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를 중지한 이후 포스팅을 하는 Future Shaper! 에 올렸던 포스팅입니다. 이 블로그를 마감하며 몇년간 지속되었던 신앙의 여정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는가를 기록하기 위해 이 블로그에도 포스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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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멍의 '나는 학생이다'를 읽고 있다.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학생'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관리, 작가, 농부의 생활을 했지만 그중 어느것도 자신을 제대로 규정하지 못하며, 돌이켜 보건데 그는 항상 학생으로 살아왔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학생'이라 단정짓는 그의 단호함이 부러웠다.

내가 무엇인가하는 고민 뒤에 이 책을 읽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나를 '무엇'으로 규정할 것인가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아직 살아온 날 못지 않게 남은 날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에 대한 정의에는 지금까지 삶에 대한 고백도 있겠지만, 이후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의지의 부분도 있다. 지금까지의 길을 정리하는 것임과 함께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겠다는 결단이다.

나는 엔지니어인가 질문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 오랫동안 엔지니어로서의 삶을 살았다. 엔지니어 특히 프로그래머가 좋았고, 평생 그 길을 가고자 미국에 건너왔다. 하지만 계기가 있어 엔지니어보다는 매니저의 삶을 선택했다. 엔지니어링 마인드는 항상 가지고 살겠으나 엔지니어라 부르기에는 실제 기술에서 너무 떨어져있다. 나는 엔지니어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매니저인가? 그렇게 부르기에는 아직 매니저로 보낸 시간이 전체 인생에 비해 짧다. 그리고 지금 계획하는 일이 성공한다면 또 다른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남은 생애 무엇을 할지 모르기에 매니저라 부르기도 힘들다.

나는 작가인가? 글과 사진을 좋아하고 언젠가 글과 사진을 업으로 삼고자 하는 소망이 있으나, 작가라 부르기에는 시간과 경력이 너무나 부족하다. 적지 않은 관심을 쏟기는 하나, 주업에 비하면 우선 순위는 한참이나 밑이다. 나는 작가는 아니다.

40년 남짓한 인생중, 18년을 학교 생활을 했고, 미국에 와서도 MBA다 뭐다 하면서 3년 넘게 학교를 다녔으니 '학생'이라 나를 규정할 수 있을 법 하다. 평생 공부하며 살겠다는 것이 내 주장이기도 하니 '나 학생이다' 선언할 수 있겠으나... 뽀대가 안난다. 따라하는 것은 왠지 캥긴다 ㅡ.ㅡ

그러다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5학년 때 교회에 발을 들인 이후 30년 가까이 내가 크리스찬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년간 진리를 확인하고 싶어 신을 부정하고자 노력한 적도 있었고, 지금도 성경의 모든 것을 이성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내 생각 근본에서 기독교적 가치관이 떠났던 적이 없다. 한국 기독교의 썩어 있는 모습울분을 쏟는 이유도 '내가 크리스찬'이기 때문이다.

나는 절대선이 있다고 믿으며 또한 논리적으로 추론하여 인정한 다. 또한 세상에는 내 지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존재함을 경험하여 알고 있다. 세상은 신을 빼고 설명할 수도 있지만, 과학적 가설의 조합보다 절대선을 통한 설명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절대선이 존재할 때, 귀결점은 인격신이라는 논리에 찬성한다. 인격신이 존재한다면, 그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때 인류에 평화와 소망을 주길 원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인격신에 가장 근접한 모습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여호와라는 결론을 내렸다. (충분한 비교가 없었기에 기독교 안에만 구원이 있다라고 단정짓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독교가 가장 쉽고 확실한 길임을 믿는다.)

나는 기독교에서 제시하는 구원관을 믿는다. 예수의 오심과 죽으심, 부활하심이 거대한 시나리오에 맞추어진 꼭 필요한, 그러면서도 참으로 감사한 사건임을 믿는다. 그 예수의 가르침이 이 세상을 더 낳은 곳으로 만들 것임을 믿으며, 더불어 그에게는 단지 '좋은 선생'을 넘어선 신적 초월성이 있음도 믿는다. 그를 따라가며 '거룩'해지는 것이 내 삶의 목표이며 그게 내가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것임을 믿는다.

