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이라는 것을 이야기할려면 먼저 기적의 정의부터 내려야 할 것 같다. 국어사전에 기적의 뜻은 '사람의 생각이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기이한 일'으로 정의 되어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말한다. 또한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기적이라고도 표현한다.

기독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종교에 대해 사람들이 비판하는 것은 소위 기적을 못 믿겠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성경은 온갖 기적으로 가득차 있다. 노아의 홍수, 애굽의 열가지 재앙, 갈멜산에서의 불내림, 예수의 동정녀 탄생, 그리고 예수의 부활까지. 그뿐인가. 요즘도 교회 내에서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암이 낳았다는등의 육체적인 현상도 있고, 기도를 했더니 고아들을 먹일 빵이 배달이 되었다는 믿기 어려운 기적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이 기적이라는 것이 이성적으로 참 납득하기 어렵다. 성경에 나오는 기적들은 다 전설이나 동화 같고, 요즘 벌어진다는 기적들은 사기극이거나, 심리적인 착각, 혹은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게 더 이해하기도 쉽고 받아들이기도 쉽기 때문이다. 양보해서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건 아직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지 그게 기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선 시대 사람들에게 비행기를 보여주면 모두가 기적이라 벌벌 떨겠지만, 지금 세상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지금 벌어지는 현상들도 언제가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무신론적인 주장이다. 결국 기적이란 없다는 것이다.

근데 이걸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는 이유는 기적을 체험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기적이 없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으로 사는 오랜 기간 동안, 이성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일들을 많이 겪었다. 그중에 우연이라고 굳이 설명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들을 빼고도 설명을 할 수 없는 물리적인 일이 두가지가 있다. 내 옆에서 벌어지지 않았거나, 내가 직접 체험하지 않은 일들은 제외했다.

이십여년전 큰조카 (큰 누나의 아들)과 둘째 조카 (둘째 누나의 딸)이 거의 같은 시기에 태어났다. 우연의 일치인지 두 아이다 엄마 배속에서 같은 문제를 가지고 나왔는데, 그건 고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였다. 한쪽에 응어리가 져서 그걸 치료하기 위해서는 일년 가까운 물리치료를 해야했었다. 아니면 평생 그 흔적을 가지고 있게 된다고 한다. 당시 전도사였던 큰 매형 식구는 일년 가까운 물리치료를 감당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였다. 그래서 기도를 했고 하루만에 큰 조카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응어리가 없어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물리치료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둘째누나의 딸은 치료를 못받았기에 그 흔적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흔히들 기도를 받고 병이 고쳐지는 것은 기도 받은 사람의 자기 암시를 통한 착각이거나 아니면 그 사람의 정신력이 치료를 도왔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큰 조카의 경우는 그때 오개월이 안되었다. 자기 암시를 할 수도 없거니와 정신력이 발휘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질병도 절대적으로 장기적인 물리치료를 해야지만 되는 경우였다. 오히려 암이 낳는 것보다도 더 타당한 설명을 찾기 어려운 것이다.

또 하나는 소위 말하는 성령체험이다. 방언 같은 것이다. 방언을 하거나 진동을 경험하는 것을 보고 집단적인 히스테리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뭐...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 하지만 방언도 익숙해지면 집단 히스테리 속에 있어야만 방언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원한다면 어디서든지, 전철 안에서도, 회사에서 근무하다가도, 즉 아주 멀쩡한 상태에서도 방언을 할 수가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방언으로 대화도 나눈다. 다른 사람이 하는 방언에 대해서는 정신적인 착각이라 말할 수 있어도 내가 그걸 경험하고 있을 때는 정말 "누군가"가 나를 조종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만큼 방언은 내가 아주 정상적인 상태, 전혀 흥분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내게서 내 입에 대한 콘트롤을 뺐어간다. 그 현상은 지속적이며 일관적이다. 그리고 하면 할수록 더 발전되고 (어휘가 늘어나고) 내가 콘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늘어난다.  이런 현상을 이성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직접 보고 경험한 내 입장에서는 "기적은 없다"고 잘라 말하는 것에 모순이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눈 앞에 벌어지는 현상이 있고, 그 현상을 '아직까지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러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두가지의 타당한 설명이 있을 수 있다. 한가지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기적은 없지만 아직은 왜 그런지는 모른다. 하지만 과학의 발달을 통해 분명히 원인을 찾아낼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입장이고, 또 한가지는 기적의 원인이 되는 초월적인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사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온 세상을 창조한 -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성경에 나타나는 기적들을 인정하기란 어렵지가 않게 된다. 천지 창조와 같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었다면, 예를 들어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유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은 너무나 쉽기 때문이다. 결국 질문은 성경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창조자를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돌아가게 된다.

