, 용어...가 생겨난거라고 생각합니다. 천국에 살고 있던들...그것이 현실이라면, 그들 또한 '천국'을 바랬을 겁니다."

과연 그러한가 궁금하다. 천국이란 것이 현실 도피 혹은 현실의 슬픔을 이기고 소망을 갖고자 만들어낸 개념일까? 아니면 그것이 실제하기에 그에 대한 단편의 지식이 인간에게 알려졌기에 인간이 천국을 소망하는 것일까?

천국의 실재를 인간적인 논리로 증명 혹은 부정할 수 있을까?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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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책중에 The Case for Christ 라는 책이 있다. 법대출신 전직 신문기자가 논리적으로 예수에 대해 변론을 한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예수를 믿지 않는게 믿는 것보다도 더 큰 믿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논리적으로 예수를 믿을 수 밖에 없게 된다.

근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 책을 읽고 나는 영적인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을 했다. 왜냐면 내 마음에 당연히 있어야할 감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믿을만 하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 내 문제는 해결이 안되는데... 세상은 아직도 이렇게 악한데... 등등.

몇가지 원칙을 세웠다.

- 교회 생활은 그대로 성실히 한다. 신앙에서 떨어져 나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점검하기 위한 것이니까. 굳이 교회 생활을 중단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 일단 무신론 혹은 반기독교적인 책들을 먼저 읽을까 한다. 먼저 유명한 복음전도자이며 빌그래함의 파트너였다가 무신론자로 돌아선 찰스템플톤의 Farewell to God. 그리고 많은 지성인들을 기독교로부터 멀어지게한 버트런드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그리고 오남강교수의 "예수는 없다".
- 그리고 다시 The Case for Faith와 The Case for Creator를 읽을거다. 그래서 스스로 판단을 해볼려고 한다. 하지만 이건 시작일 것이다. 이후는 어떻게 진행이 될지 아직 모른다.
-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만 쓸 생각이다. 나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글들을 보겠지. 와이프에게도 일단은 비밀이다. 신경쓰게 하고 싶지도 않지만... 우선 혼자만의 여행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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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나이 마흔살

처음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는 초등학교 5학년인 열두살 때.

그 이후 28년 가까이 신앙생활을 했다. 중등부 회장, 고등부 회장, 청년부 회장, 최근 직책 안수집사... 이외 수많은 활동및 성경공부들. 성경 지식만 놓고 보면 갓 졸업한 신학생보다 많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회사에서 돌아오며 찬양을 들었다.

"세상에 주 같은 분 없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솔직히 이야기해보자. 정말 하나님이 있는가? 그거 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 아닌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변화하는 것 정말 많이 봤다.
하지만 정명석 추종자도 변한다. 무슬림도 변한다. 몰몬교도들은 정말 생활에 철저하다.
그럼 도데체 차이가 뭔가?

2007년 2월 13일 나는 나의 영적 여행을 시작한다.

이 여행의 끝이 어떻게 끝날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면 이번에는 만나지 않고 그냥 끝내지는 않을거다.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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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년간 간직하고 있던 신념에 대한 질문을 시작하며...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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