그렇다. 나는 크리스찬이었고, 크리스찬이며, 앞으로도 크리스찬으로서 살아갈 것이다. 그게 나의 정체성이다. 그가 열심히 살라 하였기에 나는 내 직업에 충실할 것이고, 그가 거룩하라 하였기에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가 사랑하라 하였기에 내 가족과 이웃을 사랑할 것이며, 그가 남을 도와주라 하였기에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애쓸 것이다. 그가 희생을 보여주었기에 나도 희생을 치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도록 그를 닮아갈 것이다. 지금까지 부족했기에 앞으로 더 열심을 낼 것이며, 또한 도움을 청할 것이다.

나는 크리스찬으로서의 내가 좋다. 그리고 그 사실이 참으로 감사하다.




Posted by 쉐아르
:
반년이 넘게 이 블로그에 글을 안썼습니다. 그동안 회피하고 있었다고 할까요?

제가 관리하는 다른 블로그가 있습니다. http://futureshaper.tistory.com입니다. 그 블로그와 합쳤습니다. 아무래도 두개의 블로그를 관리하는 것이 부담이 되어서요. 거기서 다시 저의 영적여행을 이어가려 합니다. 보족한 이곳에 관심을 가져주셨던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Posted by 쉐아르
:
그동안 ...

영적인 것보다 당장 급한 것들에 더 신경을 쓰면서 살았습니다.

하나님과의 씨름은 그래서 조금 소강상태에 있었네요.

이성적으로 옳고 그르던... 하나님 없다고 생각하니 힘들었습니다.

이제 그 분과 다시 한번 대화를 나눌려고 합니다.

더이상 침묵하지 않으시길 바래야겠지요 ^^
Posted by 쉐아르
:

여호와 하나님

2007. 6. 5. 06:23



삼십년 가까운 기간동안 "나의 주님"이라 불렀던 여호와 하나님

나는 이성적으로 당신을 부정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신다면

이제 당신이 계시다는 것을 증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Posted by 쉐아르
:

조금 지쳤나 봅니다.

회사 일도 바쁘고... 또 가족들도 챙겨야 되고...

꾸준히 책은 손에서 놓지 않고 있지만

생각은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지만

글이 나오지를 않네요.

...

나름대로 제 마음 속의 결론은 내렸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해결 안된 한두가지의 문제가 있네요.

어느쪽으로 결정하던 몇가지의 질문들이 제 마음을 붙잡는다는

...

매일의 일상 속에서 '우주의 근원'은 별로 하는 역할이 없더군요.

...

하지만 그래도 그 문제가 중요한 문제이기에

제 고민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기 위해서요.

Posted by 쉐아르
:
최근 한달 남짓 무수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또 나름대로 답을 찾을려고 노력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남아있는 질문들이 많다. 난 아직도 바벨탑이 있었다는 것이 밑겨지지가 않는다. 난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만 선택했다는 것이 불만이다.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한 논쟁을 보면서도, 난 아직도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수만이 구원이다라는 주장. 다른 종교들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다른 종교에서도 내가 느끼는 것과 같은 평안과 또한 자발적인 헌신의 마음이 생기는 지 궁금하다. 외계인은 있는지. 천국의 삶은 어떨지. 솔직히 지금의 느낌은 천국이 굉장히 심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당장 가족간의 관계도 없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질문을 하는 신앙.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신앙을 원한다.

맹목적인 신앙은 나의 신앙이 아니다. 아니 그건 누구의 신앙이 되어서도 아니된다.
생각하는 신앙. 끊임없이 해답을 찾아 나가는 신앙.

그런 신앙이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신앙이 아닐까?

Posted by 쉐아르
:

쉐아르의 영적 여행이라는 타이틀로 제 블로그를 바꾸고 저의 신앙적인 혹은 영적인 고민에 대한 글만 올려놓기로 한 것은 저와의 약속을 위한 것이였습니다.