선택의 문제로 돌아가는듯 하지만, 그래도 차근 차근 창조자의 존재 여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고 하겠다. 유신론 특히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창조자의 존재 증거는 다음의 다섯가지로 요약이 될 수 있다. 사실 증거라기보다 상황에 따른 추론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1. 신을 통해 세상의 근원을 설명할 수 있다

우주의 근원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빅뱅이론이다. 빅뱅이론은 우주 전체가 아주 오래전 생긴 대폭발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이론이다. 공간과 시간은 대폭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대폭발 이후에 모든 것이 생겨났다는 이론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유력한 증거들이 있기에 이 이론은 현재 우주의 근원에 대해 가장 타당한 설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이 이론에 대해 사람들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이 빅뱅의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두가지의 의견이 있다. 무신론자들은 우주 자체가 근원이고 영원하다는 생각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여호와는 '스스로 있는자'이며 영원하다고 믿는다. 우주 자체가 근원이거나 아니면 그 우주를 만들어낸 근원이 되는 신이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주에는 출발점(빅뱅)이 있기에 빅뱅을 일으킨 원인이 있어야한다는 것이 유신론자들의 주장이고, 그 원인은 바로 신이라는 것이다.

#2. 잘 꾸며진 우주와 인간은 신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면 참 잘 짜여져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정교한 것을 보면 누군가 디자인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것이 우연의 결과다라는 것이 더 믿겨지기 힘들다는 생각이다. 사실 지금의 세상이 우연의 결과다라는 주장은 무신론자나 진화론자들에게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였다. 그 때문에 최근 몇십년간 현재 결과의 개연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가지 가설들이 제시 되었다. 하지만 어느 이론도 반대되는 증거가 있는 상태다. 혹은 스티븐 호킹처럼 무한 우주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무한대 수의 우주가 있는 것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우연히도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는 가설이다. 하지만 이 가설은 어쩌면 '신이 있다'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보다도 더 증명하기 힘들어 보인다. ^^

#3. 객관적 도덕 기준의 존재 여부는 신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이 주장은 두가지의 작은 논쟁거리를 담고 있다. 첫째는 객관적 도덕 기준이라는 것이 있느냐 하는 것과, 객관적 도덕기준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객관적 도덕 기준이라는 것은 없다라고 말을 한다. 세상의 많은 도덕 기준들이 사회적인 발전을 통해서 만들어진 사람들 사이의 동의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구하고 어떤 것들은 명백히 '나쁜 것이다'라고 말할 만한 것이 있다. 나는 이 문제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면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이들에게 양심이라는 것이 주어져 있는데, 그 마음을 잠잠히 들여다 보며 '살인이라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애들을 학대하는게 뭐가 나쁘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찌에 대한 유태인 학살이 단지 역사가 그렇게 흘러갔기 때문이지 '객관적으로'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세상에 객관적인 도덕 기준이 있다고 '이성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면 객관적 도덕 기준이 있다는 것이 신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거냐?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신이 그런 객관적 도덕기준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그럴듯한 설명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바라보면 사람들에게 양심이 있다는 것이, 객관적 도덕기준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런 것이 없다면, 모든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데로' 행동한다면... 그게 지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신문 사회면에 보이는 도저히 이성이 있다면 할 수 없는 추악한 일들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이대로 발전한다면 이게 지옥이 아닐까?

#4. 신의 존재는 부활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설명이다

부활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또 다른 논쟁거리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부활이 없었다면 예수 당시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설명하기가 굉장히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부활이 있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에 대해서는 따로 한번 정리를 해 볼 생각이다. 그렇다면 부활을 설명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보통 사람의 경우에는 부활은 없다. 몸속의 장기들이 활동을 하지 않아 잠깐 가사 상태에 빠지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예수처럼 외부의 요인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후에 36시간이 넘어서 다시 살아나는 경우는 있을 수가 없다. 누가 살려주지 않는 이상, 누군가 살려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이가 있지 않은 이상 부활을 설명할 방법은 없다.

#5. 신은 경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은 존재한다

아마도 이 주장은 가장 주관적이면서도, 어쩌면 가장 객관적인 것일 것이다. 예를 들어 누가 나에게 너의 부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봐 라고 묻는다면 나는 여러가지 증거를 댈 수 있다. 운전면허증, 주민등록등본, 같이 찍은 사진 등등. 하지만 나 개인에게 있어서는 그런 증명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된다. 왜냐면 나는 나의 부인을 보고, 만지고,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으로 신을 경험하는가? 최근 한달여 동안 지난 20여년을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을 돌아보았다. 그 삶 속에서 신, 즉 하나님을 경험했던 순간들이 꽤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있구나. 내가 하나님을 통해 변화되고 있구나. 그런 경험들이다. 물론 앞에서 이야기한 물리적인 경험도 있지만, 사실 나에게 더 놀라운 것은 내 생각과 태도의 변화다. 누군가 물어볼 수 있다. 그게 나의 착각이 아니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냐? 그게 객관적이라고 증명할 수 있냐? 노력이야 하겠지만 내 경험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은 안 한다. 그 경험들은 철저히 주관적이니까. 대신 앞에서 제시한 몇가지의 주장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신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여전히 일정 정도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여러가지 객관적으로 신이 없다면 설명할 수 없는 상황들과 주관적인 경험들을 토대로 '신 이외에는 타당한 설명이 없다'라고 이성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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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아르의 영적 여행이라는 타이틀로 제 블로그를 바꾸고 저의 신앙적인 혹은 영적인 고민에 대한 글만 올려놓기로 한 것은 저와의 약속을 위한 것이였습니다.

신앙에 대해, 삶의 목적에 대해, 인간의 근원에 대해 궁금하고 의문이 있음에도... 먹고 살기에 지치다보면 타협하고, 저의 고민을 묻어버리는 저를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글을 쓰고 저의 고민을 다른 분들과 나누기 위함이였습니다.

내일이면 다시 오랜 비행을 합니다. 그동안 고민했지만 시간이 없어서 글로 정리하지 못했던 저의 생각들을 하늘위에 떠있는 동안, 저만의 공간에서 정리해볼까 합니다.

혹시나 저의 생각에 같은 혹은 다른 의견을 가지신 분들도 서로 신앙에 대해, 삶의 목적에 대해 의견을 나누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종교논쟁은 필요없다고 하지만 소모적이 아닌 건설적인 논쟁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트랙백을 모아놓는 따른 블로그를 만들면 어떨까. 그래서 종교에 관한 글을 트랙백을 걸어서 거기에 가면 관련된 글들을 볼 수 있는 블로그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도 해봤습니다. 어떨까요?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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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보면 많은 기적들이 나온다. 노아의 홍수, 애굽에서의 열가지 재앙, 홍해가 갈라짐, 사막에서의 만나, ... 신약시대로 가서는 예수의 동정녀 탄생, 그리고 예수의 부활까지. 이런 많은 기적들. 인간의 이성으로는 믿기가 굉장히 힘들다.

첫째, 이런 기적들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된다. 노아의 홍수가 생기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가장 높은 산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의 물이 있어야하는데, 그 엄청난 양의 물이 지금은 어디로 갔는가? 노아의 방주만 해도, 하나의 방주 안에 어떻게 모든 동물들을 쌍쌍이 넣을 수 있었을까? 그 먹이는? 그 배설물들은? 예수의 부활에 대해서는 어떤가? 아무도 죽은지 사흘이 지나가서 부활하지 않는다. 잠깐 숨이 끊어졌다 살아나는 이는 있어도, 예수처럼 무덤에 뭍혔다가 살아나는 사람은 없다.

둘째, 이런 기적들이 왜 성경의 시대에만 나타나는가? 지금 세상에는 왜 부활하는 사람이 없는가? 왜 지금 세상에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제물을 태우지는 않는가?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 한번이라도 보여주면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것 같은데 말이다. 간혹 가다 기도해서 병이 낳았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우연이거나 아니면 정신적인 위안에 불과하다. 부흥회에서 은혜받고 암이 낳았다고 좋아하던 사람이 일년 있다가 죽는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셋째, 기독교에서는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도 의문이다. 기도를 해서 기도한데로 되면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고 하고, 그대로 안되면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한다. 그렇다면 기도에 응답해서 인간세상에 개입하신다는 하나님은 어디에 있는가? 이래도 감사, 저래도 감사라면 기도하는 의미가 그럼 무엇인가?

템플턴은 그의 책에서 "이성이 조금만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전설이 동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한다. 이성과 기적, 과학과 기적. 같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생각하는 사람이 기적을 믿는다는 일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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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보고

2007. 3. 11. 19:09
많은 질문과 검색 끝에 지금은 세상의 근원에는 누군가 이 세상을 만들고 설계한 이(Intelligent Designer : ID)가 있어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니 ID의 존재를 부정하면 세상의 많은 부분들, 그리고 내 삶의 의미를 설명하기가 굉장히 힘들다고 하는 것이 더 맞겠다

그 ID가 그럼 기독교에서 말하는 여호와 하나님이냐 라는 것은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의 근원에 대해 이성적인 질문을 던진다면 "가장 명확한" 답은 ID라고 할 수 있다.

ID는 과학이 아니란다.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과학의 원리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건 어쩌면 더 철학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ID를 부정하는 많은 주장이 있다. 이제 그런 주장들을 찾아 볼려고 한다. 지금까지 읽은 것들은 심정적인 부정은 많았지만 제대로된 반박은 없었던 것 같다. 이제 무신론자들의 주장을 찾아 봐야지.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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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03.13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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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주 들리며 쉐아르님의 여행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뜻있는 여행하고 계셔서 저 또한 힘을 얻습니다.
    3월27일에 목사고시를 봅니다.
    고시예제집을 주시더군요. 답이 있는.
    읽어보니 마음 한구석 답답해집니다.
    시험을 치룰때 어떤 문제에 대해 제시한 답을 적어야 할지
    제 마음의 뜻대로 답을 적어야 할지 고민중입니다.

    마음의 뜻대로 답을 적으면 시험에 통과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중학교때 찰스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문제가 나오면
    답 적는 일을 포기했던 어설픈 옛생각도 나고...