신앙에 대해, 삶의 목적에 대해, 인간의 근원에 대해 궁금하고 의문이 있음에도... 먹고 살기에 지치다보면 타협하고, 저의 고민을 묻어버리는 저를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글을 쓰고 저의 고민을 다른 분들과 나누기 위함이였습니다.

내일이면 다시 오랜 비행을 합니다. 그동안 고민했지만 시간이 없어서 글로 정리하지 못했던 저의 생각들을 하늘위에 떠있는 동안, 저만의 공간에서 정리해볼까 합니다.

혹시나 저의 생각에 같은 혹은 다른 의견을 가지신 분들도 서로 신앙에 대해, 삶의 목적에 대해 의견을 나누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종교논쟁은 필요없다고 하지만 소모적이 아닌 건설적인 논쟁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트랙백을 모아놓는 따른 블로그를 만들면 어떨까. 그래서 종교에 관한 글을 트랙백을 걸어서 거기에 가면 관련된 글들을 볼 수 있는 블로그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도 해봤습니다. 어떨까요?

Posted by 쉐아르
:

여행 보고

2007. 3. 11. 19:09
많은 질문과 검색 끝에 지금은 세상의 근원에는 누군가 이 세상을 만들고 설계한 이(Intelligent Designer : ID)가 있어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니 ID의 존재를 부정하면 세상의 많은 부분들, 그리고 내 삶의 의미를 설명하기가 굉장히 힘들다고 하는 것이 더 맞겠다

그 ID가 그럼 기독교에서 말하는 여호와 하나님이냐 라는 것은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의 근원에 대해 이성적인 질문을 던진다면 "가장 명확한" 답은 ID라고 할 수 있다.

ID는 과학이 아니란다.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과학의 원리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건 어쩌면 더 철학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ID를 부정하는 많은 주장이 있다. 이제 그런 주장들을 찾아 볼려고 한다. 지금까지 읽은 것들은 심정적인 부정은 많았지만 제대로된 반박은 없었던 것 같다. 이제 무신론자들의 주장을 찾아 봐야지.
Posted by 쉐아르
:
내가 신앙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것을 와이프가 교회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나 보다. 그랬더니 비슷한 고민을 가졌던 한 분이 이렇게 조언을 했더란다. "아무리 고민하고 또 이론적인 책을 읽어도 해결이 되지를 않는다. 성경을 읽고 더 하나님의 말씀에 파고 들어야 그런 고민이 없어진다."라고.

동감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고민을 없애기 위한"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건 심하게 이야기한다면 더 강하게 자기 세뇌를 시키는 것이기도 하지 않나? 난 그러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의심이 생기면 "기도를 안해서 그래. 더 기도하고 열심히 믿어봐"라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다.

유치한 비유일지는 모르지만 공산주의에 의심이 가는 사람이 공산주의 서적을 열심히 파며 읽으면 어떻게 될까? 결국 자기 세뇌를 더 하는 결과 밖에 더 될까?

난 그래서 일부러 성경을 읽지 않기로 결정했다. 적어도 내 마음에 있는 의심과 질문들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보기 전에는. 그리고 무신론자 반기독인들이 제시하는 기독교의 문제점과 모순들에 대해 충분히 조사해 보기 전에는 성경을 읽지 않을려고 한다. 남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다. 이 상황에서 성경을 읽고 편안함을 얻는다면 언제가는 다시 나는 의심을 할 것 같다.

Posted by 쉐아르
:
새벽 네시반에 미리 신청한 택시가 도착했다. 5시 10분에 공항에 도착해서 여섯시 조금 전에 비행기에 올랐다. 읽고 있던 템플턴의 책을 꺼내들고 읽기 시작했지만... 금새 졸음이 쏟아졌다. 출장 가기전에 밀려있던 집안일, 회사일, 교회일을 마무리짓느라 최근 이틀동안 다섯시간정도 밖에 못잤기에 일단 잠을 자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스튜어디스가 깨우지 않도록 아예 눈가리개와 귀마개까지 하고 푹 잠이 들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비행기를 갈아탔다. 서울까지 열두시간. 비행기위에서의 시간이 나는 참 좋다. 내릴 때까지 그 시간을 내 맘대로 쓸 수 있으니까. 템플턴의 책은 구약을 지나 신약 중반에 와 있었다. 솔직히 이미 그 책에 실망을 하고 있었던 참이라 끝까지 읽기가 쉽지는 않았다.