    이래저래 마음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네요.
    늘 쉐아르님의 여행 뜨거운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습니다.
    • 2007.03.13 13:1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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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저도 아가미님의 아이가 아름다운 어머니 뱃속에서 자라나는 모습을 종종 들러서 봅니다 ^^;;;
      한국에 온지 벌써 이주가 넘었고, 며칠후면 다시 돌아가야하는데 아가미님 한번 뵙자고 선뜻 연락을 못드렸습니다. 그만큼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었네요. 일~이주후면 다시 한국에 들어오므로 그때 연락드리겠습니다.

      목사고시에 어떤 문제가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답이 있는 예제집이라니 좀 아이러니하긴 하네요 ^^;;; 하지만 그 답들도 오랜 기간동안 검증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긴합니다. 목사고시 잘 보세요.

      요즘은 솔직히 삶에 지쳐서 고민하는 것을 게을리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잠깐 잠깐 저 자신을 돌아보고, 또 하늘의 가치를 삶의 목적을 생각하는 것이 힘이 됩니다.

      다만 저의 영적여행과는 별도로 세상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세상에 의해 무시당하는 기독교의 모습은 여전히 저의 마음을 아프게 하네요. 그래서 부탁드립니다. 아가미님 크고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목사님 되시기 바랍니다 ^^

요즘 도올이 인기다. 어느 신문이든 도올의 주장과 함께, 그게 새로운 지식인의 주장인양 한마디 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 같은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정도 기독교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참 웃기다 못해 한심하고, 또 허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 오늘 읽은 기사의 전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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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은 4일 펴낸 <기독교성서의 이해>에서 이미 논쟁을 불러온 ‘구약 폐기론’뿐 아니라 현 기독교에서 너무나 당연스럽게 여기는 유일신앙과 삼위일체설을 정면으로 반박해 또다른 쟁점을 만들었다.

그의 글은 예수 생애 전후 시대와 성서가 형성된 당시의 종교, 문화, 인물들에 대한 고증을 깔고 있다. 기독교를 공인해 13번째 사도로까지 불리는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장인과 부인, 친자식까지 처참하게 고문해 죽인 ‘역사적 사실’도 글에 언급했다.

이 책은 ‘성서 문자 무오류설’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도올은 “초기 기독교엔 구전과 예배제식만 있었지 경전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며 “1세기에만 해도 예수한테서 직접 말씀을 듣거나, 직접 들은 제자한테서 직접 전해들은 ‘사도’의 말이 경전과 같은 권위를 지녔는데, 2세기 초에 이런 사람들이 모두 죽고, 교회 내의 구술 전통이 변형되고 왜곡되면서 곳곳에서 사도성을 가장해 경전을 저작하거나 편집하는 것이 자유롭게 이뤄졌다”고 쓰고 있다.

그는 또 이스라엘 민족의 유일신앙은 야훼교를 창시한 모세로부터 출발한 것이며, 초기 기독교에선 예수가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생각도 자연스러웠다고 주장했다. 그는 “니케아 종교회의(325년)에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알렉산더와 ‘예수는 인간일 뿐’이라며 논쟁했던 아리우스는 오늘날엔 흉악한 이단자로 취급되고 있다”며 “그러나 당시 아리우스의 주장은 초기 기독교도들의 리버럴한 사상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대변한 것이었고, 그렇지 않았다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직접 중재에 나설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도올은 “‘성부·성자·성신’이라는 말도 복음서의 개념이 아니며 오직 가톨릭교회 내에서 성립한 삼위일체 논쟁 이후의 독단적인 교리 개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자유주의 신학 전통이 활발한 서구에서는 자유로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복음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전통 탓에 논의 제약이 심했다. 도올의 주장이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배경이다. 조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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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도올이 삼위일체를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진리라고 인정한 이유를 알기나 하고 말하는 걸까? 그리고 그와 다른 주장을 하는 자들을 이단자로 취급한 이유를 알고 있을까? 삼위일체라는 교리가 나오게 된 근거가 되는 성경구절들을 제대로 찾아보기나 하고 말하는 걸까? 최초의 성경 사본의 추정연대가 50~60년이라는 사실을 알기나 하고 말하는 걸까? 세상에 가장 많은 사본과 참고자료가 있는 것이 성경이고 그들의 일치되는 비율이 95%가 넘는다는 것을 알고서도 자유로운 저작과 편집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성서 문자 무오류설’의 위험성을 지적했다고? 도올은 지금 기독교에서 성서의 문자 하나 하나를 아무런 의식없이 받아들인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무리 보수적인 교회에서도 완전 무오류설을 믿는 교회는 없다. 필사 과정에서 실수가 생길 수 있는 것을 다 인정하고 있다.

도올이 하는 주장의 수준을 보면 그가 '다빈치 코드' 하나 읽고 말하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도올이 하는 말들은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다. 2000년 기독교 역사에서 수없이 거론되어지고 수없이 교정을 거친 말들이다. 그런데 마치 자기가 새로이 깨달은 것인양 이야기하고, 또 그것이 새로운 지적인양 보도하는 신문들... 하나같이 한심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보수적인 전통 탓에 논의 제약이 심했다고? 도올의 주장이 파격적이라고? 20년도 전에 아직도 고등학생이였던 나도 여러번 토론하고 고민했던 주제다. 도데체 뭐가 새롭고 뭐가 파격적이라는 건가?

한국 기독교가 교회 짓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은 초등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 이야기 말고 도올에게서 제대로 된 학문적인 그리고 신학적인 지적을 보고 싶다. 어디서 줏어들은 소문을 말하는게 아니라 기독교 교리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문제가 있는지 하는 제대로 된 비평을 듣고 싶다.

자기도취에 빠져 몇마디 한 것에 남비 들끓듯 하는 걸 보니, 기독교의 꼴이 참 우습게 되긴 되었나 보다. 얼마나 제대로 된 역할을 못했기 이런 주장이 화제가 될까?

Posted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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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나가다
    2007.03.22 07:26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숲속에서 보는 숲과 숲밖에서 보는 숲은 차이가 있는 겁니다.
    무조건적인 믿음보다는 알고 믿자는 것이 도올의 주장인 듯 하더군요.
    "삼위일체를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진리라고 인정한 이유"
    회의에서 인정한 겁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하는 그런 종류의 회의말이지요.
    학문적인 비난이 아니라 비평은 누구든 할 수 있습니다.
    강제적인 전도와 교회 건물의 외형적인 확장이라도
    이제 좀 자제를 해야 이 나라에서 기독교가 살아 남습니다.
    남의 것은 전혀 있는 그대로 인정을 못하는 것이
    한국기독교라 한 소리 나오면 이렇게 들끓는 겁니다.
    저도 교회를 다닙니다만 이건 아니다...이런 것 정말 많습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
    • 2007.03.23 01:5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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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가다'님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맞지요. 한국 기독교 문제 정말 많습니다. 제가 이 블로그에 적어놓을 글들을 보신다면 제가 한국 기독교를 옹호하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도올의 말이 알고 믿자는 주장 정도로 받아들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저는 반대로 도올에게 제대로 알고 비판을 해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도올의 말대로 예수가 죽은 후 예수를 인간으로 여기는 생각들이 초대 교인들 사이에 자유로왔다면 그 주장이 당시에 얼마나 받아들였는지, 성경의 어느 부분에서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지를 제시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주장이 성경 전체의 일관적인 메시지와 일치하는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성경 전체의 일관적인 메시지는 도올의 주장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런 불일치를 극복하기 위해서 구약은 없애버리고 요한복음만 가치있다고 접근한다면 그건 제대로된 학문적인 접근이 아니지요.

      전 니케아 종교회의를 이렇게 이해합니다. 굉장히 초기단계부터 주류의 입장은 삼위일체를 인정하는 것이였습니다. 삼위일체라는 용어는 쓰지 않았더라도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고 하나님으로 인정을 했습니다. 이는 사도들의 편지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 주류의 입장을 회의를 통해서 확립을 한 겁니다. 새로운 주장을 꺼집어내서 인정한 것이 아니라요. 그렇기에 제가 "삼위일체를 인정한 이유"를 아느냐고 물어본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강제 전도와 외형 중심, 그리고 목회자들의 비윤리성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고, 또 그에 따른 징벌이 있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도올 같은 사람에게서 남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닌 제대로된 기독교 비판을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2. 2007.03.25 15:1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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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중에 '예수만이 유일한 길인가'에서 제 생각을 정리할 생각입니다만... 저는 '산 정상으로 이르는 길에는 여러갈래가 있을 수 있다'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그럴 수 있겠지요. 실제로 그러니까요.

    하지만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것과 구원에 이르는 길을 비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구원이라는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과, 산 정상에 오르는 것과 같이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비교하는 것이니까요. 굳이 비교한다면 하늘에 올라가는 길이라고나 할까요? 산 정상은 인간의 힘으로 올라갈 수 있지만, 하늘로 올라가는 일은 누군가 들어주기 전에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이 됩니다. 다원주의는 결국 구원을 인간의 영역에서 보기 때문이지요. 어디에나 진리의 파편은 있을 수 있지만, 전체가 진리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는 것이지요.
  3. 2007.04.27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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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올 선생의 주장을 이해하려면 도올 선생의 책을 읽어봐야 잘 알 수 있겠지요. 도을 선생의 책에 실린 글들을 보면 이야기가 상당히 복잡해지더군요.
    거기에 대한 판단이야 읽은 독자 스스로 할 문제고요.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길 자체가 맞는 길인지 틀리는 길인지 누가 압니까? 자기 신앙이 진리라는 증거나 보증이 어디 있나요? 자기 취향, 자기 마음일 뿐이지요.
    산꼭대기에 뭐가 있는지, 그 산이 맞기나 한지도 모르면서, 길 갖고 싸운들 뭐하나요? 지식은 없고 믿음만 난무할 뿐인데요.

    도올 선생의 경우, 신학도 전공했다고 들었습니다. 도올 선생의 견해로는, 사도 바울의 이론은 바울의 이론일 뿐 예수 오리지널이 아니다~ 대충 그런 것이더군요.