여호와가 민족신에 불과하다는, 구약의 많은 이야기들이 신화나 우화라는 그의 주장은 나름 논리가 있었다. 하지만 신약에 와서는 이야기들이 잘 정리가 안되었고, 그의 주장 내에서 모순을 보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의 기도를 들으며, 어떻게 예수의 기도를 제자들이 들을 수 있었겠느냐 그 기도의 내용은 나중에 제자들이 짜집기 한거다라고 주장하면서, 그 기도의 내용을 들어 예수가 인간의 나약한 면을 보인다고 예수는 인간이라는 주장을 했다. 그 기도의 내용이 제자들이 나중에 써넣은 거라면 왜 그들의 주장과 위배되는 내용을 써넣었을까? 모순적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교회가 힘을 잃어가고 있는가에 대한 그의 생각을 적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기독교에 대한 반박이라기보다는 일부 내용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충고라도 하는 듯해서 도데체 이야기가 어디로 가는지... 그의 책에 대해 어떤 무신론자가 굉장히 반기독교 이론에 대해 굉장히 기초적인 책이라 했는데, 그 말이 이해가 되었다. 템플턴이 내어 놓은 문제들은 지금까지 교회 생활하면서 여러번 들어왔던 주장들이고 별로 새로울 것은 없었다. 난 그라면 내가 신앙을 바로 버리고 싶을 정도로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관념을 송두리채 흔들어 놓을 줄 알았는데...

어쨋든 그의 책을 마쳤을때 비행기는 인천 공항에 들어서고 있었다. 책의 후반부는 "사랑의 하나님이 있다면 왜 세상에 재난이 있고 슬픔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믿지 않는다고 지옥에 간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주장이다고 이야기한다. 세상이 왜 이리 힘든가, 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고통을 받는가라는 질문은 나도 계속 해오고 있는 질문이다.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리스트로벨의 "믿음 사건 (The Case for Faith)"를 들고 갔다. 템플턴의 책에 대해 대응해서 쓴 책이라고 할까. 그 책도 템플턴과 같은 질문으로 시작을 하고 있다. 세상에 왜 고통이 있는가. 한가지 예로 인도의 한 지역의 예를 들었다. 하수도 옆에 사는 아이들의 이야기. 그곳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다가, 그렇게 죽어갈 아이들. 한쪽 눈은 병이 들었는지 감겨 있고, 다른 한눈으로 아무 희망도 없이 손을 내밀어 구걸을 하던 아이와의 만남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나는 삼만원짜리 식사를 하면서 읽고 있었다. 회사에서 지불하는 거니 이왕이면 잘 먹자는 마음으로 먹는 거지만, 마음이 많이 찔렸다. 이 돈을 그 아이들에게 준다면 일주일 아니 한달도 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 난 한끼의 식사로 날려보내지만. 그들에게는 어쩌면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만큼의 돈이 될 수도 있는데.

돌아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랑의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는지 아닌지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그와는 별도로 내 생활이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세상의 많은 고통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그들을 왜면하면서 살아왔던 생활.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 가지기 위해 안달하던 모습.

내 사랑의 영역이 너무나 작다. 이제는 그 영역을 더 키워야겠다.

앞으로 삼주간의 출장 기간. 책을 볼 시간도, 생각할 시간도, 글을 쓸 시간도, 그리고 여기 저기 경험할 시간도 더 많다. 매일 매일 치열하게 질문하고 찾아봐야겠다.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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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년간 간직하고 있던 신념에 대한 질문을 시작하며...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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