    또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역시 진지한 신학연구와 고민 끝에, 구약을 버리고 신약만 취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저술도 했지요. 그렇게 생각할 만한 여러 근거들이 있거든요. 그건 바로 기독교의 복음 신앙관이 아닌, 주체적인 한 인간으로서의 입장과 판단에 근거합니다.

    사해문서니 여러 문헌들 중에서 취사선택해서 바이블을 만들었다는 게 도올 선생의 주장이더군요. 그런 점에서 벌써 무오류설은 심각한 타격을 받지요.
    게다가 번역과정에서 본뜻이 훼손된 부분도 적지 않지요.
    하나만 예를 들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도, 원래는 낙타가 아니라 밧줄이라나 그런 뜻이래요. 번역 과정에서 왜곡된 거지요.

    저는 쉐아르 님과 도올 선생이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떤 증거에 입각해서 견해를 말하는지, 그 깊이와 정밀함이 어떠한지를 평가할 입장도 아니고 자격도 없으니 그냥 '재미있구나' 하면서 볼 뿐입니다.
    이 이야기도 그냥 참고로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도올 선생에 대해서 별 감정이 없습니다.
    그리고, 도올 선생이 주장하는 것 중에는 맞는 이야기도 있고 틀리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도올 선생이 맞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야기 방식의 문제라든가 독자의 무지로 인해서 도올 선생의 이야기를 오해하게 되는 부분도 있더군요. 제 실제 체험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데카르트가 시대상황의 한계(사회적 종교적 압력)와 자신의 신앙 때문에 인간 기계설과 영혼설을 절충한 설을 발표했는데, 도올 선생은 시대상황의 한계를 강조했더군요.
    이 경우 철학이나 철학자 데카르트의 속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은 혼동을 일으키기 쉽지요. 도올 선생의 말을 부정하거나 오해하게 될 여지가 있지요.

    느긋하게 탐구하는 게 좋습니다. 또한, 이런 종교 문제는 관점 차이도 존재하니까 여러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게 좋겠지요.
    쉐아르 님이야 워낙 현명하게 철저하게 비판적으로 잘 생각하시니까 이런 말씀 드릴 필요도 없겠지만요.

    그리고, 도올 선생의 말이 별로 특별한 이야기도 아닌데 왜 새삼스럽게 화제냐~ 하셨는데요,
    그게 사실은 현재 한국교회의 수준과 사태의 심각성을 증언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쉐아르 님이야 깊이 있게 공부하고 고민하시는 분이시니까 시시하게 느껴지실지도 모르지만, 수많은 일반 신도들이야 별 공부나 생각 없이 믿는 분들도 많은 듯 싶습니다. 그런 분들 입장에서 볼 때야 도올 선생의 이야기가 새롭거나 충격일 수도 있지요.

    사실, 도올 선생 식의 노골적인 이야기, 고민, 논쟁을 한국 교회에서 대놓고 하나요? 그냥 무작정 믿으라고만 하지요.
    문제 제기를 한다는 측면에서만 봐도 나름의 의미는 있을 수도 있겠지요.

    저야 뭐 별 생각없이 그냥 지켜보는 입장입니다만......

    제 입장에서 보기에는, 진리 자체를 추구해야지, 어떤 종교의 교리가 맞네 틀리네 논쟁한들, 그건 마치 귀신이 다리가 있냐 없냐를 갖고 다투는 것과 비슷해보입니다. 귀신의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운 마당에, 귀신이 다리가 있냐 없냐를 갖고 싸운들 신통한 해답이 나올까요?

    그런 점에서 교리 논쟁만큼 비생산적인 논쟁이 없을 듯 싶네요.
    중세시대에는 핀 끝에 천사가 몇 명 올라갈 수 있느냐를 놓고 논쟁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 2007.05.01 14:3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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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올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마음 한구석에 "그의 책도 안 읽어보고 어떻게 비판을 하냐?"라는 찔림이 있었느데 보드라우미님이 바로 지적을 해주시네요 ㅡ.ㅡ;;;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가 썼다는 책을 찾아서 읽어볼려고 주문해 놨습니다. (근데 요즘은 책읽을 시간이 너무 없어서 ㅡ.ㅡ)

      근데 저의 접근 방법은 도올이나 보드라우미님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기독교, 그리고 다른 모든 종교들을 인간이 만들었고 거기서 인간이 쌓아놓은 지혜를 얻는 것이 다라고 생각한다면 도올의 접근방법이 당연히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질문하는 것은 기독교가 성경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성경이 신의 말씀이 아니고,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기독교에 대한 공부도 전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좀 극단적이지요?

      성경이 많은 문서들을 추려서 나온 결과물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른 어떤 문서들보다도 성경의 사본들은 절대적으로 많습니다. 숫자는 정확히 기억이 안나지만 성경의 전체 혹은 일부가 담긴 고문서가 3만개가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그 문서들을 서로 비교하면 전체적으로 주장하는 내용이 일관적입니다. 정확한 비교는 안되겠지만 알렉산더 대왕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그가 죽은 후 150년이 넘은 후에 되어진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무도 알렉산더에 대해 의심을 안하지요. 그런 것에 비하면 예수의 일생에 대한 기록은 차고 넘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근본적인 교리들 - 하나님의 아들 예수,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로 인한 대속 -에 대한 내용들은 상당히 초기단계의 문서 (예수 사후 30년 이내)에서부터 발견이 됩니다. 따라서 저는 후세 사람들이 기독교의 주장을 편의에 맞추어서 변질시켰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최초에 예수가 말한 것이 사실이냐 아니냐가 저에게는 더 큰 질문입니다.

      그렇기에 성경을 쪼개어서 신약만 수용하고 구약은 폐기한다는 것은 인간의 관점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신이 없다면 신약도 별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면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이야기했고 자신만이 구원의 방법이라 이야기했습니다. 그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예수가 아무리 좋은 말을 했든 별 가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정도 좋은 이야기야 다른 사람도 얼마든지 했으니까요.

      저는 기독교는... 그리고 모든 종교는 참 아니면 거짓 둘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참이 아닌 종교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극히 적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참이라고 믿지도 않으면서 그 종교에 남아있는 자들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키는 거지요. 썩은 목사들이 다 그런 부류라고 생각합니다. 전 신이 없다고 생각되는 순간, 예수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순간 아무 미련없이 기독교를 떠날 생각입니다. 참이 아닌 종교는 그 자체가 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4. 2007.05.0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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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쉐아르 님의 말씀에 대체적으로 동의하면서, 좀 다른 측면도 생각해봅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과연 예수라는 분이 말한 게 당대나 후대에 제대로 이해되었는가, 기독교인들이나 신학자들이 구약부터 신약까지 일관된 논리를 전개하려고 꿰어맞추긴 하지만, 그게 과연 진실인가?
    (구약의 예언에 맞추려고 당나귀 타고 입성하는 예수.... ^^)

    저는 순수한 진리 탐구의 입장이고, 인간을 중심에 놓는 입장이니,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의 가정에 얽매여서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의 많은 종교들은, 과학이나 기술, 철학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만들어졌지요. 그런데, 어떤 하나의 종교 안에 담긴 여러 주장들이나 가르침이 있는데, 그게 과연 100% 전부 진실이거나, 100% 거짓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진실과 거짓이 범벅이 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면의 진실, 일면의 거짓.

    저는 맹신에 사로잡히는 게 싫어서 어떤 특정 종교를 믿지 않고, 또 어떤 사상을 좋아하더라도 그 속에 틀린 부분이 있으면 정확히 '이건 틀렸다' 지적하는 편입니다. 그런 태도가 진리 탐구자의 자세로서 맞겠지요.

    제가 짧게나마 공부하고 경험해본 바로는, 현재 시중에 퍼져있는 여러 종교들 안에는 긴 역사를 거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들이 범벅이 되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이게 과연 붓다의 오리지널한 생각인가?' '이게 과연 예수의 오리지널한 생각인가?' '이게 과연 공자의 오리지널한 생각인가?' 의심스러운 대목이 있어요.
    후대인들이 자기 멋대로의 생각을 뒤섞어서 오염된 부분들이 적지 않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진리 탐구를 하는 것은, 한 발 한 발 진리를 향해서 전진하는 것이라는 게 제 입장입니다.
    물론, 진리가 아닌 것은 아닐 뿐이지요. 어떤 종교의 특정 교리가 진리냐, 아니냐에 대한 답은 쉐아르 님 말씀대로 명백하겠지요.
    단, 종교에는 수많은 교리들과 교훈들이 있으므로, 저는 일부의 진실에는 동의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라, 죄인을 미워하지 말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라, 그런 이야기는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웃에 무관심하고 죄인을 너무 미워하는 사람들 보면 안스럽더군요. 자신이 교회 다닌다면서 그런 사람 보면 참 어이가 없더라고요.

    쉐아르 님 말씀대로, 예수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이 없느냐에 대한 답은 명백하겠지요. 거짓, 아니면 참이겠지요.
    제 입장에서는, 그 주장의 속뜻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진실하게 선을 실천하면서 살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이런 주장이라면 좋다고 봅니다.
    그러나, 교회 안 나가고 헌금 안 내면 지옥 떨어진다...... 이런 식의 주장이라면, 그런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거짓말이라는 게 여러 증거와 근거에 의거한 결론입니다.

    진리의 전매특허란 게 있을까요? 공자를 통하지 않고서는 진리를 알 수 없다는 주장이 황당한 것처럼, 예수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 받을 수 없다는 주장도 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지전능한 신으로서는 너무 안 어울리는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신은 그냥 그 전지전능함으로 우리 전 인류가 진리를 알고 평화롭게 살도록 세상을 만들어놓으면 될 뿐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 대한 억지스러운 근본주의 기독교식 해석은...... 저는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현실 도피의 측면이 너무 강하달까요.
    이게 제 의견입니다.
  5. 2007.05.0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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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참, 그리고요, 기독교에 비판적인 분들의 지적을 보면, 아리송한 부분들이 있기는 합니다.
    예수라는 ㅂ
  6. 2007.05.0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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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라는 분이 초창기에 그다지 유명하지 않아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독교 관련 문서 말고 당시의 로마 역사책 같은 곳에 기록된 게 없다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예수라는 분이 과연 실존했던 분인지 의심스럽다는 겁니다.
    예수의 일대기와 비슷한 신화는 전부터 여러 곳에 있었기도 하고요. 그러다보니, 예수의 일대기는 기존의 신화들을 짜집기한 게 아니냐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런 학설을 집중적으로 소개한 서적도 있는데, 우리나라 기독교계의 반발로 더 이상 발간되지 않는다나요.

    또한, 예수라는 분이 실존하기는 했어도, 성경에 기록된 대로 초능력과 기적을 행하지는 않았으리라는 견해도 있어요. 물론, 정신적인 차원에서 기적 비스무레한 일시적 호전 증상을 보이는 분들은 있었겠지만요.(요즘도 그런 일들은 종종 보고되고 있지요. 정신적 마취 증상이랄까요.)

    죽었다 살아나는 문제도 그래요. 현대의 중국에도 의사가 죽었다고 진단해서 관에다 넣었는데 다시 되살아난 할머니의 사례도 보고되었지요. 자연적으로 죽었다 살아나는 분들이 가끔 있다고 합니다. 겉으로는 죽은 것으로 보이지만, 어떤 연고로 죽은 듯했지만 사실은 죽지 않았고 다시 재생이 시작된 경우지요. 그 할머니는 이도 다시 나고 살결도 고와지고 머리도 검어지고 그러셨다네요. 텔레비전에서 봤습니다.

    도올 선생의 책은 읽어보시면 재미있으실 겁니다. ^^
    기본적으로 쉐아르 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아, 그리고 톨스토이가 신약만 인정하고 구약은 부정한 근거는 이래요.
    구약의 신은 너무나 야만적이고 잔인해서 제 정신 갖고 받아들이기 힘든 신이라는 겁니다.
    신약의 예수의 가르침은 질적으로 전혀 다른 주장이라는 거지요.
    구약이 있어서 그 영향으로 예수라는 위인이 나타난 거지만, 그러나 예수는 종교 개혁을 단행했다는 겁니다.
    구약에서 예언한 존재가 바로 예수...라는 주장은, 결국 어떤 인간들의 관점일 뿐입니다. 그 주장이 진리라는 근거는.... 없어요!

    그런 점에서 볼 때, 톨스토이의 주장 역시 동등한 자격을 가진 하나의 견해가 될 수 있는 거지요. 무교회주의라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가톨릭 입장에서 볼 때는 개신교의 주장 역시 이단 아닌가요? 하지만 어차피 진리라는 증거,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볼 때는 별 차이도 없지요.

    최근에 예수가 아들을 낳아서 후손이 이어졌다는 주장이 책으로 영화로 나와서 유명해졌는데(다빈치 코드), 어떤 가톨릭 교인이 그러더군요. 그 주장은 거짓이라고요.
    그런데, 자신의 가톨릭 신앙이 진실이라는 근거는 있는 것일까요? 뚜렷한 근거가 없기는 서로 비슷하다고 보입니다.

    결국, 모든 판단은 스스로 해야 하는데, 그 판단기준이 뭐냐는 겁니다.
    그 기준이 인간성이냐, 인본주의냐, 아니면 자신의 이득이냐, 진리냐, 공포나 두려움이냐, 그런 게 문제라고 봅니다.
    일상생활의 현실이냐, 어떤 책에 쓰인 문구냐, 머리 속의 공상적 관념이냐?

    충분한 증거를 입수했느냐, 다각도로 검토해보았느냐, 탐구의 깊이가 충분하냐, 편협한 관점은 아니냐, 여러 사실들을 논리적으로 일관되게 종합해보았느냐?
  7. 2007.05.01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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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보기에는, 어떤 주장이 진리냐 아니냐 이전에, 그 주장의 근거가 이성에 근거하고 증거에 입각한 주장이냐, 아니면 무조건 믿으라는 도그마 맹신이냐가 문제라고 봅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미 기존의 많은 종교들은 불합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현실과 모순되는 주장을 하면서 증거도 없이 무작정 믿으라며 지옥 갈 거라고 협박을 하는데, 이건 이미 거짓말이고 넓은 의미에서의 사기행각일 뿐입니다.

    자신이 진리 탐구를 한다면, 현실과 모순되는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대안을 찾아보는 진실한 노력이 뒤따라야 구도자로서 말이 되는 거지요.

    현실을 외면하고 그냥 무조건 믿으라는 맹신의 자세는 현실 도피이고 세뇌일 뿐입니다. 저는 그런 태도에 반대합니다.
    인류가 이만큼이나 진보해온 것은, 인간의 이성과 양심이 살아있기 때문일 겁니다. 한 때 종교의 맹신적 도그마가 위세를 떨치고 악행을 저지른 때도 있었지만,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릴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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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년간 간직하고 있던 신념에 대한 질문을 시작하며... by 쉐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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